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14 01:41

문명과 야만의 경계 상황실에는 비상이 걸렸다. 상황병들은 상관의 지시에 따라 항성급 홀로그램 매핑을 위한 자료 검색과 입력을 바삐 해나갔고, 일부는 고급 장교들에게 관측병들이 무엇을 발견했는지를 보고하기 위해 U패드를 바삐 두들겼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바로 하이퍼 홀. 하이퍼 드라이브의 목적지에 나타나는 암흑의 구체였다. 하지만 이 하이퍼 홀은 기존의 어떠한 것과도 유사하지 않았다. 하이퍼 홀이 온 항성계 곳곳에 무려 200개나 나타난 것이였다.


"200개?"


상황병의 긴급보고를 받은 밀비도 잠이 덜 깨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했다. 밀비의 귀에 꽂힌 이어폰을 통해 상황병은 밀비에게 재차 숫자를 말해주었다.


"네, 지휘관님. 정확히 200개입니다."


밀비는 자신이 해롤드에게 한방 먹었음을 인정해야했다. 사실 200개의 하이퍼 홀을 생성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였다. 이론상으로는 모조 하이퍼 엔진을 통해 아무것도 들어가거나 나올 수는 없지만 하이퍼 홀은 형성할 수 있는 하이퍼 웜홀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교란의 목적으로 사용한 지휘관들이 실제로 과거에 다수 존재하긴 했었다. 다만 아무도 그것을 200개나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을 뿐.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한 발상이였지만, 간단하면서도 정작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기발한 발상들이 이 세상에 어디 한두개뿐인가.


200개의 거짓 하이퍼 홀은 단순히 기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매우 효과적인 전술이기도 했다. 하이퍼 웜홀이 한두개 뿐이라면 감시위성을 통해 아주 간단히 진짜와 가짜를 밝혀낼 수 있었다. 하지만 200개나 되는 하이퍼 웜홀이 옆집 개이름도 아니고, 어느 세월에 진짜와 가짜를 밝혀낼 수 있겠나? 운좋게 진짜를 밝혀낼 수도 있겠지만, 가짜를 우선 보내고 진짜를 그 다음에 보낸다면 그런식의 운좋은 찍기를 방지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적의 함대가 도착하는 위치를 밝혀내지 못한다는 것은 소규모의 적으로 대규모의 적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날려버린다는 것을 뜻했다.


상황이 얼마나 위급하건 말건, 상황실에 모인 고위 장교들은 개판 오분전의 모습으로 각자의 의견을 목청 떨어져라 외쳤다. 본성과의 연락이 해롤드에 의해 완전히 장악됬기 때문에 밀비는 전사한 고위 장교급들을 보충할 수가 없었고, 그 결과 기존의 위관급 장교들이 영관급 장교로 말도 안될 승진을 했기에, 고위 장교로부터 고위 장교다운 모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였다.


"문명과 야만의 경계의 라인들을 따라 병력을 배치 해 적을 고립시키고 포위해야 합니다!"


라인은 문명과 야만의 경계 사방에 뻗어있는 두터운 크리스탈 강판의 거대한 선들을 의미했다. 그것들에는 레일이 장착 되 있었는대, 방어시설들은 레일을 통해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었다. 라인은 문명과 야만 항성계의 행성 궤도들과 동일한 모양의 타원 여러개와, 그 타원들을 수십개의 선들이 잇는 형태로 되 있었다. 


"하, 너무 긴 방어선은 짧은 것만 못할지어니! 저희는 항성과 가장 가까운 행성인 이곳, 심장부의 레일만을 지켜야만 합니다!"


"방어시설 따위에 얽매여서야 되겠습니까? 저희는 당장 적의 본거지로 향해 그곳을 점령해야만 합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입니다!"


"누가 소위 출신 아니랄까봐, 정말 헛소리말고는 머릿속에 든 것이 하나도 없나보군."


"뭐? 지금 그거 누구야? 누가 말했어?"


밀비는 그 모두를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고 있었다. 장교들의 의견을 듣는 대신, 밀비는 자신만의 생각에 깊숙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밀비가 생각하기에 현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를 지키냐가 아니였다. 어디를 지키든 지키지 못할 것이 불보듯 뻔했다. 대형급과 중형급 둘다에서 제1기동야전군단의 전력은 너무도 부족했다. 방어시설도 방어시설 나름이지, 지켜주는 함대가 없다면 어찌 버티겠나. 


