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11 01:18

쓰고나니 워낙 불만족스러워서 대대적으로 뜯어고쳤습니다.




그렇게 기절한지 얼마나 흘렀을까. 저는 마치 곤돌라에 타서 기분좋은 낮잠을 즐기는 것처럼 산뜻하게 제 몸이 요동치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순간 저는 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제가 여전히 우주선에 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깨질듯한 머리를 겨우겨우 진정시키며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눈을 떴습니다.


그러자 막막하게 펼쳐진 전자기폭풍이 보여오더군요. 그 광경은 세상에서 가장 함축 된 메시지였습니다. 말로는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한순간에 말해주었지요. 그것은 저에게 제가 여전히 행성에 처박혀 있다고 말해줬으며, 그것은 제가 여전히 세포하나 진실이 아닌 몸뚱아리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저의 지친 마음은 그 잔인한 헤집기에 찢겨져나갔습니다. 저는 제 눈이 멀기를 바랬습니다. 눈이 먼다면 그 지독한 전자기폭풍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됬을테니까요. 저는 대안책으로 대신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어리석게도 다시 한번 눈을 뜨면 전자기폭풍이 사라져있을 것이라는 어이없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실끝같은 희망에 두근거리며 눈을 떴습니다. 하지만 당연스럽게도 전자기폭풍은 언제나처럼 하늘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잠깐의 희망은 찢어지는 고통이라는 너무한 대가를 요구해왔습니다. 그때, 제 시야의 가장자리에 얼핏 무엇인가가 보여오더군요. 저를 요동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든 저는 고개를 돌려 그것을 바라봤습니다.


저는 많은 것들을 이미 충분히 봐왔다 생각했지만 그런 것을 볼 줄은 우주에 맹세코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것은 통짜 금속으로 된 뼈대를 가진 인간이 살을 모조리 발라내고 대신 전자덩어리를 덕지덕지 붙인 것만 같았습니다. 얼핏보면 철로 만들어진 뼈대가 혼자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기겁해 소리질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의 공포가 저의 우울한 마음을 잠시나마 날려보내줬던 것 같네요.


"으아아악!"


해골은 저의 비명소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며 묵묵히 계속 어디론가 걸어갔습니다. 저는 해골이 저를 공주님안기로 들고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최대한 멀리 떨어지기 위해 온몸을 이리저리 뒤틀었습니다. 하지만 기계답게 해골은 비인간적인 괴력으로 저를 꽉 잡아 놓아주지 않았고 아무리 죽을힘을 써봤자 요동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이런 힘이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계속 비명을 내질렀습니다.


"으아아아악! 해골이 사람잡는다!"


어림잡아 30분을 그렇게 소리지르며 이동한 후, 저는 소리지르는 것이 힘만 들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제서야 저의 머리는 대충 맑아지기 시작하더군요. 저는 일단 해골이 저를 해칠 생각은 아니라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해칠 생각이였다면 이미 해쳤었겠지요. 일단 위기감이 사라지고 공포도 사라지자 저는 순간 느껴진 황당함에 허한 웃음을 냈습니다. 잠시까지만해도 온갖 심란에 우울했던 저였지만 잠시 공포를 느끼자 마치 미친놈처럼 소리를 지르고 발버둥을 치지 않았습니까.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 겨우 살아만 있지만 마음과는 정반대로 갓 태어난 몸에는 힘이 넘쳤 흘렀습니다. 그 몸과 마음의 괴리감은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고통스러운가? 저는 순간 그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49명 더 있고 제 기억중 제것은 거의 없습니다. 제 성격조차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살다보면 끊임없이 변해가고 제 현 상태는 그저 현재의 상태일 뿐이였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경험들을 겪다 보면 저라는 인간은 달라져 가겠고 거짓인 기억들은 잊혀져가며 진실인 기억들에게 자리를 내주겠지요. 그때가 되면 저는 50명중 1명이 아니라 독자적인 개체가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마음이 정리되감을 느꼈습니다.


일단 마음이 정리되자 저는 저를 구해준 것으로 추측되는 해골에게 호기심이 느껴졌습니다. 이 해골은 누가 만들어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고 왜 저를 구해준 것일지 저는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해골의 곳곳을 살펴보았습니다. 해골은 기본적으로 강철 뼛덩어리처럼 보였지만 주요관절부에는 둥그런 강철보호막이 달려 있었는대, 그 안에 해골의 동력장치가 부착 되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또한 두 빈 눈덩어리에는 대신 빨간색의 조그만 점들이 달려 있었는대, 그것으로 시각정보를 수집하는듯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해골 안에는 연산장치가 달려있겠지요. 동력원은 주변의 전자기폭풍인듯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아우라처럼 일렁이는 전자덩어리들이 가득한 것이겠지요. 저는 해골이 제법 구식의 기술로 만들어져있지만 매우 정교하고 솜씨있게 마무리 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해골이 말도 할 수 있는지 궁금해 한번 소리 내 외쳐봤습니다.


"야, 해골! 너도 말 할줄 아냐?"


저는 그 말을 한 후 귀를 쫑긋거리며 기다렸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해골은 말을 할 수 없는듯 싶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였지요. 공주님안기, 아니 왕자님안기로 어디론가 이송되는 일은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어서 저는 대화상대를 바라고 있었거든요. 저는 하는 수 없이 해골이 제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제 머릿속 설정을 넣고 열심히 저 혼자나마 주절거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말은 할 수 없지만 들을 수는 있다고? 그거 참 잘 됬네. 그럼 내 말이나 열심히 들어."


그런대 생각해보니 저는 딱히 말할거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제가 우주에서 경험했던 일들은 모두 조작 된 기억이였습니다. 이 행성에 추락해 있었던 일들은 딱히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아니였고요. 저는 하는 수 없이 해골에게 질문을 하기로 했습니다.


"음, 생각해보니 딱히 할 말이 없네. 한번 너 얘기나 들어보자. 너는 뭐하는 놈이냐?"


저는 그 질문을 하고나서야 그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해골은 들을 수는 있지만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조차 제 머릿속 설정일 뿐이였습니다. 저는 머리를 벅벅 긁으려다가 슈트 껍질만 벅벅 긁은 후 그냥 축 늘어져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디로 대려가는건지 왜 구해준 것인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지만, 뭐 그래도 구해줘서 고맙다. 부상도 잘은 모르겠지만 아까부터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것을 보니 응급처치도 해줬나보네."


저는 더 이상 할 말을 생각해낼 수 없었습니다. 저는 지루함에 머리위의 슈트껍질을 벅벅 긁다가 문득 자신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반쯤 죽은 인간으로 왠 이상한 인간들을 따라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오래 된 건물의 잔해에 깔렸다는 사건 하나가 저라는 인간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저는 그 사실로부터 앞으로도 계속 저라는 인간이 변해갈 것이라는 사실에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됬습니다. 그 확신은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