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15 21:39

주의:// 본 내용은 창작입니다. 픽션이에요 픽션.

브금이 끝나면 다시 재생해서 들읍시다!



우주의 태초에 만들어져 무한히 타오르던 붉은 항성은 어느덧 끝을 맞이해가고 있었다. 강력한 중력을 어마어마한 열기에 의한 팽창으로 상쇄하며 유지 되던 항성의 부피는 열기가 사그라들자 중력에 의해 사정없이 쪼그라들어갔다. 항성은 그렇게 중력으로 쪼그라들며 부피가 줄어들자 내부의 열이 다시 상승해 원래의 부피를 서서히 되찾아가기도 했지만, 다시 스스로의 중력에 의해 쪼그라들어만 갈 뿐이였다. 그렇게 항성은 차갑게 식어 압축 될 것으로 보였다.


그런대 항성이 중력과의 힘겨운 싸움에 핵에 남아있던 수소를 모두 써버리자 상황이 달라졌다. 항성은 핵융합의 중심을 그나마 수소가 약간은 남아있는 외피쪽으로 옮겼다. 항성의 살아남기 위한 이 필사적인 발버둥은 외피의 온도가 급증하도록 만들었고 외피가 중력을 압도한채 무한히 팽창하도록 만들었다. 항성은 그렇게 적색거성이 되었다.


적색거성이 된 항성은 부피를 무한히 팽창시켰다. 자신의 기존 부피의 100여배는 훌쩍 넘길 정도였다. 이미 오래전에 죽은 문명의 잔해 위에서 붉은 별은 마지막 빛을 냈고, 결국 항성계의 모든 행성들이 항성 속에 흡수되게 되었다.


항성의 팽창이 얼마나 계속되었을까. 항성의 부피는 기존 항성계를 뛰어넘을 정도로 팽창하였다. 하지만 거대한 부피와는 달리 항성의 질량은 극도로 낮았고 그러함에 따라 밀도또한 극도로 낮아지게 됬다. 항성은 더 이상 스스로의 팽창을 제어하지 못한채 샅샅이 흩어져 성운이 곧 될 것으로 보였다. 항성은 이제 더 이상 묵묵한 우주를 밝히지 못할 것이였다. 항성은 결국 100억년의 세월을 뒤로한채 조용히 우주 공간으로 흩어졌다. 그 잔해이자 후손인 성운은 항성의 전성기 때와 같이 아름다운 붉은 빛으로 한 별의 죽음을 애도했다.


하지만 그것이 우주의 조그만 구석을 영원히 어둡게 만든 것은 아니였다. 항성의 잔해인 성운 속에서 느리지만 확실하게 새로운 항성이 형성 되 가고 있었다. 적색거성에 비교하자면 조그마한 점이나 다름없을 크기로 그 항성은 시작했지만 마치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듯 성운 스스로 그 어린 항성에게 흡수 되었고 항성은 그런 성운들을 흡수하며 점점 몸집을 키워갔다.


한편, 항성뿐만 아니라 행성들도 성운을 빨아들이며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항성이 팽창하는 와중 가벼운 가스들은 외곽까지 함께 팽창되었기에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행성계의 외곽에는 가스형 행성들이 나타났고, 멀리까지 팽창하지 않았던 금속류는 항성계의 내부에 바위형 행성들을 빚어냈다. 그렇게 형성 된 행성의 숫자는 가스형 4개와 바위형 5개, 총 9개였다. 뜨겁고 강렬한 기운이 가득찬 항성계는 젊음의 혈기 속에서 형성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갓 태어난 항성계를 시험할 위험이 다가왔다. 광활한 우주를 떠돌던 이름모를 소행성이 갓 태어난 항성계에 진입한 것이였다. 그 검고 거대한 소행성은 묵묵히 바위형 행성과 가스형 행성 사이에 있는 한 바위형 행성의 중력에 잡혀 그대로 충돌했다. 소행성의 어마어마한 질량과 운동량은 갓 태어난 행성이 견딜 종류의 것이 아니였다. 갓 태어난 행성은 그렇게 수십억년이나 될 찬란한 미래를 보지도 못한채 불타는 바위와 먼지로 산산히 흩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파편 중 일부는 소행성의 운동량을 그대로 간직한채 다른 바위 행성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한 파편은 훗날 화성이라 불릴 행성의 북극 근처에 충돌해 행성의 지표면을 말 그대로 깍아버렸다. 그 충돌이 남긴 흔적은 행성 지표면의 40%나 되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어린 항성계에게는 재앙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였다. 화성 지표면의 40%나 깍아버린 자신의 형제보다 오히려 더 질량과 운동량이 높은 파편이 하나 남았던 것이였다. 그 파편은 충돌의 여파로 붉게 달아오른 화성을 지나 훗날 지구라 불릴 행성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중력에 사로잡혀 그 거대한 몸집으로 지구에 충돌했다.


