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15 00:57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 일이었지. 자네는 태어나기 전이니 기껏해야 이 행성을 굴러다니는 쇳조각이었을 적의 이야기야. 살갗이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같이 잔뜩 주름진 갈색 피부의 노인은, 담배를 문 누렇게 물든 뻐드렁니를 드러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달도 별도 없는 혹한의 밤,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것은 오로지 커다란 녹슨 기계 장치뿐이다. 먼 옛날 이 노인은 우수한 군인으로서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힘 있는 자세로 그가 응시하고 있는 메마른 황야를 돌아다녔다. 한때 노인에겐 저 메마른 황야를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동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노인에게 남겨진 유일한 전우는 그의 옆에 있는 거대한 기계뿐이다. 녹슬어서 그런 것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쪽이건 기분 나쁘기 그지없는 적색의 몸체를 지닌 먼지 낀 그 기계는 언뜻 보기엔 생각 없이 크기만 키운 나머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선 채로 죽어
버린 거미처럼 보인다. 다만,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게 된다면 그 몸체에는 거미에는 있을 리 없는 상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꼿꼿이 일으켜 세워진 그 적색 괴물의 상체에는 두 개의 거대한 팔이 달려 있다. 오래전, 이 적색 괴물은 이 두 개의 팔에 의지하여 무수한 숫자의 탐사정과 전투기를 격추하며 이 행성 방위의 일익을 담당했다. 하지만 지금 이 기계에게 남겨진 영광은 다 죽어가는 노인의 넋두리를 들어주는 것뿐이다.

 노인은 추운 것인지 몸을 웅크리며, 커다란 손을 컵처럼 만들어 입에 물고 있는 담배의 끄트머리를 감쌌다. 그러자 바람은 그런 노인의 발버둥이 괘씸하다는 듯 몰아쳐 그의 낡고 닳아빠진 외투와 셔츠자락을 흔들었다. 그 바람에 드러난 노인의 살갗은 마치 모눈종이의 그것과 같았다. 오래된 상처들이 서로 얽혀 이미 하나의 문양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혐오감을 느끼며 눈을 돌려버릴만한 장면이었지만, 노인은 개의치않고 씨익 웃었다. 노인에게 있어 그 상처들은 그의 일생의 훈장이며 증명이었고, 그는 그것들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유일한 전우에게도 마찬가지이리라. 노인은 동의를 구하는 것처럼 손을 들어올려 만지기만 하면 그대로 달라붙을 것처럼 차가워져있는 기계의 찌그러진 자국을 매만졌다.

 "그렇지, 아이야?"

 노인의 목소리는 짐승을 연상시켰다. 그의 육체는 그의 옷처럼 닳았고 그의 심장은 더 이상 젊은 시절의 그것이 아닐지라도, 그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사람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죽이는 방법. 그의 위대한 고향을 침범해온 이들을 격퇴하는 방법을.

 다만 노인도 알고있었다.
 그의 고향, 새로운 고향은 이미 죽었다. 노인처럼 과거의 영광을 곱씹는 것밖에 할 수 없다. 신의 권위에 저항하듯 쌓아올려지던 마천루들도, 쉴새없이 행성을 드나들던 수많은 함선들도, 오로라처럼 흔들리며 빛을 반사하던 행성의 보호막도 더 이상 없다. 존재하는 것은 흉한 철골과 더 이상 날지 못하고 추락한 함선의 잔해들과, 찌그러지고 일그러진 망가진 보호막뿐이다. 그가 응시하는 황량한 대지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던 동료들도 더 이상 없다.

 그것은 아주 갑작스러운 멸망이었다. 원인도 간단했다. 유일한 통치자, 이 행성의 주인, 이 행성의 역사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건국자의 소멸. 새로운 시대와 희망을 열어준 번영의 상징이며 지도자, 그들에게 있어 신과도 같았던 존재의 소멸. 결코 사망이 아니다. 그건 문자 그대로 소멸이었다. 처음부터 우주의 먼지였다는 듯 깔끔하게 소멸했다. 마치 우주의 별처럼, 바로 그 전날까지만 해도 분명히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던 그 남자는, 잠시 눈을 돌린 사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그 후폭풍은 무시무시했다.
 행성의 발전은 멈췄다. 기계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가스가 아닌 사라져버린 그 지도자의 힘으로 움직였던 것처럼 말이다. 어떤 이름높은 기술자가 달라붙어도 소용 없었고 어떤 명성높은 과학자도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다. 함선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것들은 애초부터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빈 껍데기였던 모형이었다는 듯,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멈춘 기계 대신 곡괭이를 들고나서 수정을 캤다. 가스 채취소가 세워지기 전의 원시적인 장치들을 동원해 가스를 채취했다. 그가 돌아올거라 믿으며 말이다. 언제라도 돌아와 그동안 밀린 모든 문제점들을 해결해주리라 믿으며…….
 하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어느새 더 이상 인간들이 잠을 잘 수 있는 건물은 없었다. 식량은 부족했다. 그의 통치를 받지 못한, 그의 신봉자가 아닌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시위가 발생했다. 해병이 동원되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인 온건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것이 격화되었다. 피켓이 아닌 총이 그들의 손에 들렸고, 구호 대신 비명과 절규가 흘러나왔다. 손에 피를 묻히고 스스로 쌓아올린 것을 파괴하면서 과거의 기억을 지닌 모두는 이 모든 사태를 수습해줄 존재의 귀환을 바랬다.
 그래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더 이상 수정도 가스도 저장할 자리는 없었다. 그로인해 모두는 비로소 받아들였다. 그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은 버림받은 것이다. 그가 있던 시절, 가스 저장고와 수정 저장고가 전부 차오르는 일 같은 것은 없었으니까.
 그 시점에서 침략이 시작되었다.

