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16 17:31

원래 공모전 올리려고 준비했던 것인대 걍 여기에나 올리려고요. 나중에 흙탕물이 가라앉으면 그때나 한번 기웃거려 봐야겠네요.




임성준은 말없이 검은 봉다리 하나를 오른손에 들고 그의 낡은 반지하로 돌아왔다. 그는 자물쇠가 달리지 않은 문을 열었고 귀찮게 닫을 생각 하지 않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문득 어차피 도둑이 와도 훔쳐갈 것 없다는 깡으로 자물쇠를 사지 않고 그 돈으로 짜장면을 사먹었던, 과거의 그가 머릿속에 스밀스밀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때의 그는 악과 깡, 그리고 세계에 대한 증오로 똘똘 뭉쳐 있었다. 그의 심장은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뒤흔들리며 무한히 에너지를 뽑아내었고, 그는 손에 십원짜리 하나 쥐지 못한채 세계를 향해 연어처럼 달려들었다. 그렇게 하면 그를 어려서부터 사로잡아왔던 암울한 불운이 그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미신적 이유 때문이였다. 결과는? 그는 과거의 자신에게 힘없이 조소를 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는 봉다리 하나를 작은 방구석에다가 던진 후 신발도 벗지않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티비 하나 놓여있지 않은 그의 반지하는 삭은 김치냄새와 꼬둘꼬둘한 곰팡내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문득 그 모든 가난이, 그를 말없이 짓누르는 세상이라는 프레스 기계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그의 마음을 매우 평온하게 해줌을 깨달았다. 그래서 내일 아침 사형당할 것이라는 말만큼 사람을 차분하게 하는 말이 없다고 한 것일까? 그는 곧 스스로에게 사형을 내릴 예정이였다. 사형을 내리기만 하고 집행은 안하는 대한민국 정부 대신 집행까지도 그 스스로 할 예정이였다. 벽에 박은 못에다 묶은 두꺼운 노끈을 목에 매어서.


임성준은 너무 지쳐 있었다. 세상이라는 것은 그에게 너무도 혹독했다. 물론 세상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혹독한 법이였다. 다만 임성준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잘 나가던 사업가인 임성준의 아버지는 그가 어릴 때 주식에 미쳐 가진 모든 것을 밀어넣으셨다가 완벽한 파산을 맞이하셨다. 자상하던 아버지는 모든 것을 잃으신 후 증오의 화신이자 나찰이 되셨다. 그는 그의 비상식적이며 엄격한 기준을 모든 것에 적용하셨고, 그것을 가족들이 어길 때마다 변태적인 처벌을 가하셨다. 그는 마치 그가 아직도 그가 강한 권력의 과거의 모습을 가지고 있음을 끊임없이 확인하시려는 것만 같았다. 그 처벌들은 임성준을 검고 뒤틀리게 만들었고, 그에게 그저 세상에 대한 깊은 두려움만을 새겨놓았다.


그런 가정환경은 공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공부를 하려고 책을 펼칠 때마다 임성준의 마음속에는 아버지가 책을 펼친 것을 가지고 처벌을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차올랐다. 두려움에 떠는 그 누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겠는가? 그는 저절로 공부로부터 멀어졌고 그의 가방끈은 고등학교까지만 마친 채 싹둑하고 끊어졌다. 그리고 고졸로서 세계를 맞이했다.


세계는 고졸에게 전혀 친절하지 않았다. 물론 대졸에게도 세계는 친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졸에게 세계는 특별히 더 힘들고 거센 파도로서 존재했다. 그가 무엇인가를 잘했다면 그것은 잘한 것이 아니라 고졸이니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였고, 그가 무엇인가를 못했다면 그것은 고졸이기에 못하는 것이였다. 그런 환경은 그에게 증오를 타오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증오가 언제나 무한한 에너지원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였다. 증오와 분노에 가득차 세계를 뒤바꾸고자 하는 자는 소설가들의 손가락 끝에서나 그들의 숙원을 이룰 수 있었다. 현실에서 그들은 그저 스스로를 죽여가며 증오를 태울 뿐이였다. 더 이상 탈 것이 남지 않아 하얀 재가 되기만을 기다리며. 임성준은 이제 하얀 재가 되었다.


