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22 19:25

뚱뚱한 심장의 북부 워프 게이트가 폭파 된지 며칠 후, 남부 워프 게이트를 타고 온 지원군은 그대로 뚱뚱한 심장에 발이 묶이게 됬다. 타고갈 워프 게이트가 없는대 어디로 가겠는가? 그저 북부 워프 게이트의 재건축이 끝나기만을 기다려야만 했다. 물론 발이 묶인 것은 지원군만이 아니였다. 극도로 도시화 된 행성인 뚱뚱한 심장은 지방 물류의 중심지이기도 했고, 수많은 시민들이 오고가기도 하는, 그야말로 지역의 중심지였다. 타 지역으로 이동하려는 시민들의 숫자만 무려 5천만명이였고, 사치품및 필수품을 거래하는 상인들의 화물선도 그만큼은 됬다. 그들 모두를 수용하기 위해 뚱뚱한 심장측은 임시로 대규모 우주정거장을 건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뚱뚱한 심장의 밤에는 별이 아니라 함선만이 빛날 정도로 혼란의 도가니로 변해버렸다.


그것은 바로 밀비가 바란 결과이기도 했다. 지원군에는 순양함만 4천기가 있었다. 날고 기어봤자 순양함 1천기로는 그들을 무찌르기조차 불가능에 가까울텐데, 밀비는 그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 않으며 대려가야만 했다. 하지만 수많은 민간 함선들이 우글거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그들은 군대가 아닌 시민과 상인들이고, 전쟁의 피해를 최대한 피하고자 했다. 즉, 밀비의 순양함들이 나타나면 사방으로 도주하며 혼란을 야기시킬 것이란 뜻이였다. 밀비는 그런 혼란을 틈타 지원군의 기함으로 강습해 지원군의 지휘관을 습격할 계획이였다.


그리고 그 계획은 멋들어지게 성공했다. 밀비가 나타나자 시민들은 사방으로 도주하며 밀비가 바랬던 바로 그 혼란을 야기시켜줬다. 밀비는 외쳤다.


"미리 훈련한 대로 진행한다! 순양함 100기는 기함을 따라 지원군의 기함을 습격하고, 나머지는 10기 1조로 활동하며 혼란을 틈타 게릴라 활동을 벌인다! 목표는 지원군의 기함을 획득할 때 까지의 시간벌이! 최대한 적에게 손실을 적게 주고, 스스로도 손실을 최소화하길 바란다! 실시!"


밀비와 100기의 순양함은 걸리적거리는 시민들을 공격하고, 가끔은 그들을 방패로도 삼으며 그대로 지원군의 기함을 포위했다. 부관은 보고했다.


"지원군 기함의 포위를 마쳤습니다. 피해는 2기의 순양함 반파. 근방의 지원군 함선들은 모두 저희의 게릴라 활동과 시민 함선들에 막혀서 접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약 20분의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밀비는 만족스러운듯 미소를 짓었다.


"좋군. 지원군 기함의 브릿지로 통신을 신청하도록. 이런 일은 빨리 끝내야지."


잠시 후, 밀비의 명령대로 지원군 기함의 브릿지와의 통신이 보내졌다. 지원군 기함의 브릿지는 통신을 승락했고, 두 함대의 함장들은 스크린과 스피커를 통해 대면하게 됬다. 지원군을 통솔하는 완숙한 40대인 제1기동야전군단 전 부지휘관 링거는 밀비가 보이자 살짝 놀란듯 싶었다. 그는 말했다.


"자네, 얼굴이 눈에 익어. 아, 자네 밀비 아닌가? 1년 전 참모진에 들어왔던 말단 참모. 자네 지금 거기서 뭐하는 것인가? 설마 야만인들에게 넘어간 것인가? 대답해보게. 어째서 지금 제국의 군대가 해적으로 위장해 제국을 공격하고 있는 것인가?"


밀비는 손을 까딱했다. 마이크를 가까이 가져다달라는 뜻이였다. 부관이 마이크를 가져오자 밀비는 미소를 짓으며 말했다.


"야만인에게는 넘어가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 제국을 위한 일이지요."


