2012/08/27 03:37

전투를 무사히 승리로 끝냈고 문명과 야만의 경계는 승리의 기쁨에 잠기게 됬지만, 정작 그 승리를 이끌어낸 밀비는 스스로의 방에 처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도저히 흥미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였다.


밀비는 도저히 허무감에서부터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심각한 위험이 있었고, 매우 힘들었지만 결국 이겨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심각한 위험을 이겨내는 이유는 생존이겠지만, 밀비에게 그 이유는 바로 흥미였다. 그런 상황에서 밀비가 흥미가 못 느낀다는 것은 마치 기나긴 마라톤의 결승점에 놓여진 케이크를 마침내 먹으려 꺼내드니 사실은 종이로 만들어진 가짜였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밀비에게 그것은 살면서 쌓여진 튼튼한 기준점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것이였다. 밀비는 혼란스러웠다.


밀비 스스로도 그런 혼란을 이겨내야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밀비는 다른 흥미거리에 신경을 써보려 했다. 음악, 그림, 독서, 집필, 수집, 기타 등등. 하지만 그것은 밀비는 그중 무엇으로부터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밀비는 자신이 마땅히 즐겨야 할 인생 최고의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밀비는 자신의 갑작스런 우울증이 인생 최고의 순간을 즐기다보면 사라질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방 밖으로 나와봤다. 하지만 아무도 밀비를 반기지 않았다. 깊은 증오라는 급한 불이 해결 된 사람들은 그제서야 밀비의 어린 나이와 얕은 경험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밀비는 뛰어난 참모진과 장교들의 공에 숟가락 하나 얹기만 한 애송이가 되버렸고, 모두로부터 경멸과 무시를 받았다. 링거는 승리는 전적으로 밀비의 공임을 알았지만, 자신의 작전과 분석이 완벽하게 허탕이였다는 사실에 밀비를 기피하다 사람들이 밀비를 무시하니 덩달아 무시하기 시작했다. 인생 최고의 순간은 정말 허무하기가 방귀 찬 풍선과도 같았다.


밀비는 삶의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짧은 생애였지만 이미 정점에 올랐고, 남은 것은 추락뿐이란 것을 알았다. 그것으로부터 즐거움이라도 느낄 수 있다거나 사람들이 그를 필요로 한다면 그래도 밀비의 삶에는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무엇도 밀비에게 적용되지는 않았다. 이미 정점에 올랐고, 즐겁지도 않고,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삶을 이어갈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밀비는 조용히 독약을 마시고 짧지만 굵었던 생애를 마감했다. 밀비가 죽자 사람들은 마치 링거가 처음부터 그들의 지휘관이였다는듯, 자연스럽게 링거를 따르기 시작했다.


링거가 지휘관이 되고 며칠이 지나자, 본성에서 출발한 랜스터의 함대가 문명과 야만의 경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랜스터는 링거를 부관으로 받아들이고 제1기동야전군단을 흡수한다음 미지의 외곽으로 기나긴 원정을 떠났다. 랜스터는 30년간의 전쟁 후 남부 외곽을 평정했고, 그곳에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했다. 문명과 야만의 경계에서 있었던 두 문명간의 피비린내나는 분쟁은,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랜스터의 필사적인 노력 와중에 그의 공으로 둔갑 되었다. 해롤드와 밀비는 그렇게 역사의 기나긴 흐름 속에서 사라지고 잊혀졌다. 정말 허무하기 그지 없는 일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