하지만 임성준이 자살을 희망한다고 해서 그가 죽음을 바라는 것은 아니였다. 오히려 그는 미치도록 살고 싶었다. 그는 살아서 히말라야를 등산해보고도 싶었고, 로마의 유적지들을 걸으며 그것들의 빛바랜 영광에 젖어보고도 싶었고, 다양한 사람들과 웃고 울으며 인생이라는 드라마를 즐겨보고 싶었다. 임성준은 단 한번도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기에 오히려 남들보다 더욱 더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살을 하는 이유는 그런 삶에 대한 욕망보다 현실이 더 고통스럽게 느껴졌고, 그 고통을 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였다. 그리고 그 고통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그의 마음에 평화를 불러 일으켰고, 임성준은 그것을 뒤따르는 처절한 비극을 애써 잊으려 노력하며 그 평화를 만끽하였다.


그는 주머니를 주섬거리며 종이쪼가리를 하나 꺼냈다. 그것은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산 즉석복권 하나였다. 그것을 산 이유는 혹시 신이 마지막으로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그의 인생에 빛이 들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 때문이였다. 복권은 참 마술처럼 하얗게 지친 임성준의 마음속에 장밋빛 상상을 불러 일으켰다. 멋들어진 선글라스와 수십만원짜리 헤어스타일을 한 채 수억원짜리 람보르기니를 타고 한손에는 와인잔과 다른 손에는 미인의 허리를 당당하게 붙잡은 그의 모습. 혹시 몰라, 미래는 그럴지. 이 구질구질한 과거는 그저 인터뷰를 할 때만 불편하게 떠올리게 되고 그에게 비극적 과거라는 느와르적 매력만을 남기게 될지, 누가 알아. 그는 동전으로 복권을 긁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다. 하지만 십원짜리 동전 하나 나오지 않았기에 그는 손톱으로 복권을 긁었다. 그는 이 복권으로 그의 삶을 결정할 생각이였다. 당첨 된다면 살고, 당첨 되지 않는다면 죽는다. 목숨을 건 도박은 그를 필사적으로 만들었다. 그의 입에서는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붙어라 붙어라 붙어라 붙어라! 천지신명님이시여 부처님 알라시여 하느님 예수님 성령님이시여! 제발 붙어라!"


복권은 꽝이였다. 긁힌 은박지 뒤에는 우스꽝스럽게 쓰인 꽝이라는 글자와 그 아래 작게 쓰인 '아까워라~ 다음 기회를 노려보세요!' 라는 글자만이 있었다. 임성준은 힘없이 조소를 짓었다. 이제 그에게 다음 기회는 남지 않았다. 그는 복권을 아무곳에나 대충 던진 후 벽에다 못을 박고 그것에 노끈을 묶었다. 그 후 임성준은 의자 위에 선다면 아슬아슬하게 닿을 만한 높이에 올가미를 하나 만들었고, 의자를 그 아래에 놓아 그 위에 올라갔다. 그 후 그는 올가미를 목에다가 가져다 댔다. 임성준은 문득 그의 인생에 죽음만이 남았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의 머릿속에서는 잡생각들이 사라졌고 손은 기계적으로 변했음을 깨달았다. 임성준은 문득 그의 천성적 호기심이 고개를 드는 것을 느꼈다. 왜 그런 것일까? 그는 힘없이 호기심을 지웠다. 더 이상 그런 호기심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목에 올가미를 맨채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낡은 나무 의자가 그의 체중을 힘겹게 견디어내고 있었다. 임성준은 혹시 이대로 계속 살다 보면 언젠가는 볕들날이 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은 행복하고 희망적이라고 배부른 노래를 불렀었다. 그는 그들 배부른 돼지에게 조소를 짓었다. 한 때 임성준은 그들의 말을 믿었다. 꿈꾸는 다락방, 무지개 법칙, 어쩌구 저쩌구 씨팔! 다 헛소리였다. 최소한 임성준에게는 헛소리였다. 열심히 살면서 미래를 상상하면 그 미래가 현실이 될 것이라고? 좌뇌에는 뭐 블루오션이 숨겨져 있다고? 씨팔 지랄하지마 개새끼들아! 엿같은 소리 그만 지껄이라고! 인생은 똥통이야. 세상은 똥통이야. 인간이 추악하니 세계또한 추악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 세계가 추악하니 고통스러운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는 머릿속에 잠시 떠올랐던 그 말도 안되는 희망을 지운 후 조용히 의자로부터 내려왔다. 그러자 중력이 그의 고통스러운 생애에 마침점을 찍어주었다. 임성준은 잠시 발버둥치며 꺽꺽거리다가 축 늘어졌고, 그렇게 세상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