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12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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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계함 건조를 생업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한지 어느덧 50년이 되었다. 결심했던 때 나이가 풋풋한 21세였으니 청춘과 중년을 초계함에게 바친 셈이라 볼 수도 있겠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초계함.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초계함 건조는 건조업자에게 생업이 아니라 잠시 스쳐 지나가는 관문이 되어야만 한다고 충고를 해줬다. 초계함은 만들기 쉬운만큼 만드는 사람도 많고, 성능이 떨어지니 구입하는 사람은 적어 피눈물 한두번 흘리지 않을 것이라고, 초계함 건조사업이 레드오션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나락에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많은 이들이 말해주었다. 비록 내가 초계함에 청춘을 바치긴 했지만, 나 자신부터도 그들의 충고가 백번 옳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초계함은 좋지 않은 함선이니까.


초계함은 한번에 너무 많은 것을 가져가려고 했다. 기동성을 노려보려 했지만 전투력만 잃은채 전투기보다 좋지 못해졌고, 수송량을 노려보려 했지만 순양함보다 낫은 것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고기방패라도 될 수 있다면 감지덕지겠지만 장갑이 너무 약해 그것또한 무리다. 애초에 초계함은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전투가 시작되기 전 정찰병으로 사용되야만 하지만, 고도로 발전 된 현대 함대전은 그 역활을 전문화된 탐사정과 감시위성에게 맡긴다. 유일한 장점이라면 구조가 간단해 초보자들이 노하우를 얻기 위해 거쳐가는 용도로 쓸 수 있다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역으로 보자면 모든 건조업자들이 한두기씩은 초계함을 만들어본다는 것이고, 공급이 수요에 비해 넘쳐나다못해 줄줄 흐르게 만드는 단점으로도 볼 수 있다. 즉, 초계함은 진지하게 손을 대는 자 모두를 빨아들이는 피에 굶주린 블랙홀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나부터도 자식들이 나 따라 초계함 만들겠다는 말만 해도 엄하게 혼냈다.


그럼 왜 나는 초계함을 생업삼기로 결정한걸까? 왜 남들이 피하지 못해 안달인 레드 오션에 스스로 발을 내딛은 것일까? 그 이유는 한마디로 압축할 수 있다. 미쳐서. 그렇다, 나는 초계함에 미쳤었다.


내가 살던 행성은 우주의 문명으로부터 단절 됬었던 곳이였다. 현대 기준으로 보자면 중세 봉건주의라 부를 것이 지역마다 가득했고, 남작들은 함선이 공간을 찢어 다니는 시대에 칼을 휘둘러 사람들을 위협했다. 구식이지만 강력한 칼. 행성은 철과 피로 지배되고 있었다. 칼의 이름아래 억압당한 농노의 설움이 얼마나 심했으면 초야권이 마을 처녀들의 꿈이나 다름없을 정도였을까.


나는 그곳을 버티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또래 농노들을 하인처럼 부리던 남작의 아들이 남작을 죽이고 새로운 남작이 된 모습을 본 나는 새로운 남작을 죽이고 금지된 숲속으로 도망갔었다. 기사 발드뭉이 날린 화살이 그때 귓볼에 남겼던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다. 금지된 숲으로 도망가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파리가족의 저택이 됬으리라. 용맹하기 그지없는 발드뭉도 금지된 숲으로 나를 따라 쫓아오지는 못했다. 사람을 잡아먹는 마녀가 금지 된 숲에 산다고 다른 마을 사람들처럼 믿어서였을까.


금지 된 숲안에서 나는 사람에 굶주린 마녀를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못한 건축물을 발견했었다. 높이가 못해도 50m는 되보이는 새하얀 성채. 기이한 복장의 수많은 사람들이 사방으로 연결 된 가도를 통해 들어오는 자원들을 수송해 성채 안으로 넣고 있었다. 근방 항성계의 황제인 와와투가 보낸 수송선단이였다. 그들은 나를 발견한 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라하다가 나의 상처를 보더니 일단 그들과 함께 대려가기로 결정했었다. 그때 내가 그들과 함께 행성을 떠나며 탑승했던 함선이 바로 초계함이였다. 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때 그 느낌을 잊지 못했다. 멀리 멀어져가는 행성의 모습, 처음으로 먹어봤던 초콜릿이라는 음식, 처음으로 마셔봤던 와인이라는 음료. 그때 그 초콜릿은 정말 달콤했다.


그 후로 나는 수많은 함선들을 타보았지만 그때 그 초계함만큼 탑승감이 좋은 함선은 타보지 못했다. 막강한 행파함도 그때 내가 느꼈던 감동과 희망을 재현시켜주지 못했다. 내가 초계함 건조를 생업으로 삼기로 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였다. 과거 나를 우주로 보내줬던 이름모를 초계함과 동일한 탑승감을 느껴보는 것.


하지만 나도 이제는 늙었다. 몸도 예전같지 않고, 마음도 마찬가지다. 내 손으로 마지막을 장식한 초계함이 어느덧 1만대가 되어가지만 아직까지 이름모를 초계함의 탑승감을 느껴보지는 못했다. 사실 50년전 초계함 건조를 결정한 순간에도 나는 알고 있었다. 평생동안 아무리 많은 초계함을 만진다 해도 그때의 탑승감을 느끼지는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살면서 인생역전의 순간은 단 한번만 오는 법이니까. 이제 마지막 초계함을 취역시킬 순간이 왔다. 그렇게나 말렸는대도 나의 손자놈들은 가업을 물려받아야 한다며 내 뒤를 따르겠다고 했다. 자식농사도 마음대로 안되는대 그 자식의 자식농사는 어찌 마음대로 되겠나. 그놈들이 겪을 수난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오지만, 어쩌겠나. 스스로 선택한 길인대.


인생 마지막 초계함에 올라탔다.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50년 노하우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어느덧 중년이 된 자식 놈들이 나를 바라봤다. 막내놈은 재치있게 '선장님 출발 준비가 끝났습니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묵묵히 출발을 하라 말하고 눈을 감았다. 강력한 중력가속도, 일부러 어설프게 만든 중력가감장치, 약간 빡빡하게 느껴지는 인공공기.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올라왔다. 미숙하기에 오히려 더 먹먹한, 다신 오지 않을 추억의 순간, 청춘의 기억.


나는 아련히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 느낌이야. 이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