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21 08:55

새하얀 몸체의 우주왕복선은 끝없는 황무지 한가운대에 설치된 발사대에 지상으로부터 돋아난 거대한 남근처럼 서있었다. 끝없는 주홍빛 황량한 대지위에 그렇게 우뚝 서있는 인류 과학 문명의 집결체는 아름답고도 거대했다. 매캐런국제공항까지 항공기로 이동한 후, 그곳에서부터 발사대까지 나사에서 빌려준 버스로 이동중이던 승무원 모두는 창문 사이로 보이는 그 적막한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입을 열 수 없었다.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는 그들의 머리 위로 느리게 황야의 아침이 밝았다.


약 3달간의 훈련기간동안 사회성 훈련도 실시했었기에, 버스안은 활기찬 9명의 젊은 남녀들의 요란한 소리로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젠은 홀로 뒷좌석에 묵묵히 앉아있을 뿐이였는대, 그것은 나머지 아홉이 젠에게 아무리 말과 농을 걸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아서 한명을 제외하고는 그냥 그를 무시하기로 결정했었기 때문이였다. 젠도 그것이 편한듯 싶었다.


하지만 그들중 한명은 도저히 젠을 홀로 내버려둘 생각이 없는듯 싶었다. 자신과는 확연히 달라보이는 누군가에게 느끼는 호기심 때문인지, 그는 항상 젠을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는지 나머지와 웃고 떠들던 도중 젠이 홀로 앉아있는 것을 보고는 그에게 걸어왔다. 젠은 자신에게 걸어온 이름이 기억 안나는 누군가를 여전히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는 무덤덤한 얼굴로 바라봤다. 버스가 낮아보이는 큰 키에 넉살만큼 덩치도 좋은 그는 실실거리며 젠에게 다가왔다.


"젠! 지금 여기서 혼자 왜 청승떨고 있는거야? 이제 곧 우주로 나가는대 하나도 안떨려? 난 지금 저 창밖의 거대한 왕복선을 타고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게 될 것이란 사실이 너무 떨려서 주체할 수가 없고, 아마 저기 나머지 여덟들도 마찬가지일텐데. 만약 로켓이 중간에 기기오류로 추진을 멈추거나, 홀라당 타버린다면 우린 그냥 툭 하고 떨어져서 아아악 하고 죽게될 것이잖아. 난 그렇게 죽으려고 수많은 훈련들을 받지는 않았다고."


젠은 넉살좋게 말하며 자신의 옆에 털썩 앉은 덩치 좋은 누군가를 무심히 바라봤다. 그는 문득 젠을 보더니 믿을 수 없다는듯 말했다.


"젠, 설마 또 내 이름 기억 안나는거야? 정말 젠은 훈련은 우수하게 받던대, 이런 것에는 젬통인 것 같다니까. 사람들은 자기 이름 기억 못하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이사람아! 성의없고 자신과 별로 교우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받아들이거든. 뭐, 이 경우에는 그것이 그리 오해인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좋은게 좋은거라잖아? 뭐, 역시 뭐가 좋은 것이고 그 뭔지 모르는 좋은게 어떻게 좋은건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여하튼, 내 이름은 다시다시다시 말하지만 김현욱이야. 김! 현! 욱! 알겠지? 쇠 김자 검을 현자 욱할 욱자. 이름에서 말하다시피, 난 가끔 때가 맞으면 욱할줄도 안다고. 게다가 그렇게 욱하면 그냥 욱하는게 아니라 검게 욱하니까 조심해."


김현욱은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모든 것을 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젠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어깨를 으쓱하더니, 친근감의 표시로 젠의 어깨를 툭 친 후 손을 흔들며 다시 나머지 여덟에 합류하였다. 젠은 그것을 묵묵히 바라보기만 하였다. 젠은 그런 김현욱의 생명력 넘치는 모습이 자신의 과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대학에 재학중일 때 저랬으리라. 그때의 젠에게 세상은 너무도 명쾌한듯 싶었고, 이 세상에는 오로지 한개의 길만이 존재하는듯 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그저 아이의 어리석은 오해였을 뿐이였다.


젠은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자라났다. 아버지는 건실한 중규모의 기업을 운영했기에 대학교수인 어머니가  젠을 위해 요구하는 수많은 교육들을 무리없이 감당해줄 수 있었고, 그런 어마어마한 돈의 투자와 대학교수 어머니의 열정적인 훈육을 받았기에 젠은 대학으로 소위말하는 SKY중 하나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대학교에 들어간 젠의 꿈은 의사가 되서 가문을 빛내는 것이였다.


그러다 97학번이던 젠이 입학한 바로 그 해에 imf가 터졌다. 첫 2년은 부모가 어려워지는 경제상황을 내색하려 하지 않았기에 젠은 부모가 imf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었다. 하지만 99년대에 결국 아버지의 회사가 부도나서 더 이상 받던 교육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기에 젠은 자살한 아버지가 남긴 빚을 갚기 위하여 공부하는 틈틈이 과외를 뛸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결국 의사의 꿈을 포기한 다음 공무원이라도 되려 하다가 그것도 포기하고 중소기업에서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며 살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수입으로는 아버지가 남긴 빚은 커녕 그것의 이자조차 갚을 수 없었기에 젠은 결국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한강 대교 위에서 투신하였던 것이였다.


덜컹.


마치 한강의 수면과 부딪힐 때의 느낌처럼 버스가 정지하는 것을 느끼며 젠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나머지는 여전히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버스에서 내리고 있었다. 젠은 느리게 일어나 그들을 따라 내린다음, 하늘을 무심한 얼굴로 올려봤다. 어둑한 핏빛 새벽이 떠오르는 아침 태양에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 가운대 있는 발사대와 새하얀 우주선은 주변 환경과 너무도 동떨어져 보였는대, 마치 알라딘의 지니가 그것을 도시로부터 들고와 그곳에 떨어트린 것 같았다. 어쩌다보니, 의사가 꿈이였던 한 어리석은 아이는 어른이 되어 우주비행사로서 타지 황야의 마법의 성에 도착하게 되었다. 젠은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들을 이끄는 나사에서 나온 인원을 따라 느리게 걸었다. 비정상이 정상인 바스락거리는 황무지의 땅 위로 자유로운 바람이 웃듯 불었다. 그것이 비웃음인지, 웃음인지는 아무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