 예전이었다면 코웃음치며 밟아버렸을 정도로 약했던 근처 행성정부의 군대. 그러나 적들은 그들이 멈춰있는 사이에 아득히 멀리 나아가있었다. 도시가 무너지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며, 쌓여있던 자원을 약탈당하고 해병들은 줄어들어갔다. 사람들은 점차 희망을 잃고 행성을 탈출하고자 했다. 그러나 함선은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들은 최후의 한순간까지, 최후의 한사람까지 모두 이 행성에서 죽어나가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칠대로 지친 모두가 과거의 그에게 품었던 신뢰와 사랑은 분노와 절망이 되었다. 하지만 그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사라져버린 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버리지 않는 존재들도 있었다. 그들은 진정 사랑에 빠진 존재와도 같았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이미 광기였다. 결코 사랑하는 이에 대한 비방을 허용치 않는다. 그저 자신들만이 옳다고 믿으며, 그 대상에게,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이들에게 무조건적인 관용과 자비를 베푼다. 동시에 그 생각에 동조하지 모든 이들을 배척한다. 모두와 손을 잡고 생존하기 위해 뛰어도 모자랄 상황에서 광기에 가득찬 최후의 추종자들은 그를 욕하고 증오하는 존재들과 싸웠다.

 그는 옳다! 오로지 먼지만을 손에 쥐고 있던 우리의 손에 핵폭탄을 쥐어주지 않았던가……! 그가 우릴 버릴 이유는 없다! 그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 그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라고 부르짖으며.
 어쩌면 그것 또한 일종의 포기이며 자포자기일런지도 모른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들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행성의 쇠퇴, 인류의 멸망. 그 속에서 그들은 그대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절망의 나락 속으로 빠져들기보다 그저 과거의 환상에 취해 헛된 희망을 유지하길 원했던 것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나약한 이들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그대로 무너져버릴 것 같은 나약한 이들. 자신들을 버린 이에게라도 매달리지 않는다면 버틸 수 없는…….

 하지만 당연히 그들의 행동은 멸망을 가속화시켰을 뿐이다.
 그리고 노인 역시 그런 존재였다. 과거의 번영에 사로잡힌 자이며 사로잡혔던 자. 그의 정신은 이 행성에서 도시가 빛나던 과거에 멈춰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낄낄거리던 노인은 품 속에서 우그러진 양철 플라스크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는 잿빛의 탁한 무언가가 들어있었다. 술은 술이었다. 다만 재료가 무엇인지는 신과 노인만이 알고있으리라. 하지만 정작 노인은 그 술이 샴푸로 만들었는지 밀랍으로 만들었는지 신경쓰지 않으리라. 그가 원하는 것은 그를 꿈결같은 그 시절로 데려다줄 무언가니까. 노인은 냄새를 맡고 재채기를 하더니 한번에 그것을 들이켰다.
 
 술을 한 번 들이키고 다시 한참이나 혼자 낄낄거리던 노인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슬쩍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렸다.

 공허한 검은 하늘을 하얀 빛줄기가 가로지르고 있다.
 완벽하게 고착되어있던 풍경을 망가뜨리는 그 아름다운 빛줄기에 시선을 빼앗겼던 노인은, 기계가 비명을 내지르자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지난 몇달간 멈춰있던 적색의 늙은 전우는 노쇠한 팔을 들어올려 그 빛줄기를 조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 전우의 최후의 분투를 끝까지 지켜보는 일은 없었다. 그는 그 전우의 노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고개를 돌려 빛줄기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전우가 달아오르며 내지르는 신경질적인 비명을 배경 삼아, 노인은 다시금 술을 들이켰다.
 빛줄기가 점점 더 가까워진다.

