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13 21:25

함장은 지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정한 절망이 무엇인지 맛보고 있었다.


"본부! 본부! 들리나? 응답바란다, 본부! 씨팔, 응답하라고 본부 이 개새끼야! 응답해! 응답하라고! 망할!"


현재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부관은 아무런 정보도 돌아오지 않는 홀로스크린을 향해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현재 브릿지에서 그만이 유일하게 입을 열고 있는 자였다. 나머지는 모두 막막한 암울감에 젖어 멍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였다. 그들은 마치 부관 아닌 자가 입을 열면 당장이라도 가장 잔악한 방법으로 죽을 것처럼 그렇게 축 늘어져있었다.


"본부! 응답하라고!"


부관의 목소리가 부하들 앞에서 추태를 보이지 않으려는 다짐을 흔들고 있었기에, 함장은 그에게 나지막히 말했다.


"부관, 그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도록. 이렇게 추태를 부린다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자리에 앉도록, 부관."


하지만 젊은 부관은 현상황을 받아들이기에는 함장과는 달리 경험도, 지식도 너무 부족했었다. 그는 단 1시간 전만 해도 제국이 지금까지 낳은 최고의 함장의 아래에서 가장 강력한 함대의 부관으로서 일한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즐거웠는지 한달 전과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환상이 깨어진 지금, 그는 환상을 깨트리는 현실이 거짓이라고 온힘을 다해 부정하고 있었다.


"함장님이 잘못 알고 계신 것입니다. 이건 분명 본부의 그 지독한 놈들이 최전선을 향해 출격하는 저희 함대를 농락하기 위해 꾸민 짓이 틀림 없습니다. 아니면 낮동안에도 술로 세월을 지세우며 임무는 뒷전인 승무원들의 어리석은 실수가 만들어낸 심각한 오류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부관은 자신의 믿음에 논리적 오류는 있을 수 없다는듯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그 확신이 곧 현실은 절망일 뿐이라는 괴리감에 무너질 것임을 함장은 너무도 잘 알았기에, 그의 마음은 벌써부터 부관이 좌절에 울부짖는 모습을 본 듯 찢어질 것 처럼 아파왔다. 하지만 그는 이 전함의 함장이자, 온 함대의 함장이였다. 그의 명령을 신봉할 사내는 이곳에 50만이 있었고, 그들은 인류가 역사상 만든 최고의 살인무기들의 전문가 들이였다. 그렇기에 그는 강해야만 했다.


"부관, 나는 앉으라 말했네."


그래서 그는 조금의 표정변화도 없이 브릿지 내부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부관에게 다시 말했다. 한 젊은이의 환상을 지켜주기에는 함장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가 너무도 거대했다.


"하지만!"


"그리고 난 부탁을 하는 사람이 아닐세."


"....알겠습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함장님."


부관은 불편한 얼굴로 경례를 한 후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가 앉자 함장은 다시 입을 열었다. 마치 안에서 생각하는 그와, 지금 이곳에서 말하는 그는 전혀 다른 인물이라는듯 내부의 절망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목소리였다.


"연락병. 보고하게."


함장이 명령하자 제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한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홀로스크린 앞으로 이동해 방금 본부에서 전해져 온 마지막 교신을 재생시켰다. 이곳 모두의 마음을 절망으로 젖게 만든 한 영상을 다시 보여주는 것으로, 입을 열지 않겠다는 연락병의 태도는 매우 건방졌지만, 그들 모두가 연락병이였다면 동일한 행동을 했을 것이였기에, 그들은 연락병의 건방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영상은 평소 제복에 멋부리기로 유명했던 멋쟁이 스닉이 찢겨지고 더러워져 넝마같아진 제복을 입은채 심각한 부상에 죽어가며 말을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스닉의 왼팔은 어디다 놓고 왔는지 텅 비어서 제복의 팔부분이 깃발처럼 펄럭였고, 제복의 드러난 부위는 심각한 빔 공격에서 죽었다 살아났는지 온통 붉은 수포로 뒤덮여있었다.


"스, 스닉 일병 보고드립니다. 현재 저희 본부는 적의 대규모 침공을 받았으며, 현재 행성 보호 함대는 전멸, 해병군단또한 전멸, 행성 전체가 점령당하기 일보 직전입니다. 관제탑의 기능은 곧 상실될 것으로 보이며 네비게이션 시스템도 작동중단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보고드립니다.  현재 저희 본부는 적의 대규모 침공을 받았으며, 현재 행성 보호 함대는 전멸, 해병들 전멸, 행성 전체가 점령당하기 일보 직전입니다. 관제탑의 기능은 곧 상실될 것으로 보이며 네비게이션 시스템도 작동중단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봤던 영상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상이 내포한 절망은 조금의 여과도 없이 브릿지의 모두를 해일처럼 강타했다. 부관도 이제 더 이상 현실을 부정하지 못한채 인간이 얼마나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을 수 있는가를 시험해보고 있었다. 함장은 그런 부관을 바라보며 찢어지는듯한 가슴을 달랬다. 아! 그 부관이 얼마나 젊음의 활기로 이 함대의 닳고닳은 전사들을 즐겁게 해줬던가. 얼마나 많은 자들이 그를 보며 저런 자식 하나 있으면 하루하루가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가. 그런 함대의 마스코트가 지금 처음으로 절망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함장은 할 수만 있다면 기운내라고 말하며 그의 등을 토닥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어깨에 놓인 무게는 그를 의자에서 일어날 수 없도록 처박고 있었다. 함장은 이럴 때마다 어째서 자신이 함대운용에 재능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신을 저주하곤 했지만 지금은 신을 저주할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모든 압박과 무게에 지쳐갈 뿐이였다.


브릿지의 모두는 기이한 눈빛으로 영상을 계속 바라봤다. 이 짧은 비극이 어떻게 결말을 맞을지는 이 브릿지의 모두가 이미 알고있었다. 주인공의 극적 죽음. 홀로스크린에 그의 피가 촥 튀며 끝날 것이였다. 그것은 그들 모두의 상황을 대변하는 연출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는 비정상적은 열망과 기대로 영상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은 하나의 전자적 오류의 결과였을 뿐이고, 사실 본부는 점령당하지 않았다는 서프라이즈 결말을 볼 수도 있을 것이란 실낱같은 희망때문이였다.


그리고 또다시, 그들 모두의 희망을 주저없이 부숴트리며 스닉 일병은 사망하였다. 함장은 이렇게 될 것임을 알았음에도 다시 한번 절망하는 브릿지의 인원 모두를 안타깝게, 하지만 겉으로는 무심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영상이 본 함대의 현 상황을 매우 잘 알려주고 있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본 함대가 적 행성으로 이동하던 중 대규모 적 함대가 본부를 습격해 함락시켰고, 그것으로 인해 관제탑의 기능은 상실되었기에 현재 본 함대는 우주미아가 된 것으로 추측된다."


우주미아. 그것은 온 브릿지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알았으며, 동시에 금기로 여겼기에 감히 말하고자 하지 않았던 단어였다. 함장은 그 단어 하나에 어깨가 더 좁아지는 브릿지 내부의 인원들을 바라보며 어차피 언젠가는 말해야 했던 단어였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하지만 그 우울한 광경에 마음이 더 울적해지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고향 제국으로 돌아갈 방법이 전혀 없다."



우주미아 하지 마세요. 나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