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06 23:34

머독은 상황이 이보다 나빠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현재 버진 메리는 에너지가 거의 다 바닥났고 함선에 에너지를 재공급하지 못한다면 생명유지장치와 추진장치가 정지하게 될 것이 분명한 상황이였는대, 그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버진 메리가 우주를 떠도는 하나의 거대한 관으로 변할 것임을 뜻했다. 만약 마리아의 가호로 우연찮게 에너지를 구한다 해도 머독과 5명의 선원들은 이미 멘탈이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모두가 심각한 PTSD에 시달리며 금 간 유리창같이 예민한 상황에서 기대감이 사라지기까지 한다면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나머지 114명을 죽인 내부분쟁이 선원들 사이에서 재발할 것이 분명했다. 머독은 선원과 장교 114명을 죽인 내부 분쟁이 선장 앞에서 재채기를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것인가라는 황당할정도로 사소한 주제로 시작됬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머독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는대 그것은 바로 상황이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였다.


늙은 엔진이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였다. 모든 함선의 엔진들은 구식 하이퍼 엔진이든 신식 워프 엔진이든 모두 형식으로만 보자면 비슷했는대 그것은 바로 에너지 보존 코팅을 한 10kg 크리스탈 연료봉에 기화 가스를 불어넣어 에너지의 합성을 일으키는 형식이였다. 10kg 연료봉은 구축함의 경우 대충 1개로 50년을 버틸 수 있었는대 그것은 책상물림들의 이론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보통 5년에서 10년에 한번 갈아줘야 했다. 이론과 현실이 다른 이유는 크리스탈에 잠재 된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제어하기 위해 발명 된 에너지 보존 코팅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정도 지나면 흩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이였다. 에너지 보존 코팅이 사라지면 크리스탈 속에 잠재 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그냥 있는대로 무작정 기화 가스로 흘러들어가게 되는대, 이렇게 엔진이 폭주할 경우 문제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기화 가스의 공급을 막는 것이였다. 문제는 버진 메리의 기화 가스 공급 밸브가 우연찮게 함께 망가져버려서 기화 가스의 공급을 막는 방법이 전무하다는 것이였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테키가 어찌 해결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테키는 시간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제인은 터미널을 조작하면서 현 상황을 바삐 파악하더니 절망에 빠진 얼굴로 보고했다.


"엔진 출력 100%로 현재 미확인 행성의 궤도에 진입했습니다. 역추진 엔진은 작동시켜봤지만 함선을 정지하기에는 무리수였고 만약 지금 엔진이 정지한다 해도 이미 궤도 상에 진입했기에 행성의 중력에 사로잡혀 현 시각으로부터 11분 25초 후 추락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외부 장갑의 방열코팅 상황이 매우 불량하기에 지표면에 추락하기 전에 함선이 대기와의 마찰로 완전연소 될 가능성도 32% 존재합니다."


선원들은 조용히 머독을 바라봤다. 그들은 머독이 이 상황을 해결해줄 비법을 강구해내기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머독은 가장 기초적인 지시뿐이 내려줄 수 없었다. 애초에 그는 임시 선장일 뿐이였으니까.


"일단 제인은 계속 행성에 구조요청을 보내며 계속 현상황을 나에게 보고하고, 테키, 던, 밈, 조를은 방열코팅이 가장 취약한 이곳과 이곳과 이곳을 봉쇄해서 마찰열이 나머지 구역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방지해라. 문은 봉쇄하면 다시 열 수 없다는 것을 모두 명심하고 안에 갇히지 말도록. 이상."


선원들은 모두 머독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기 시작했다. 제인과 머독을 제외한 나머지 넷은 모두 브릿지를 나섰고, 제인은 긴장감 때문인지 집중해서인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터미널을 조작하고 또 조작했다. 머독은 조용히 눈을 감고 마음을 비워보려 했다. 그는 지금 자신의 멘탈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선원들이 주는 부담감과 사치품으로부터 격리 되어 좁은 공간에 오랫동안 갇혀있다는 밀폐감과, 서로간에 이리저리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불만감에 죽음의 공포가 새롭게 더해지니 그는 지금 당장 모두 쏴죽이고 자신도 죽고싶은 충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눈을 감고 조용히 자신은 한 풍요로운 행성의 따스한 풀밭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고 상상했다. 그는 피부에 와닿는 폭신한 잔디를 느껴보려고 했고, 얼굴을 간질이는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려 했다. 그렇게 하니 머독의 멘탈은 어느정도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제인이 짧게 비명을 지르자 상상의 평온은 유리처럼 깨져나갔다. 머독은 굳은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이지? 보고하도록."


