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13 23:40

쾅!


우울한 정적만이 맴돌던 브릿지의 내부에 한 굉음이 울렸다. 그 굉음은 거력의 소유자가 패널을 내리치며 낸 소리였다. 패널을 내리친 사내는 단정한 제복 아래에 우락부락한 근육을 숨긴 거한이였는대, 그는 목에 핏대를 올리며 정열적으로 소리지르듯 말했다. 함장은 그가 강습항모에 탑승한 제2해병전단의 대표자격으로 브릿지에 있음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지금 위대한 제국의 전사들이 대체 무슨 추태를 보이는거요! 그러고도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아빠는 제국을 위해 싸운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겠소? 아니,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지금 당신들의 모습은 너무도 숫기없는 나머지 내가 지금 당장 당신들 다리사이에 덜렁이는 그것을 직접 뜯어버리고 싶을 정도니까! 부끄러운줄 아쇼!"


그의 정력이 넘치는 고함에도 불구하고 승무원들은 우울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의 얼굴은 여전히 힘이 빠진채 저 너머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것은 한동안 그 무엇으로도 바뀌지 않을듯 보였다. 그들을 보더니 방금 2해병전단의 대표는 얼굴을 울그락 불그락 하더니 이 말을 마지막으로 브릿지를 나섰다.


"나약한 놈들!"


함장은 그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자신또한 사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나약한 자였기 때문이였다. 그저 권위의 휘장으로 온몸을 감싸 그 사실을 모두로부터 숨기고 있을 뿐. 2해병전단 대표가 나간 브릿지는 다시 끈적한 우울에 뒤덮였다.


함장은 여기서 무엇인가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는 이들 모두에게 희망을 줄 연설, 언사,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그는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입을 벌렸다. 하지만 벌려진 입으로부터는 아무 말도 나오지 못했다. 함장은 무슨 말을 해야할지 하나도 떠올릴 수 없었다.


"......"


함장이 입을 벌린 것을 알고 무엇인가 자신들의 우울을 쫓아줄 희망을 줄 것이라 기대한 승무원들은 함장을 아까 홀로스크린을 바라보던 바로 그 기이한 눈빛으로 함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함장은 그들에게 그런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


하지만 함장은 다시 한번 어떠한 말도 떠올릴 수 없었다. 갑자기 가장 기초적인 대화조차도 이룰 수 없는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


그리고 3번째 시도까지 실패하자 함장은 더 이상 시도하는 대신 왼손으로 피곤하게 이마를 짚은채 오른손을 휘휘 젓었다. 모두를 해산한다는 뜻이였다. 승무원들은 홀로스크린이 그들의 기대를 부응하지 않았을 때의 표정으로 브릿지를 나섰다. 부관은 함장을 조용히 내려다보다가 나머지와 함께 브릿지를 나섰다. 함장은 제국에 대한 환상과 함께 자신의 대한 환상까지 깨트린 것에 죄책감을 느꼈고,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음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모두가 사라진 쓸쓸한 브릿지 안에서 그렇게 함장은 홀로 고뇌했다. 그런 그의 앞에는 너무도 막막한 우주의 어둠이 펼쳐져있었다. 그 어둠은 그들이 길을 잃어버린 너무도 거대한 미로였다. 헤쳐나가기엔 너무도 거대한 미로.




제2해병전단 대표, 게리모드 중장은 살면서 그토록 분노를 느낀 적이 없었다. 그가 보기에 이 배의 승무원들은 모두 겁쟁이들이나 다름 없었다. 본부가 함락됬어? 그래서 어쩌라고! 우리는 위대한 제국의 전사들이고, 우리의 선조는 이보다 더한 고난도 식후운동으로 해치우곤 했었다! 너희는 그런 분들의 후손이다! 이 갓난아기보다 못한 놈들아!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기함 내부의 헌병 숙소로 향했다. 그곳은 이 기함 내에서 유일하게 선조의 이름을 욕보이지 않는 전사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였다.