링거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였다. 그는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하지만 곧 입을 다물었고, 속내를 모르겠는 잠잠한 눈빛으로 밀비를 노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가 하고 있는 것이 반역행위라고 말하려 했지만, 그것은 아마 자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 그러니 묻겠네. 지금 이 모든 행위의 목적이 무엇인가?"


밀비는 미소짓으며 말했다.


"본성으로 보내지는 지원군 함대의 획득입니다."


링거는 여전히 속내를 모르겠는 잠잠한 눈빛으로 밀비를 노려봤다.


"그것은 불가능하다고밖에 답해주지 못하겠네. 그래, 자네는 지금 나를 포위하고 있지. 하지만 나는 지엄한 의회와 황제의 명령을 따르는 제국의 군인으로서, 본성으로의 호출을 응답할 수밖에 없네. 그것은 싸구려 협박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물론 밀비는 링거가 이렇게 나올 것임을 예상했다. 밀비는 짙은 미소를 짓으며 그간 머릿속에서 수정하고 또 수정해온 언구들을 빠르게 떠올렸다. 비록 밀비가 여유있게 미소를 짓고는 있었지만, 그의 손바닥은 긴장과 흥분에 분비 된 땀으로 범벅이 되 있었다. 그는 지금 도박을 하고 있었다.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를 따라온 사람들까지 모두 밑바닥으로 처박을 수 있을만큼 위험한 도박. 하지만 밀비에게 그런 위험은 그저 성공의 기쁨을 더 맛있게 해주는 전채일 뿐이였다.


"저 또한 제국의 군인이고, 저 또한 제국을 위해 종사하는 자입니다. 하지만 지금 의회와 황제는 황제가 아니라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 어느 황제와 후계자들이 제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영광을 위해 제국 남아들의 피를 흘리게 하고, 세상 어느 의회가 그것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습니까? 제국은 그들로 인해 무너지고 있습니다. 외곽의 야만인들은 이제 제국을 맛들어진 먹이로 보고 있습니다. 문명과 야만의 경계가 넘어간다면 어둠 속에 숨어서 기회만 보고 있던 강력한 부족들이 제국의 것을 하나라도 더 빼앗기 위해 들고 일어나겠죠. 문명과 야만의 경계는 단순한 항성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중앙과 외곽 사이의 파워 밸런스가 누구에게로 넘어갔는지를 말해주는 광산 속의 카나리아입니다. 의회와 황제는 제국을 위해서 존재하지, 제국이 의회와 황제를 위해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오래전에 잊었지요. 저는 지금 묻겠습니다. 당신 또한 그것을 잊으셨습니까?"


링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밀비는 말을 이었다.


"주변의 시민들도 한번 생각해보시죠. 그들이 어떻게 될지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것 같습니다."


링거는 밀비의 말에 고뇌하는듯 싶었다. 물론 그가 단순히 밀비의 말을 듣자마자 생각을 바꾼 것은 아니였다. 그 또한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문명과 야만의 경계를 떠나는 순간부터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던 것이 컸다. 그 또한 문명과 야만의 경계는 중앙 후계자들의 전쟁보다는 더 중요하고 가치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제국과 의회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군인은 군인이 아니라 반도라는 것도 알았다. 밀비는 그 두가지 상반 된 생각의 전투에 끼어들어 한쪽에 무게를 실어주기만 했을 뿐이였다. 링거는 질끈 감았다.


"알겠네."


밀비는 링거에게 되물었다.


"문명과 야만의 경계로 되돌아가시겠다는 것입니까?"


링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링거는 주변 세계가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계속 눈을 감은채 물었다.


"자네가 새로운 지휘관인가?"


밀비는 도박에서 승리했음을 직감했다. 사람들을 통솔해서 계획을 성공시키고 그것으로부터의 이득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흥분되고 짜릿한 일인가. 밀비는 아름다운 미소를 짓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링거는 밀비에게 힘없이 경례를 했다. 그리고는 통신을 끊었다. 링거는 통신이 끝나자마자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듯 힘없이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는 그와 그가 앉은 의자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무너져내리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제 그는 제국의 군인이 아닌 제국의 반도였다. 40년이란 세월동안 굳건히 쌓인 링거의 세계는 그렇게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