이 충돌의 여파는 막대했다. 지구의 총질량중 무려 1/5이나 되는 광물이 우주로 빠져나간 것이였다. 이 어마어마한 양의 광물은 소행성 파편의 잔해와 함께 행성의 중력권을 빙글빙글 돌다가 하나로 합쳐져 언제나 행성만을 바라보는 위성이 되었다. 우주에서 죽음과 충돌은 또다른 탄생의 전조일 뿐이였다.


긴 세월이 또다시 흘렀다. 이제 항성계는 제자리를 잡게 되었다. 항성과 너무도 가까운 2개의 불운한 행성들은 여전히 복사열에 시달리며 펄펄 끓고 있었지만, 나머지는 과거의 들끓는 격변을 뒤로한채 차갑게 식어 안정되었다. 그렇게 식은 지구의 곳곳에는 바위틈에 화학물질들이 잔뜩 고인 웅덩이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는대 그런 웅덩이 속에서 단세포 생물인 남조류가 발생했고 곧 그들은 철을 흡수해 산화철로 배출하며 바다 곳곳에 퍼져나가게 됬다. 고요한 바다는 그들의 것이였다.


하지만 그런 남조류의 대규모 번식은 모두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야기해냈다. 남조류가 철 뿐만 아니라 원시지구의 대기중에 다량 포함 되 있던 메탄에까지 손을 댄 것이였다. 비록 원시지구의 시간개념은 매우 느렸기에 변화가 순식간에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메탄이 제공해주던 온실효과는 사라져갔고 그에 따라 지표면의 온도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런 기후변화는 대규모의 빙하를 바다에 형성시켰는대, 그렇게 빙하가 형성되자 복사열이 빙하에 반사되어 사라져가게 되었고 그것은 지표면의 온도를 하락시켜 빙하의 규모를 더욱 더 키우는 얼음의 순환을 만들어냈다. 결국 지구 지표면의 대부분은 얼음에 뒤덮이게 되었다.


물론 그것이 지구의 끝인 것은 아니였다. 오히려 그 얼음은 아직 어린 아이인 지구에게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씨앗이 되어주었다. 겉으로는 모든 생명이 끝난듯 보였지만 그 잠잠해보이는 안에서는 열수분출공을 통해 다량의 광물과 화학물질들이 휘몰아치고 있었고 남조류는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꾸어주었다. 그것들은 앞으로 수십억년간 대지와 바다를 지배할 위대한 생명들의 시작이자 근본이였다.


모든 것이 준비되자 지구는 지질활동을 통해 다량의 이산화탄소들을 대기속으로 토해냈다. 온실효과가 생명에게 온기를 주기 위해 다시 시작되었고, 얼어붙은 대지는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렇게 사라진 얼음을 뚫고 위대한 혁명이 일어났다. 최초의 진핵세포. 그들은 DNA를 세포질속에 퍼트려놓았던 기존의 단세포 생명체들과는 달리 세포핵 속에 DNA들을 보관시키기 시작했고 그 간단하지만 위대한 혁변은 20억년동안 약간의 변화만 가해진채 모든 생명체들에게 전해져내려갔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이제 다세포 생명체들이 드넓은 바다를 조용히 부유해다니기 시작했다. 그 반투명한 생명체들에게는 갑옷도 무기도 없었으며 군비경쟁은 커녕 경쟁이라는 개념조차 알지 못했다. 아무런 위협없이 그저 남조류나 먹으면서 유유히 유영하는 것이 삶의 전부일 것 같은 그들이였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위협이 하나 존재했다. 바로 단파광. 반투명한 그들에게 짧은 파장의 광선들은 치명적이기 그지없었다. 예민한 속부분이 그대로 파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였다. 그들은 빛이라는 외부세계의 위협을 감지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시각이 최초로 만들어졌다. 단순한 에너지원일 뿐이였던 빛이 최초로 세계의 일부를 구성하기 시작 하게 된 것이였다. 물론 최초의 눈이 그렇게 복잡한 물건인 것은 아니였다. 최초의 눈은 광점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는대 간단히 말하자면 빛의 파장을 감지할 수 있도록 피부의 일부가 바뀐 물건이였다. 안와의 형식도, 수정체의 형식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빛에 반사 된 형체를 감지하지도 못했다. 다만 치명적인 빛의 파장을 감지해 그곳으로부터 벗어나는 정도의 행위는 할 수 있었다. 반투명한 생명체들은 시각의 발견으로 외부세계의 위협을 차단하는 것에 성공했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더 거대한 무언가를 시작하게 할 것임은 알지 못했다.


