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05 01:59

때는 우주단위의 정복이 한참 활발했으며 수많은 인물들이 나타나고 사라졌던 초기 안드로메다. 자신을 박정희라 칭하는 인물이 대규모의 함대를 이끌고 은하의 중앙으로 대규모 원정을 떠나고 있었다. 많고 많은 곳중 은하의 중앙으로 박정희가 원정을 떠났던 것에는 2가지 이유가 있었는대 첫째는 명분이요 둘째는 가스였다. 우선 명분을 보자면 은하의 중앙은 모든 행성이 근본 된 곳으로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어머니 행성 지구에게 모든 은하인들이 가지는 아련한 감정과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곳이였고 그곳을 가지지 않은 군주는 정통성이 없는 깡패집단 우두머리일 뿐이였다. 둘째 가스를 보자면 안드로메다 은하의 중심은 인류가 근본 된 우리 은하와 같이 다량의 탄소를 보유하고 있었는대 그 양이 어마어마해 중앙의 행성들은 대부분이 막대한 양의 탄소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렇게 탄소가 다량 포함 된 행성에서는 다양한 화학 현상에 의해 생겨난 탄소화합물들이 호수나 강의 형태로 존재하곤 했는대 그런 탄소 화합물중 대표적인 것들이 바로 가스와 석유였다. 가스는 항성간 운행을 하는 함선이라면 반드시 필요로하는 에너지원이였고 석유는 과거 석유가 주에너지원으로 등장했을 때도 돈없는 하층민들이 석탄을 사용했듯 여전히 싼값으로 얻을 수 있는 에너지원이란 이유로 빈민들이 애용하니 둘다 제대로 된 사회를 이루려면 반드시 보유해야 하는 자원들이였다.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박정희의 함대는 중앙을 마치 칼로 두부썰듯 무시무시한 기세로 공략해들어갔다.


천문학자들이 1A3-02라 명명한 가스행성도 그렇게 박정희에게 점령당한 행성들중 하나였다. 주둔군을 행성에 남김으로서 함대를 주기적으로 약화시키고 전진속도를 늦추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박정희는 적의 함대를 몰아낸 행성들에 자신의 깃발만 꽂은 후 따로 식민지를 건설하거나 정착민을 파견하지는 않았는대 그런 박정희의 결정은 군사적으로는 효율적이였지만 1A3-02를 포함한 수많은 행성들을 사람없는 죽음의 행성들로 바꾸어놓았다. 소박한 사람들이 모여 근면하게 일해 건설한 소규모 식민지는 궤도 폭격에 의해 내부의 인원과 함께 모조리 파괴 된 후였고 거대한 탄소 화합물의 끈적한 호수가 식민지가 사라진 곳에 밀려들어와 있었다. 거대한 탄소화합물의 바다 곳곳에는 산화철로 이루어진 사막 섬들이 형성 되 있었는대 당연하지만 탄소화합물이 내뿜는 독성 가스 때문에 아무런 생명체도 살아남지 못했다. 1A3-02는 생명에게 매우 적대적인 행성이였다.


하지만 이런 행성도 누군가에게는 파라다이스이기 마련. 전투중 함대에서 우연찮게 분리 된 후 아무것도 없는 끝없는 공허를 항해하던 박정희 1함대 소속 구축함 '버진 메리' 호는 1A3-02를 발견한 후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그들은 보유중이던 가스가 거의 바닥났지만 아무런 행성도 발견하지 못해 우주미아로 죽는 수뿐이 없는 것인가라 생각하며 절망에 빠져있었는대 1A3-02를 발견한 것이였다. 버진 메리는 관측장치가 망가져 행성의 정보를 원거리에서 관측할 수 없었기에 선원들은 1A3-02가 무인행성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지만 선원들은 모두 그들이 발견한 행성이 문명이 번성한 행성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110명이나 되던 선원중 무려 6명만 살아남은 살벌한 내부 분쟁에 그들 모두 지쳐있었고 문명으로 되돌아가 휴식을 취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버진 메리의 임시 선장인 머독은 브릿지에서 조용히 자신을 제외한 다섯명의 생존자가 파티를 벌인답시고 마지막 남은 사치품인 싸구려 백포도주를 마시는 것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 항해는 반드시 지루해지기 마련인대다 그 지루함을 없애겠다고 가져들 오는 다양한 물건들도 결국 질리기 때문에 오랜 기간 항해를 한 함선에서 사치품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이 되곤 하였다. 가장 재밌는 가상현실 게임도 수백시간 가지고 놀면 결국 지루해지고, 가장 맛있는 별미도 언젠가는 바닥나기 마련이 아닌가? 지금 선원들이 한방울이라도 흘릴새라 할짝거리며 마시고 있는 백포도주는 마시기 너무 아까워서 다들 냉동고에 보관하고 있던 물건이였다. 그들이 그것을 마시는 이유는 자축의 의미도 있었지만, 문명에 돌아가면 더 맛있는 것들을 원하는만큼 먹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머독은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껴서인가, 선원중 유일한 여성이자 홍일점인 제인은 유쾌한 목소리로 머독을 불렀다.


"머독! 뭐 볼게 있다고 혼자서 청승 떨고 있어요. 다들 마시는 김에 머독도 와서 한모금이라도 마셔요. 비록 컵이 하나도 안남아서 다들 병나발을 불긴 했지만 그래도 백포도주 맛이 워낙 강해서 침맛은 별로 안나요!" 


머독은 제인의 유쾌한 목소리를 듣자 순간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미네랄 가루를 타서 마시는 증류수 대신 다른 음료를 마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백포도주가 달달하게 혀를 감싸는 것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갈증이 시작됬다. 하지만 머독은 아랫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상사가 가면 분위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잘 알았기에 제인의 초대를 거절했다. 제인은 아쉽다는듯 혀를 한번 차더니 머독에게 보라는듯 백포도주를 맛나게 마셨다. 머독은 제인의 그런 행동에 절로 유쾌해져 나머지 선원들처럼 크게 웃었다. 그도 사실 선원들처럼 문명에 되돌아간다는 사실에 이미 반쯤 취해 있었다.


그런 즐거운 분위기가 사라지는 것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머독이 착륙하려는 행성에 궤도 진입 허가를 요청했는대 10분이 다 되도록 아무런 응답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머독은 다시 허가를 요청했지만 역시 묵묵부답이였고, 브릿지의 달아오른 열기는 찬물을 뒤집어쓴듯 차갑게 식었다. 기술전담인 테키는 쪼그라들어가는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아무래도 식민지가 건설 되지 않은 무인 행성에 저희가 도착한 것 같습니다."


무인행성! 그 단어는 인간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마법의 단어이기라도 한건지 순식간에 브릿지의 모두를 실망감에 빠트렸다. 왠만한 상황에서도 유쾌함을 유지하는 제인도 울적한 표정을 짓었다. 기대감이 큰만큼 실망감도 거대했다. 머독은 모두의 기대감이 사그라지는 것을 안타까운 눈으로 보면서도 일단 무인 드론을 배출시켜 행성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도록 지시를 내렸고 선원들을 해산시켰다. 선원들이 사라진 브릿지에 홀로 남아 머독은 조용히 안경을 벗고 콧잔등을 짓눌렀다. 좌절감을 해소하는 그만의 오랜 버릇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