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08 01:43

희망이 없었다. 버진 메리의 노후화 된 방열 코팅은 순식간에 벗겨졌고 대기와의 마찰열은 위험수치에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머독은 버진 메리가 가지고 있던 잉여 에너지 모두를 함선 냉각에 사용했지만 불 탄 집에 침 뱉기였고 냉각수또한 마찬가지였다. 결국 머독은 모든 선원들에게 우주복을 입힌 후 생명유지장치와 인공중력까지 중단해서 에너지를 모았고 그것으로 겨우겨우 냉각을 유지했다. 물론 그렇게 함선과 함께 녹아서 타죽기라는 빠른 죽음을 방지했다 해서 행성 지표면과의 추락이라는 느린 죽음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 테키가 목숨을 무릅쓰고 엔진을 중단시킴으로서 추락하는 시각을 어느정도 늦출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언젠가 추락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머독은 버진 메리가 행성 지표면에 충돌하기까지 약 10여분 뿐이 남지 않자 선원 모두를 브릿지로 호출했다. 테키와 던은 테키의 부상때문에 오지 못했지만 나머지는 모두 모일 수 있었다. 그들 모두는 머독이 무언가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 아닐까 기대를 했지만 당연하게도 그것은 헛바람이였고 그들 모두는 물론 그들을 부른 머독까지 입을 열지 않자 음울한 절망이 느리게 브릿지를 감돌았다. 그 침묵은 제인이 상황 보고를 하기 전까지 깨지지 않았다.


"추락 예정시간까지 약 5분 남았습니다."


인공 중력이 사라진 상태에서 행성의 중력이 버진 메리가 추락하며 발생한 일시적 무중력과 섞여 생긴 혼란 속에서 몸을 가누기 위해 벽에 부착 된 손잡이를 꼭 잡고 있던 머독은 그 말을 듣자 죽음까지의 시간이 5분밖에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 5분은 죽음이 다가오기 전에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기도 했다. 나머지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절박함과 아쉬움이 눈빛에 가득했다. 머독은 모든 부담감이 드디어 사라진다는 사실에 해방감을 느낌과 동시에 버진 메리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절망감또한 느끼며 굳게 다물어졌던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무엇이 미안하다는 것일까. 버진 메리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 미안하다는 것일까? 아니면 결국 선원들이 객지에서 개죽음당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 미안하다는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과연 머독은 무엇이 미안하다는 것일까. 검은 곱슬머리가 인상적인 조를은 그 말에 피식 웃더니 말했다.


"머독이 미안할게 뭐 있다고 그래요. 머독은 최선을 다했잖아요."


아, 위로는 얼마나 무너진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가. 머독은 조를의 말이 진심이건 빈말이건 단순히 위로받는다는 사실 만으로 온갖 무게 속에서 산채로 찢어질 것만 같던 심장이 낫아지는 것을 느꼈다. 테키가 봤다면 죽음의 공포 앞에서 과다분비 된 엔돌핀의 영향이라며 비웃었겠지만, 머독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머록은 문득 유난히 입이 짧아 고생하던 조를에게 자신이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문명으로 돌아가면 점심 한끼 사주겠다는 약속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조를은 씁쓸한 웃음을 여전히 짓으며 말했다.


"백포도주 마신 것으로 만족해야죠. 기억 나세요? 죽은 부선장이 미쳐서 모두를 쏴갈길 때 제가 재빨리 그 백포도주를 챙겼었잖아요. 머독은 그런 저한테 미친짓 그만하고 도망이나 치라 하다가 피격당해 왼어깨가 부서졌었죠."


머독은 짧게 웃으며 답했다.


"어깨가 회복되자 마자 너의 면상을 한대 갈겼었지."


조를은 그 말을 듣는 것 만으로도 뺨이 얼얼해지는 것 같아 추억에 잠긴 미소를 짓으며 그때 얻어맞았던 왼 볼을 어루만지려 했다. 하지만 대신 그의 얼굴을 둘러싸고있는 구체의 헬멧만이 만져질 뿐이였다. 그 헬멧은 조를에게 잠시나마 잊고 있던 과거와 현재의 씁쓸한 괴리감을 잔인하게 되새겨주었다.


"정말 뭘 먹어서 그리 힘이 좋았던지, 원."


제인은 재차 보고했다.


"3분 남았습니다."


쭉 찢어진 눈이 인상적인 황인종인 밈은 그 말을 듣더니 안타깝다는듯 말했다.


"이거 참 정말 아쉬운 일이야. 제인하고 한번 붙어보기만을 항상 기대했는대. 맨날 튕기더니 결국 둘다 처녀귀신하고 총각귀신이 되어 버리게 됬어. 거사를 3분만에 끝낼 수야 없는 일이니."


제인은 그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맵게 말했다.


"총각귀신은 빼야하는 것 아닌가요? 버진 메리의 정체성이 흔들리게 만든 당사자가 누군대, 참. 버진 메리의 여승무원중 당신이랑 한번도 자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잖아요."


밈은 제인을 유쾌한 기미가 남아있기에 더 씁쓸해보이는 눈초리로 바라보더니 눈길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모두 죽었지."


그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브릿지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모두 탐험가 정신에 빛나던 젊은이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우울함이였다. 그때 제인이 입을 열었다. 브릿지의 모두는 제인이 '1분 남았습니다. 충격에 대비하세요.' 라고 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제인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모두는 혹시 하는 눈길로 제인을 바라봤다. 제인은 믿을 수 없다는듯 어버버 하다가 터미널을 조작해 말없이 한 통신을 연결시켰다. 유쾌한 목소리의 중년 남성이였다.


"귀하의 함선이 위중한 위급사태에 놓여있는 것을 저희는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귀하의 함선을 구출할 능력과 용의 둘 다 가지고 있으며 구출을 위해 견인용 셔틀을 보낼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저희의 구출을 승락하시겠습니까?"


모두는 놀라 제인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년 남성은 어째서 아무런 대답이 없는지 의아한듯 다시 물었다.


"구출을 승락하시겠습니까?"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머독은 재빨리 달려가 마이크를 잡아챈 후 절실하게 외쳤다.


"당장! 당장 저희 함선을 구출해주십시요!"


중년 남성은 그 말에 사람좋게 웃더니 말했다.


"그럼 셔틀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방어 시스템을 모두 정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험한 우주에서는 서로간에 돕고 살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