게리모드 중장은 익숙하게 자신의 ID카드를 인식시켜 헌병 숙소의 문을 연 후 그의 갑작스런 난입을 더 이상 당황스러워하지 않는 헌병들을 지나 침대중 하나에 누웠다. 척봐도 화가 매우 난듯 보였지만 헌병들은 그가 눈치보는 사내를 가장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별 신경 쓰지 않으며 하던 일상을 계속 했다. 게리모드 중장은 공포로 만들어진 그런 무관심 속에서 계속 눈을 감은채 있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듯 눈을 뜨더니 쥐어짜듯 외쳤다.


"망할 승무원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선조의 이름을 욕먹이는 나약한 겁쟁이들 뿐이야! 모두 행성에서 만났다면 한줌의 가치도 지니지 못했을 그런 놈들이지! 제기랄! 가족이 그런 꼴을 보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할지 신경을 쓰긴 하는건지!"


헌병들은 우렁차게 답했다.


"그 말이 옳습니다! 장군님! 그들은 모두 나약한 겁쟁이들일 뿐입니다!"


그들의 화답이 공포로 만들어진 것을 알면서도, 게리모드 중장은 그 화답에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그의 목에 붉은 핏줄이 그의 흥분을 상징하듯 돋았다.

 

"그래! 그들은 모두 나약한 겁쟁이들일 뿐이지! 그런대 웃긴 것은 그런 놈들이 이 기함을 운용하고 있다는 것이야. 이 막대하고도 강력한 인류 최고의 살인무기를, 겨우 그런 놈들이! 말도 안돼!"


"그렇습니다! 장군님! 그들은 이 기함을 운용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 그렇지! 그렇다고! 그들은 그런 자격이 없어! 그런 겁쟁이들은 그런 자격이 없어!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그때 흥분한 장군의 마지막 말을 끊으며 헌병 숙소의 문이 열렸다. 게리모어 중장과 헌병들 말고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


부관은 영혼이 빠져나간듯한 무심한 눈빛으로 연설이 중단된 게리모어 중장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선내전복으로도 들을 수 있을 위험한 내용이였기에, 게리모어 중장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 안으로 누군가 들어올 수 있으리란 것을 생각해야 했는대, 너무 흥분해서 미처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그 말을 들은 것이 다름아닌 함장의 충실한 개로 유명한 부관이였으니 그는 지금 심각한 문제에 처한 것이라 볼 수 있었다.


게리모어 중장과 부관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쪽은 영혼이 빠져나간듯한 눈으로, 다른 한쪽은 자신의 영혼이 빠져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눈으로. 그 둘의 눈싸움은 영원히 지속될듯 하였지만 갑작스레 부관이 입을 묵묵히 다물고 있는 주위의 헌병들로 시선을 돌리며 그 눈싸움은 끝났다. 부관은 그들을 보며 그 영상은 브릿지의 인원들만이 보았고, 함대의 나머지 인원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를 것이란 사실을 떠올렸다. 그 사실을 알고난 후에도 헌병들이 저럴 수 있을지 부관은 문득 궁금해졌다. 최소한 그는 그러지 못했다.


부관은 이 말을 흘리듯 하며 헌병 숙소의 문을 닫았다.


"이곳에는 중장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보면 다른 사람이 시끄러워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달리보면 다른 사람이 신고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발언. 최소한 자신은 더 이상 신경쓰지 않는다는 뜻이였기에 게리모어 중장은 십년감수한듯 속을 쓸어내렸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위기상황 앞에서 얼마나 나약해졌는지를 떠올리고 갑작스레 불같은 분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또한 권위의 휘장을 벗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에 느껴진 분노였다.


"뭘 그리 바라보고 있어! 지금 내 눈치보는거야! 사내답지도 않은 짓 그만두고 할 일이나 계속해! 난 숙소로 돌아간다!"


"알겠습니다! 장군님!"


우렁찬 말을 뒤로한채 떠나며, 중장또한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저들이 브릿지의 인원들이 아는 것을 듣게 된다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에 대해. 그러다 머리를 휘휘 젓으며 그 생각을 떨쳐냈다. 저들은 용감한 제국의 전사였다. 그들은 문제를 향해 용감히 돌격할 것이 분명했다. 그 사실에 의심은 허락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