 사실 그건 찰나에 가까운 아주 짧은 순간이었고, 문자 그대로 절체절명이었다. 하지만 노인의 동작은 지극히 여유로웠고, 조금의 두려움도 묻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마지막 한 방울마저 삼킨 노인은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제야 돌아오는 것이오?"

 노인은 비틀비틀 손을 들어올렸다. 뭉뚝하고, 말라비틀어지고 여기저기 상처투성이다. 손톱은 하나도 없고 손가락 중 하나는 아예 반쯤 잘려나가 있다.

 "참 긴 세월이었지.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될거요."

 그의 말에 화답하듯 빛이 폭발했다.
 노인의 시야를 빛이 메웠다. 천국의 그것과도 같은 광휘 속에서 노인 속에서 자신의 몸이 점차 무너져내리고 있음을 느꼈다.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는 그 소멸 속에서 노인은 무엇을 보았는지 눈을 크게 떴다.

 "……오오."

 그것은 노인의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그 순간. 그의 인생 자체를 결정해버린 그 날의 기억.

 첫번째 이주선이 황량하고 거친 대지에 착륙하고, 혹독하기 그지없는 새로운 환경에 모두가 말은 하지 않을지언정 두려움을 느끼고 있던 그 날, 아직 청년이던 노인의 앞에, 모두의 앞에 나섰던 그 남자. 그의 수염이 까마귀처럼 새까맣고 번드르르하고, 동물적 에너지가 넘쳐흐르던 젊은 시절의 그였다. 쏟아져내리는 별빛을 향해 손을 뻗으며, 차가운 공기를 크게 들이마쉬며 남자는 외쳤다.

 "이곳은 우리의 새로운 고향, 살아남기 위해 기꺼이 우주를 나온 용기있는 우리 모두의 새로운 요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번영할 것이며 우리의 자손들 또한 끝없이 번영할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연설을 시작했다.
 어찌 보면 야만적이고 주술적으로 들렸지만, 그 이상으로 우아하고 정중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주변에 펼쳐진 광활한 대자연을 노려보았다. 감히 그들의 행보를 이 땅의 무엇이 가로막을 수 있겠냐는 듯한 태도였다. 남자는 턱을 내밀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자유를 향해 떠나온 우리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오로지 먼지와 목숨뿐!"

 남자가 자기 주먹으로 가슴을 때렸다.

 "그러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잃은 것은 그것뿐입니다. 우리는 발전할 것입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이 우주에 군림할 것입니다!"

 노인은 그 날의 벅차오름을 떠올리듯 흉포한 기세로 부르짖었다.

 "만세! 인민 모두에게 영광을! 인민 모두에게 영원한 번영을!"

 노인은 귀에는 이미 죽은 그 시절의 이주민들의 함성 소리가 들리고 구르는 발소리와 박수갈채가 들리는 듯 했다. 상상 속에서 펼쳐진 노인의 최후의 격정은 차가운 대기를 휘젓고 조용한 대지를 뒤흔들었다.

 찬란한 광휘와 박수 속에서, 노인의 우상은 공손히 숙였던 고개를 들어올리며 마지막으로 외쳤다. "우리의 번영은!" 노인은 그것에 화답하듯, 사라져가는 육신의 힘을 마지막으로 끌어모아 부르짖었다.

 "결코…… 끝나지…… 않으리라!"

 빛은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더 이상 아무도 없었다. 노인도, 노인의 늙은 전우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잠시 후, 어두운 하늘의 한켠에 차가운 빛의 점이 별처럼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 빛의 점은 점차 늘어나 하늘을 가득 메우는가 싶더니 이내 그 거대한 본체를 드러낸다. 육중하고 파괴적인 검은 몸체…… 결코 부숴지지 않을 것 같은 함선들은 굉음과 함께 자신들이 이 행성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음을 공표한다.

 노인의 말대로 번영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

 별 생각없이 갈겨썼슴다.
 유저가 새시타면 행성은 이렇게 됩니다요. 기계도 안돌아가고 함선도 안 움직이고 건설도 더 이상 안됨..... 젓ㅋ망ㅋ.
그니까 우리 모두 아무리 더러운 자리라도 행성을 사랑해줍시다.... 는 뻥이고 여러분 모두 새시 많이 많이 타세여 ㅎㅎㅎㅎㅎ
슈바... 그래야 나도 행성을 먹을 수 있을 것 가텨.... ㅠㅠ....
진심임... 나름 중앙부인데 잉여잉여거리기도 지쳤음여 ㅠㅠ.. 멘붕할 거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