'군대의 규모를 늘려야 해.'


밀비는 제1기동야전군단의 전력표와 보고서들을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다. 그 결과 밀비는 모두가 잊고있던 사실 한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의 전력은 부족하지 않았어."


상황실의 모두는 밀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네?"


그들이 이해하던 말던, 밀비는 무언가에 홀린듯한 얼굴로 상황병에게 시킬 생각도 못하고 U패드로 보고서들을 잔뜩 뒤졌다. 그러다 원하던 것을 발견했는지 모두에게 전송해주었다. 그것들은 제1기동야전군단에서 본성으로 보내진 지원군의 현 위치및 상황 보고서였다.


"전함 4천대와 순양함 4천대. 숙련 된 정예 승무원들이 조종하고 있는 것들이다. 원래 우리의 것이니, 중간에 가로채도 별 문제는 없겠지. 당장 우리보다 저것들이 더 긴박하게 필요한 곳이 은하 어디에 있는가? 제국의 국경을 지키기 위해 우린 당장, 바로 이 순간에, 저것들이 필요하다."


장교들은 어이없다는듯 말했다.


"저희도 그거야 알죠. 하지만 후계자들이 그 함대를 내놓을리가 없잖아요? 내놓을거면 이미 지원군을 보내왔겠죠."


밀비는 매혹스러운 미소를 짓으며 답했다. 흥분과 열망에 가득찬 그 미소는 아름다웠다.


"내가 언제 그들에게 부탁해서 함대를 가져온다고 말했는가?"


장교들은 순간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곧 이해할 수 있었다.


"강탈해오겠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제국 본성에 대한 직접적인 반역행위입니다!"


밀비는 매혹스러운 미소를 지우지 않으며 말했다.


"제국의 국경이 야만인들에게 침탈당하는 것을 두고보기만 하는 것은 제국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반역행위가 아닌가? 이곳이 넘어간다면 근방 50파섹이 모두 야만인들에게 넘어갈 것이야. 이곳은 그런 거점이니까. 그것은 제국으로 보내져 제국 신민을 위해 쓰여야 할 귀중한 자원들이 모두 야만인들의 뱃살이나 두텁게 만드는대 사용될 것이란 뜻이지. 그런대도 그런 소리나 하는 것을 보니 자네들은 제국의 남아가 아닌가보군."


적절히 애국심을 뒤흔드는 말이였다. 밀비 스스로는 애국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지만, 적절한 때 애국심을 사용하면 얼마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장교들은 과연 예상대로 밀비에게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밀비는 그것이 만족스러운듯 웃더니 말을 이었다.


"메리우스, 조나튼, 데거메일, 리븐, 메인은 각자 휘하의 장교들을 이끌고 1번 베이스부터 50번 베이스까지 모든 베이스로 향해 얻을 수 있는모든 함선과 무기들을 싸그리 긁어오도록. 각자 1~10, 11~20, 21~30, 31~40, 41~50번을 담당하면 될거야. 일주일안에 끝내도록. 순양함대장 밀러는 모든 순양함들이 정확히 24시간 후에 워프 드라이브 준비가 되있게 하도록. 워프 드라이브니까 너무 시간이 짧다고 징징대지 말게. 또한, 모든 순양함으로부터 소속을 알아볼 수 있을 전자적 및 시각적 표식은 모조리 지워두도록."


장교들은 갑작스레 내려진 임무들에 당황했지만, 곧 시간이 촉박함을 깨닫고 재빨리 상황실을 나섰다. 한편, 밀비의 부관은 도대체 본성으로 지원간 함대를 어떻게 대려올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워프 드라이브중인 함대는 워프 게이트의 파괴 말고는 어떠한 것으로도 방해 될 수 없었다. 밀비는 부관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함대를 대려올 것인지 궁금한가보군."


부관은 살짝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네,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밀비는 말했다.


"불가능해보이나?"


부관은 답했다.


"네."


밀비는 간단히 답했다.


"가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