바로 포식자와 피식자의 무한한 군비경쟁. 포식자는 피식자를 잡아먹으며 살아가고, 잘 도망가는 피식자들만 살아남아 종족 전체가 시간이 흐르며 더 잘 도망가게 변하고, 더 잘 도망가는 피식자도 사냥할 수 있는 포식자만 살아남아 종족 전체가 시간이 흐르며 더 잘 사냥하게 바뀌고, 그것이 시작부터 다시 반복되어가는, 무한한 진화의 사슬이 시작 되었다. 시각의 발견으로 서로를 더 쉽고 확실하게 감지할 수 있게되자 힘들게 남조류를 잡아먹는 대신 서로를 잡아먹는 것이 더 이득으로 보이게 되었기 때문이였다.


포식자가 발톱을 만들자 피식자는 갑옷을 만들었다. 그러자 포식자는 근육과 뼈를 만들었고 피식자는 더 강한 갑옷, 혹은 더 빠른 지느러미를 만들었다. 마치 진화라는 신개념에 온 행성이 푹 빠진듯 수많은 종족들이 태어나고 사라졌으며, 고요하던 바다는 먹고 먹히는 치열한 경쟁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훗날 캄브리아기 폭발이라 불릴 사건은 그렇게 시작됬다.


적자생존의 법칙은 그야말로 온갖 것들이 바다를 누비도록 만들었다. 한 포식자는 탄력있고 뻣뻣한 근육에 서서히 힘을 모았다가 그 모은 힘을 한순간에 폭발시켜 순식간에 입을 벌렸다 닫는 턱을 만들어냈다. 그 턱으로부터 살아남고자 한 피식자들은 주변에 가득한 방해석을 이용해 튼튼한 껍질을 만들었고, 그 와중에 최초로 겹눈을 만들어냈다. 최초로 수정체의 개념을 도입한 겹눈은 수백, 수천개의 겹눈을 이용해 상을 형성하는 방식의 눈이였는대 기존의 광점보다는 훨씬 더 효과적으로 주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겹눈은 사그라들어가던 캄브리아기 폭발을 되살려냈다. 겹눈으로 무장한채 수많은 생명체들이 다시 태어나 바다를 누볐다. 그런 와중 최초로 척추의 개념을 가진 종족이 태어났다. 나타나자마자 순식간에 모든 종족들의 필수품이 되버린 척추는 다시 단단한 척추와 유연한 척추 두개로 나누어졌는대 단단한 척추는 추진력과 속도에서 강세를 보였고 유연한 척추는 선회력과 유연함에서 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선회를 부드럽고 아름답게 잘해봤자 속도가 부족하면 피식자를 사냥할 수도 포식자를 떨쳐낼 수도 없었기에 곧 단단한 척추가 대세가 되었다.


그런 당시의 바닷속 종족들에게 지상은 굳이 올라갈 가치도, 올라갈 수도 없는 죽음의 공간일 뿐이였다. 물이 없다는 것은 그들의 고도로 발달 된 무기를 사용하기는 커녕 숨을 쉬거나 이동을 할 수도 없다는 것이였고 자외선과 땡볕에 말라 탈수증세에 빠져 죽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에게 세상은 바다였고 바다만이 세상이였다. 하지만 언제 어디에서나 불가능에 도전하는 괴짜들은 있는 법. 양서류들은 지상을 죽음의 불모지 대신 개척한 신세계로 봤다. 아무런 경쟁도 존재하지 않으며 어디에서나 마음껏 먹이를 찾아볼 수 있는 신에게 축복받은 공간. 그들은 지상이라는 열매를 따기 위해 과감히 전진했다. 짧은 네개의 다리로 엉기적거리며 남긴 그들의 발자국은 생명체가 대지에 남긴 최초의 흔적이였다.