제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를 했다.


"저, 저희가 현재 진입한 행성은 가스행성으로 보입니다. 대기분석 결과를 보니 약간의 열로도 순식간에 폭발할 농도의 벤젠과 가솔린이 포함 되 있습니다. 시뮬레이션을 방금 돌려보니 저희의 마찰열에 의해 당장이라도 대기에 불이 붙을 수 있다 합니다."


그 무렵, 탄탄한 체구가 인상적인 던은 머독이 봉쇄하라 명령한 구역중 하나인 임시식당의 에어락을 닫고 있었다. 현재 구역을 봉쇄중인 모두는 서로간에 어디의 어느 문을 봉쇄한다고 무선으로 계속 통신을 해서 누군가 어딘가에 갇히는 일을 방지하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테키는 임시식당의 유일한 통로와 연결 된 한 구역을 봉쇄해야 하기에 던에게 빨리 임시식당을 봉쇄하고 밖으로 나오라 말했고 던은 땀을 뻘뻘 흘리며 묵중한 에어락을 닫았다. 그때 테키가 갑자기 연락을 시도했다.


"던! 던! 임시식당 봉쇄했나? 그럼 빨리 밖으로 나와! 좀 도와줘야 할 일이 있어!"


테키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실려있었다. 던은 마침 임시식당을 봉쇄한 후였기에 밖으로 나왔다. 다급한 얼굴의 테키는 발을 동동 구르며 있다가 던이 보이자 빠르게 달려가 던의 손을 붙잡고 어디론가 끌고가기 시작했다. 던은 물었다.


"어디로 가는지는 말해줘야 하는 것 아니야?"


테키는 빠르게 통로를 걸으며 내뱉었다.


"엔진 룸의 외부 장갑에 금이 가고 있어. 방금 제인이 한 통신 들었지? 이 행성의 대기는 벤젠과 가솔린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만약 엔진 룸의 장갑이 부서지고 이 행성의 대기가 엔진과 접촉한다면 버진 메리는 흔적도 남지 않고 폭발해버릴거야. 그러니 살고 싶으면 빨랑빨랑 뛰어!"


테키와 던은 그렇게 엔진 룸에 도착하였다. 테키는 금이 생긴 부분을 보더니 불안하게 중얼거렸다.


"금이 너무 심해. 당장이라도 깨질 수 있어. 던! 빨리 가서 크림형 보완장갑 분무기를 가져와. 마지막 남은 거지만 아무래도 그것이 없으면 금을 막을 수가 없겠어. 언제 장갑이 깨질 지 모르니 최대한 빨리 갔다와!"


크림형 보완장갑은 매우 비싼 물질이였고 그것이 장갑에 부착 되 있는 함선은 순양함 급 이상부터였다. 순양함보다 급이 낮은 함선들은 대신 그것을 뿌려서 매꾸는 분무기의 형태로 가지고 있었다. 현재 테키가 가져와달라 부탁하는 크림형 보완장갑 분무기는 마지막 남은 분무기였는대 심지어 폭탄이 장착 되 버진 메리가 보유한 공기의 대부분이 언제 우주로 빨려나갈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아꼈던 물건이였다. 그것을 지금 사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위중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테키 너는 어쩌려고?"


"나는 이곳에 남아서 일단 금이 가는 속도를 최대한 늦추어볼게! 어서 갔다와!"


