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11 13:17

민주주의와 대의제 민주주의

종종 투표율 또는 투표에 대해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라는 표현을 쓰곤한다. 투표한다는 것 그 자체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고, 투표를 안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퇴보시킨다는 의미다.
이건 엄밀히 말해서 틀린 말이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는 독재나 엘리트주의와 대비해서, 대다수가 의견을 낼 수 있고, 그에 따라서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원론적인 형태는 당연히 직접민주주의가 될 것이나, 어떤 국가에서건 현실적으로 국가단위 정치체제로 채택할수가 없고, 그렇기에 민주주의란 말은 일반적으로 (대의제)민주주의라는 형태를 띈다. 대의제라는 말이 생략되면서, 대의제 민주주의가 곧 민주주의를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투표가 곧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라는 말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투표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투표를 통해서 '대의' 즉, 대중들의 의지를 정치인이 대리하는 것이 대의제 민주주의와 정치인, 정부의 정당성이다. 그러니 투표를 안하는 것은 곧 민주주의의 위협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변수를 넣어보자. 권력을 위임받은 위정자가 대중의 의지를 대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게 드문 일은 아니다. 오히려 흔한 일이지. 그러나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는 이걸 직접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다음 선거를 기다린다. 다른 사람을 뽑기위해서.
이제 변수를 하나 더 추가하자. 다른 사람도 대중의 의지를 대변하지 않는다면. 그리 낯선 가정은 아닐 것이다. 새누리당도 민주당도 싫은 사람은 흔할테니까. 그럼에도 대중들은 투표해야한다. 그들이 힘을 행사할 방법은 그것뿐이고, 그렇기에 '차악을 선택한다.'는 말이 나온다.
마지막 변수를 추가하자. 차악이라는 말조차 쓸 수 없다면. 이쯤오면 느끼겠지만 사실상 대의제 민주주의는 여러면에서 민주적이지 않다. 정치인들은 상당부분 일반 대중과 유리되어있고, 그들에게 민의를 대변하도록 강요할 수단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직접민주주의가 다시 부활한다.

대중들이 직접 거리로 나와 위정자들에게 요구사항을 말하는 것이다. 이 순간, 대의제는 정당성과 기반에 큰 타격을 받는다. 권력을 위임한 대중들이 당신들은 내 대변자로서의 자격이 안된다 말하며 직접적으로 힘을 행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위정자들의 기본적인 대응은 항상 동일하다.
저것은 소수의 극단적 행동이라 말하는 것이다. 즉 다수는 여전히 위정자를 신뢰하고있고, 그렇기에 자신의 권력행사는 정당하다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이후의 시위를 통해 위정자가 위협을 느끼고 행동을 고치거나, 위협에 굴하고 자리에서 내려오면 일단의 사태는 해결된다.
그러나 만약, 만약에, 위정자가 어떻게든 그 상황을 버텨낸다면. 그전과 같은 행동을 하며 그 자리에 머물러있다면. 그런데 이후의 선거에서도 그를 대신해서 민의를 대변시킬만한 정치인이 없다면. 모든 정치인이 민의를 대변할 생각이 없고, 그 사실을 대중들이 알고 있다면?
역사의 선택은 지속적인 투쟁이었다. 잘못된 위정자들이 역사저편으로 사라지고 민의를 대변하고자 하는 새로운 사람을 찾을때까지 수년간 지속되는 투쟁.

다만, 여기에서 흥미로운 픽션이 하나있다. '눈 뜬 자들의 도시.' 이 소설은 전작인 '눈 먼 자들의 도시'가 실명 전염병에서 벗어난 이후를 그린다. 그 도시의 시민들은 그 치명적인 전염병이 불러온 재앙과 그에 대한 대책에서 위정자들의 본질을 보았고, 선거에서 70% 이상이 백지투표를 했다. 주모자도, 선동자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대중들이 아는 것 뿐이다.
그러나 위정자들은 존재하지않는 주모자를 만들어내고, '눈 뜬 자들'을 국가와 민주주의를 전복시키려는 시도에 넘어간 역적으로 취급한다. 계엄령을 내리고, 자작테러를 시도하고, 정부기관을 빼면서 도시를 버리지만 눈 뜬 자들은 넘어가지 않는다. 결국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것은 지나치리만큼 현실정치와 닮아있다.

주제 사라마구는 책을 내면서 이런 말을 했다. "정치가들은 백지표보다는 기권표를 선호한다. 왜냐하면 기권표야 뭐라고 둘러대도 상관없으니까. 사람들이 내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려 든다고 하지만, 백지표야말로 가장 민주적인 것이라는 점을 난 믿는다"
이 말은 '(대의제)민주주의'라는 표현의 문제점을 정통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대의제는 여러모로 민주적이지 못하고, (대의제)민주주의라는 사고방식을 통해서 순수민주주의라고도 불리는 직접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적으로 매도된다. 이게 투표가 곧 민주주의가 아닌 이유이고, 투표하지않는 것이 곧 민주적인 것일수도 있는 이유다.


ps.
다만, 한국의 정치현실이 투표자체를 거부해야할 정도로 절망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얼마전에 이것저것 검색해보니 투표=민주주의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거 같은데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있길래 써줬던 글.

다만, 여기엔 속뜻이 하나 있는데... 그정도로 대의제의 비민주성과 정당정치에 절망했다면, 직접행동을 보이라는 의미. 직접행동이 꼭 민주적인 결과를 불러오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의제를 거부하고 직접행동을 하는건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시도하는거고, 대의제를 거부하고 행동도 하지않는건 그냥 부품A에 불과함.

결론은 대의제를 거부하고도 당당하려면 투표따위는 우스울 정도의 실천을 해라. 그럴 자신없으면 조용히 있던지, 정당정치에 티끌만큼의 관심이라도 가지고 투표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