양서류는 번성했다. 물론 그들의 지상개척기가 쉬웠다는 것은 아니였다. 항상 물속에 지냈기에 예상하지도 못했던 문제점들이 최초의 개척자들을 반겼었다. 햇볕에 의한 피부건조, 새로운 먹을거리, 호흡, 중력, 기타 등등. 수많은 문제들이 양서류를 괴롭혔지만 그들은 꿋꿋히 그 모두를 이겨냈다. 그들은 피부에 특수한 물질을 추가해 물이 피부를 통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였고, 많은 먹을거리들을 찾아냈으며, 제대로 숨을 쉬는 법, 중력을 이겨내는 법, 쓰러지지 않고 걷는 법, 그 외 기타 등등 모든 것들을 기어코 알아내었다. 그 고난의 대가로, 그들은 훗날 수억년간 대지 위를 걸을 온갖 강인하고 영리한 종족들의 조상이 되었다.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공룡의 대멸종과 함께 파충류의 시대는 종말을 맞이했고 공석이 된 그들의 자리를 포유류가 잽싸게 낚아챘다. 그들은 많은 면에서 공룡들의 발견을 따랐었다. 그들은 공룡들을 따라서 척추동물의 안구를 채택했고, 공룡을 따라서 시야각을 정했다. 포식자들은 거리감각을 얻기 위해 안구의 시야각이 못해도 30도, 40도는 겹치도록 전면에 배치했고, 피식자들은 거리감각따윈 무시한채 어디서 포식자가 오든 알아채기 위하여 측면에 안구들을 배치했다. 피식자들의 대부분은 머리를 중심으로 300도 이상의 범위를 볼 수 있었고, 일부 피식자들은 그것을 뛰어넘어 350도의 범위까지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피식자가 그런 시야각을 택한 것은 아니였다. 한 피식자는 피식자임에도 불구하고 포식자를 따라 시야각이 40도 이상 겹치도록 안구를 전면에 배치하기도 했다. 그들은 바로 나무위에서의 삶을 택한 원시 유인원들이였다. 그들이 넓은 시야각대신 거리감각을 선택한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는대, 나무위에서 사는 그들은 거리감각이 없으면 나뭇가지에서 나뭇가지로 뛰어다닐 수가 없기 때문이였다. 시야각이 좁은 그들은 생존하기 위해 여럿이 뭉쳐 모이는 수 뿐이 없었고, 서로의 집단에 소속 된 타 개체들을 기억하기 위해 두뇌용량을 발달시켰다. 이것은 훗날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현생인류의 탄생의 계기가 되었다.


두뇌용량이 발달 된 유인원들은 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되어 나무로부터 내려왔다. 그들은 평지의 풀속에서 멀리 보기 위해 직립 보행을 선택했고 덕분에 두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얻은 두 손을 그들은 발달시켰고, 그들중 어느 필사적인 개체가 깍은 돌로 손톱을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구석기 시대가 시작됬다. 그 개체는 인류 최초의 도구이자 무기, 돌로 만든 손톱을 들고 자신을 내쫓은 집단으로 찾아가 모두를 때려죽였다. 그리고 그렇게 최초의 전쟁이 시작됬다.


무수한 세월이 흘렀다. 아프리카의 평원은 더 이상 인류를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포화상태에 놓여졌고, 인간은 언제나처럼 전쟁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집단과 집단의 전투가 매일같이 벌어졌지만 죽은만큼 다시 태어났고 전쟁은 끝을 보일 줄 몰랐다. 한 집단은 아버지 위의 아버지 위의 아버지부터 계속 되온 전쟁에 신물이 났는지 아프리카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하늘의 보우심으로 빙하기에 의해 이미 수면이 낮아진 상태였고 인류는 무사히 유라시아 대륙에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그들은 그 후 기나긴 세월에 걸쳐 동아시아, 호주, 폴리네시아, 아메리카, 유럽으로 흩어졌고 남극을 제외한 모든 땅덩어리에 둥지를 틀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에는 이미 다양한 종류의 원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그들과 피를 섞어 하나로 융합되는 방식으로 더 튼튼하고 슬기로운 유전자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문명이 시작됬다. 나일강, 유프라테스 및 티그리스 강, 인더스 강, 그리고 황하 강. 이 4개의 비옥한 대지에 농경민족이 자리잡아 도시를 짓고 가도를 내며 교역을 하는 지혜와 슬기의 시대가 막을 열었다. 그들은 점토판과 대나무를 이용해 자신들의 깨달음과 발견을 적었고 후손들은 그것을 보고 선대의 지혜를 실감하며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했다. 그것은 마치 문명이 하나의 개체로서 학습하고 성장하며 세월을 이겨내는 것 같았다. 미래는 밝았고 사람들은 현명했다.


하지만 그런 평화 속에서 바다 사람들이 나타났다. 아무도 그들의 조상이 누군지,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들이 전쟁을 위해 태어난 악귀처럼 막강하고 악랄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았다. 지중해 연안의 위대한 문명들이 차례 차례 무너졌으며, 그리스 지역은 도시가 서로로부터 고립 된 채 하나하나 불타 사라져갔다. 하지만 의외로 그들의 공포에 비해 그들의 실질적인 특성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는대, 그것은 그들이 공격한 도시를 모조리 함락시켜 불태웠기 때문이였다. 그들이 지나간 대지의 모든 금과 은은 약탈당했고 선조의 유산들은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들은 지중해 세계에 파괴를 일으키는 파괴신이자 대악마였다.


