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30 02:37

나는 번 파이트, 해적이다. 나의 아버지도 해적이었고, 나의 할아버지도 해적이었다

나는 언제나 영광스러운 전쟁들의 선봉에 섰었고, 내가 거둬서 먹이는 식구는 아버지 때

보다도 더 늘어 이젠 우주항에 정박한 내 배만 열 척이 넘는다. 나는 위대한 해적이다

내가 죽으면 내 이름이 해적들의 신전에 새겨질 것이다. 내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이름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제국민들이 흔히 해적 행성이라 부르는 별에서 나는 태어났다. 이곳은 척박하고 굶주렸지만 

진정한 사내들로 북적거린다. 물론 은하정부에서 마구 뿌린 스타레이스 관람권을 손에 꼭 쥐고 

우주항에 나타나는 허여멀건한 얼굴의 행성 지도자들도 북적거린다. 진정한 사내들에 관한 이야기도 

좋지만, 오늘은 그들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지도자들.



난 그들을 많이 봐왔다. 너댓 개의 행성을 통치하는 지도자부터 은하를 가로질러 수백 개의 행성에 

그 영향력을 떨치는 지도자까지.



지도자. 나는 허울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무엇을 지도한단 말인가. 그들은 그저 순서를 정할 뿐이다.

가스채취소를 지은 다음에는 병영을 개축하고, 뭘 짓고, 뭘 생산하고 그런 일들.  그런종류의 지도자가 

안드로메다 은하에 나타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93년 전이었다. 갑작스럽게 은하정부가 들어서고 안드로메다가 

은하정부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 그 순간부터 지도자들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엄청난 속도의 개발이 이루어졌다.



지난 93년은 그 이전의 백여 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격변이 몰아쳤던 시기다. 새롭게 나타난 지도자들은 

탐욕스럽게 행성민들을 채찍질 했고 은하정부와의 뒷거래에서 얻어낸 다크포스를 이용해 비상식적인 속도의 

발전을 계속 했다. 그들은 그들끼리 뭉쳐 제국을 만들고 그 알력 아래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다가 정신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서로의 함대를 소비하며 싸워댔다.



나는 내가 머무는 해적 행성에서 4파섹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진 한 전투를 기억한다. 감시위성을 통해 

전해진 영상은 상상을 초월했다. 삼 천 대도 넘는 전함이 서로에게 마구 돌진하더니, . 그 전투에서 죽은 제독들은

원혼조차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새로운 행성을 하나 만들 수도 있을 법한 양의 데브리 사이로 망자의 울음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들은 많은 해적 행성을 소탕했다. 해적들은 굴하지 않고 더 가열차게 반항했지만, 수십 수백 개의 행성을 통치하는

지도자들의 함대 앞에서는 어린 아이의 땡깡과도 같은 일이었다. 제압당한 해적 행성은 행성을 차지한 지도자와

은하정부의 뒷거래 장소로 전락했고, 머물던 해적들은 순한 양처럼 변해버렸다. 그건 극적인 변화였고, 지옥 같은 

일이었다.



은하 정부의 영향력이 은하 중심에서 400파섹에 이르는 지금, 어느 지도자가 다스리는 행성은 4백 개를 넘어섰다고

들었다. 은하에 가득한 그의 위명과 위세. 하지만 스타레이스를 즐기러 오는 지도자들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검게 썩은 눈깔.



또 얼마 전, 수백 개의 행성을 통치하던 지도자가 돌연 통치권을 버리고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십 억명의 난민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하루 아침에, 전쟁도 없이, 다른 지도자들의 무성의한 점령 속에,

새로운 통치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다시 노예와도 같은 나날의 시작.



은하정부가 세운 지도자들. 그들은 딱 그만큼이다. 해적은 약탈을 위한 약탈을 한다. 우리의 약탈은 순수하고 

목적과 수단이 완벽히 일치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의미 없이, 혹은 오로지 스스로의 위업만을 위해 열정적으로 

수 많은 생명들을 낭비하다가 그렇게 갑자기 사라져버린다.



어제 스타레이스 경기장 근처 주점에서, 많은 행성들을 다스리다가 지금은 변방 행성의 지도자로 물러나왔다는

한 지도자를 만났다. 그가 그 행성들의 통치권을 포기한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지쳐서



나는 지금 글을 쓰며, 어제 그 자리에서 그의 턱을 뽑아다가 그의 썩은 양 눈에 박아 넣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단지 지쳐서 그를 위해 일했던 그 모든 사람들을 배신하고 등을 돌렸단 말인가. 그의 이름이 온 은하에 알려질 

때까지 그가 지휘했던 함대들이 폭죽 터지듯 추락할 때마다 은하 뉴스 한 켠에 새겨졌던 ‘3,590,324’ 같은 숫자는 

그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는 썩은 눈깔을 한 채 스타레이스 경기를 봐야겠다며 일어서서 주점을 나갔다.

나는 해적이다. 나는 지도자들이 싫다. 그들에겐 해적만큼의 인간성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