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09 10:46

남자는 과연 자신이 인간인지 신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분명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자랐다. 하지만 현재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가히 신이라 불러도 모자름이 없을만한 것들이였다. 그 모든 것들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였지만.


세계는 오래전에 멸망했다. 운석충돌에 의해 지상의 모든 것은 파괴되었고, 그 충돌의 반대편 지하 800미터에 위치한 자체발전 벙커에 있는 남자의 뇌와 그것이 살아가는 가상세계만이 존재하였다. 남자는 그 가상세계의 관리자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 가상세계는 오로지 그만이 존재하는 세계였다. 보통 사람에게 시간은 2개로 나뉘어진다. 실제로 흘러가는 시간과 그가 실제로 느끼는 시간. 하지만 그 세계에서 시간은 오로지 그가 느끼는 시간뿐이였다. 그가 1년으로 느꼈다면 그것은 1년이요 10년이라면 10년이였다. 주관적 세계가 곧 객관적 세계인 셈이였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였다.


그는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모든 것. 그가 상상하면 곧 그것은 이루어졌다. 그가 불을 상상하면 불이 나왔으며 물을 상상하면 물이 나왔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는 무슨 수를 써서도 만들어낼 수 없었다. 예를 들자면, 그는 복잡한 독립적 지성을 지닌 타개체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독립적 지성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그는 모든 알고리즘을 스스로 짜내야 했기 때문이였다. 어떻게 세계를 받아들이고 분석하며 그것에 어떻게 대응하고 그 모든 연산들이 어떠한 과정으로 이루어지는지, 그 모든 것들을 그는 상상해내야만 했다. 관리자 권한이 주어졌다고 그의 지성이 초월적으로 상승 된 것은 아니였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외로웠다. 그가 느끼기에 전자세계의 시간은 벌써 수백년이 흘렀다. 실제로 현실에서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그 누구도 몰랐다. 그 고독을 상상할 수 있는가?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그 홀로 존재하고 그 홀로 실제로 살아 숨쉬는 세계에서의 수백년을, 그 세월의 무게를 상상할 수 있는가? 오죽하면 그가 가장 즐기는 놀이가 수십년 후 아무 현상이나 무작위로 발생하도록 한 후, 그것을 잊었다가 수십년 후에 갑자기 발생 되는, 그가 했었지만 그가 했다고 기억하지 않는 현상을 보고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비록 그것이 그가 수십년 전에 미리 설정해둔 현상이라는 사실이 떠오름과 함께 뼛속까지 시릴 것만 같은 고독감을 느끼게 해주긴 했지만, 그 잠깐의 두근거림은 모든 고통을 인내할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세계의 모든 것이 그의 이해속에 놓여져있다는 것이 그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세계의 모든 것이 그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그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그는 그가 알고 지내던 세계가 뒤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싶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그 탐구심을 그는 되찾고 싶었고, 새로운 지식을 얻고 깨닫는 그 만족감을 그는 갈망했다. 세계를 여섯번 무너트리고 새로 짓는다 하여도 그것이 그저 잘 짜여진 플라스틱 가짜라면 그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는 간단한 생명을 짜보기로 했다. 아주 간단한 생명이였다. 그것은 '너는 살아있느냐?' 라는 말을 들으면 자동적으로 '나는 살아있다' 라는 말을 내뱉도록 짜여 있었고, '그 모든 것은 내가 미리 짜놓은 반응이다.' 라는 말을 들으면 미리 설정해둔 혼란스러운 반응을 보이며 '아니야, 나는 살아있어!' 라는 말을 내뱉도록 짜여 있었다.


생명을 짠 후 그는 그 생명에게 말했다.


"너는 살아있느냐?"


생명은 미리 설정해둔 것과 하등의 차이도 없이 확신에 찬 표정을 짓은 후 말했다.


"나는 살아있다!"


그는 그 생명에게 다시 말했다.


"그 모든 것은 내가 미리 짜놓은 반응이다."


생명은 역시 미리 설정해둔 것과 하등의 차이도 없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은 후 말했다.


"아니야, 나는 살아있어!"


"그것 또한 내가 미리 짜놓은 반응이다."


생명은 울부짖는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고! 나는 살아있어! 나는, 지금, 여기, 이곳에, 이렇게, 살아있어!"


강렬했지만, 역시나 남자가 미리 설정해둔 것과 하등의 차이도 없는 반응이였다. 비참해진 남자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는 이대로 몇천년이나 더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덤덤히 흐르는 시간의 무게가 괴로울 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