마치 폭풍처럼 그들은 한바탕 문명들을 휩쓸고 난 후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의 백여년간의 약탈은 거의 천년에 버금 갈 시간만큼 문명을 퇴보시켰다. 사람들은 그들을 통해 전쟁이라는 것의 두려움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전쟁에 대한 기피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들은 전쟁에 대한 증오와 갈망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또다시 전쟁이 세계를 덮쳤다.


그 후 사천년. 인류는 수백번의 전쟁과 수만번의 전투를 겪었지만서도 전쟁의 참혹한 결과를 잊은채 영광과 단맛만을 칭송하였다. 그것은 마치 마약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마약은 인류 스스로를 좀먹어 들어갔다. 결국 대규모의 식민지 개척자들이 과거 양서류가 바다를 떠났듯 지구를 떠나 안드로메다로 향했다. 그들이 지구를 떠난 이유는 지구가 전쟁을 통해 자멸하더라도 인류는 계속 존속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즉, 언제라도 지구가 멸망할지 모른다는 뜻이였다.


그리고 미래는 대다수의 예상대로 진행되었다. 막강한 함선들과 무시무시한 살육기계들이 대지와 공중을 이동하며 인간을 죽였고 그들을 만들고 운영하기 위해 끝없이 땅을 파고 또 파다보니 자원은 고갈 되 인구조차 유지하기 힘들 수준이 되었다. 그러자 그들은 인간을 갈아넣어 연료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기계를 굴렸다. 사람들이 모두 꽁꽁 숨어 갈아넣을 인간을 찾지 못하자 그들은 대지의 양분을 흡수해 기계를 운영했다. 결국 지구는 자원이 남지않은 사막이 되었고 아무것도 먹지 못해 모래라도 입에 쑤셔넣을 지경이 된 최후의 지구인들은 쓸쓸히 홀로 종말을 맞이했다. 파괴 된 문명의 잔해와 연료 없는 기계들만이 남아 모래폭풍 부는 지구를 내려다보았다.


태양계는 그 후 약 50억년간 인류가 만든 그 모습을 유지했다. 태양이 점점 나이들어가며 옅은 주황색에서 짙은 붉은색으로 색깔이 변하긴 했지만 그 외에는 별 차이 없었다. 그런대 인류가 지구를 떠난지 50억년 후 어느 날, 한 우주선이 지구에 착륙했다. 그곳에서는 한무리의 인간들이 지친 얼굴로 쏟아져나왔다. 요람을 떠난지 어느덧 50억년. 마침내 인류는 그들 어머니의 품으로 되돌아온 것이였다. 지구는 자신을 사막으로 만든 못된 자식도 다정히 반겼다.


인류가 50억년만에 태양계로 돌아온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그들이 저 머나먼 우주에서 억년간 겪은 모든 일로부터 휴식을 위해 온 것일수도, 아니면 자기들끼리의 전쟁에서 패해 쫓겨온 것일 수도 있었다. 그중 무엇이 맞던, 50억년만에 지구로 돌아온 인류는 조용히 사막의 위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그리고 묵묵히 모래 위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 후 약 1천만년. 늙은 태양이 결국 적색거성으로 변하였다. 온 하늘은 짙은 붉은 색의 태양으로 가려졌고 그 외의 모든 것은 마치 그 안에 먹혀들듯 사라져갔다. 1천만년 전 지구로 돌아왔던 지친 인류는 지구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으며 마침내 자신들을 덮치는 위대한 심판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렇게, 한 위대한 종족은 진화라는 기나긴 여정의 끝을 맞이했다. 


태양은 지구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팽창했다. 화성, 목성, 토성, 등등의 거대한 행성들이 그들의 장대한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으며 사라졌고, 결국 태양은 태양계의 끝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것은 태양이라는 이야기의, 태양계라는 이야기의 막장이였다. 모든 것의 마지막에 도달한 태양은 100억년 전 자신의 아버지처럼 중력을 잃고 성운으로 화했다. 그 성운은 100억년 전처럼, 한 별의 죽음을 애도하듯 붉은 빛으로 빛났다


하지만 역시나 그것이 끝인 것은 전혀 아니였다. 우주에서 죽음과 충돌은 또다른 탄생의 전조일 뿐이였으니까. 격변하는 성운 속에서 조그마한 애기별이 또다시 탄생하였다. 그 별은 마치 자신의 미래를 알듯 조용하고 무심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