던은 테키를 한번 돌아보더니, 온힘을 다해 질주하며 엔진 룸을 떠났다. 테키는 그런 던을 보더니 시선을 돌리고 엔진이 폭발할 시 일어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바로 엔진에서 크리스탈 연료봉을 뺴내는 것. 그것은 엔진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도 매우 위험한 행위였고, 엔진이 폭주할 때 어쩔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연료봉의 무지막지한 에너지에 분자 단위로 분해 될 수도 있는 행동이였던 것이였다. 그뿐만 아니라 고열의 기화가스가 연료봉을 제거하는 와중에 새나와 용암과 접촉한 것과 동급의 화상을 남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테키는 그 위험을 무릅썼다.


테키는 자신의 2배만한 크기의 구체인 엔진의 앞에 서서 침을 한번 꿀꺽 삼킨 후 엔진을 조작해 연료봉이 외부로 노출 되도록 했다. 마치 춤추는 불꽃처럼 일렁거리는 푸르고 하얀 플라즈마 덩어리가 연료봉의 주위에서 마치 반쯤 녹은 젤리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는 특수처리 된 크리스탈 강판으로 만든 10m 길이의 집게로 연료봉을 집은 후 조심스럽게 그것을 엔진으로부터 끄집어냈다. 만약 실수로 연료봉을 놓치기라도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테키는 최대한 상상하지 않으려 했다. 테키의 온몸에서 굵은 땀방울이 비오듯 흘렀다.


마침내 연료봉을 제거해서 연료봉 처리시설에 밀어넣은 테키는 큰 일을 해냈다는듯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는 검게 때 탄 자신의 땀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아낸 후 엔진을 다시 밀폐하려 했다. 그런대 갑자기 무언가 테키의 오른 얼굴을 덮쳤다. 테키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며 갑자기 온몸에 힘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고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무언가와 접촉했던 오른 얼굴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만져보니 지방이 반쯤 녹아 흐물거리는 젤리처럼 되 있었다. 테키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기화가스가 폭주해 새어나와 그의 오른 얼굴을 강타한 것이였다. 그는 고열이 신경도 태워버려준 것에 감사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그는 그 고통에 쇼크사로 사망했을 것이였으니. 그때 던이 지쳐 숨을 몰아쉬며 크림형 보완장갑 분무기와 함께 돌아왔다. 던은 테키가 얼굴이 반쯤 녹은채 바닥에 쓰러진 것을 보고 놀라 흠칫했다. 테키는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는 목소리로 끓듯 말했다.


"더, 던. 저기 저, 저쪽에 보면 이런 사태에 대비한 급속냉각기가, 후욱, 있을거야. 그것을, 후욱, 가져와서 나의 환부를 일단 식히고, 후욱, 급속냉각기 옆에 있을 응급도구함에서, 후욱, 거즈 가위 소독약을 가져오고 거즈를 환부에 맞는 크기로 자른 다음, 후욱, 소독약에 적셔서 환부 위에 올려놓아줘. 후욱, 어서!"


던은 이 자리에서 도망가고 싶다는 충동을 최대한 억누른 후 테키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 테키의 오른얼굴은 매우 심각하게 녹아있었는대 눈동자가 반쯤 녹아 흐르는 지방 속에서 벌겋게 익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꿈에 나올까 두렵기 그지없는 모습이였다. 테키는 던의 응급처치를 받은 후 조금 낫아졌는지 던에게 물었다.


"지금 내 상황이 어떻지? 오른쪽 시야가 완전히 사라진 것 같으니 그리 좋지는 않을 것 같은대. 내 기분은 신경쓰지 말고 봤던 대로 말해줘."


던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거짓말을 했다. 그는 도저히 테키에게 진실을 알려줄 수 없었다.


"의, 의외로 매우 좋아! 얼굴에 약간 화상이 생긴 정도일 뿐이야. 오른쪽 시야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눈꺼풀이 마비 되 눈을 뜨지 못하고 있어서 그런 것일 뿐이니 걱정할 것 없어!"


테키는 던이 거짓말을 하고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미 자신의 상황이 어떨지 대충 예상하고 있었고 던의 말에는 아무런 논리가 없음을 알아챘기 때문이였다. 테키는 기묘한 미소를 바르르 떨며 겨우 짓더니 던에게 엔진 룸의 금을 막으라 한 후 왼쪽 눈도 감아 조용히 휴식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