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18 08:40

정거장 로스에서 먹는 식사는 우주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니 맛이 없을 것이란 편견을 가지기 쉽지만, 오히려 왠만한 요리보다도 맛 좋고 영양가 있는 음식들로만 메뉴가 가득 차 있었다. 철저히 진공 포장 된 식재료들은 지구시간으로 매년 3~4번씩 정거장 로스에 도킹하는 나사 소속 정기항행 화물선을 통해 철저히 냉동되서 신선함을 유지한채 배송 돼 오고, 정거장 운영자는 그 식재료를 가지고 직접 요리를 하거나 메인프레임에게 요리를 맡겨 수많은 종류의 맛 좋은 요리들을 맛 볼 수 있었다. 지구와의 주기적인 연결을 통해 물자공급이 원활히 이루어지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혹자는 이리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왜 굳이 다양한 비용을 지불하고 노력을 하면서 신선한 식재료를 보급해주는가?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나? 있다. 당연히 그래야 할 필요가 있으니 하는 것이다. 우주에서의 장기체류는 가장 튼튼하고 건강한 정신조차도 서서히 파고 들어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로 만들 수 있었다. 우주에서 산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있지만, 지구에서는 당연히 간단하게 누리던 것들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한다는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향수도 제법 컸다. 물론 사람의 적응력은 대단하니 다양한 불편은 감당할 수 있지만, 그 불편을 감당함으로서부터 오는 스트레스 상태는 정거장 운영자의 정신을 불안정하게 해서 돌발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갑자기 정거장 운영자가 우울증에 걸려서 메인프레임을 파괴하고 정거장에 장착되어 있는 원자력 엔진을 가동시켜 수성의 그림자를 떠나고 태양을 맞이해 산채로 타죽으며 240억 달러짜리 정거장도 함께 태워먹을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했다. 나사는 240억 달러짜리 위험을 감수하거나, 불필요한 추가인원을 정거장에 배치해 함께 우울증에 빠져 함께 정거장을 태워먹을 위험을 감수하거나, 메인프레임에게 비상시 정거장 운영자를 제압및 감금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해 인권단체로부터 인공지능의 권한 상승에 대해 매섭게 공격 받을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매년 백만달러의 추가지출이라는 비교적 간편하고 저렴한 비용과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메인프레임에 내제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면과 스프링으로 만들어진 푹신푹신한 매트리스도 그 백만달러에 포함 돼 있었다.


존 햄턴은 오솔길을 걸어 침엽수림 한가운대에 놓인 적갈색 나무 테이블과 의자를 발견했다. 나무 테이블은 옷칠이 되어 있어 보기 좋게 번들거렸고, 마치 중세 영화에 나오는 기다란 테이블처럼 양쪽으로 길게 쭉 뻗어 있어 총 8개의 의자가 서로를 바라보며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나사는 점쟁이가 아니기에 이 정거장이 지금은 정거장 운영자 한명만 주둔중인 광업 및 연구용으로 사용되지만 미래에는 어떻게 사용 될지 몰랐고 그래서 약간의 추가 비용을 지출해서 일부러 커다란 식탁을 만든 것이였다. 우주는 유비무환이란 말을 매일같이 중얼거려도 부족한 공간이였다. 존 햄턴은 익숙하게 의자 하나에 앉아 몸을 뉘였다.


"미스 프레임, 식재료가 얼마나 남았지? 내가 기억하기론 다음 정기항행 화물선이 로스에 도착할 때까지 지구시간으로 5일 밖에 안 남았는데 그럼 슬슬 식재료가 바닥날 때 아닌가?"


"뭐, 그렇게까지 부족한 것은 아니죠. 비상시에 대비해 지구시간으로 1달치의 비상식량을 상시보유하고 있으니 식재료가 바닥난 음식중에 정 먹고싶은 것이 있다면 그거에서 까먹어도 되니까요."


"그럼 치킨카레정식 하나 만들어줘."


"햄턴씨, 치킨카레정식이 정말 질리지도 않나요. 누가 보면 인도에서 태어났지만 카레 한번도 못 먹어본 귀신이라도 들린줄 알겠네."


"카레, 치킨, 만두, 이 3개는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먹어도 절대 질릴 수가 없어. 그러니 그중 2개가 들어간 치킨카레정식이 질릴리가 있나."


과연 틀린 말은 아니였다. 전자파로 익힌 치킨 위에, 카레가루와 진공냉동보관 된 야채를 송송 썰어 만든 카레를 부어서 만드는 치킨카레를 메인디쉬로 하고, 살짝 대친 샐러드, 대체 나사에서 뭔 수작을 부린 것인지 갓 짠 오렌지 주스처럼 신선한 맛이 나는, 오렌지 주스 가루를 물에 타 만든 오렌지 주스, 접시 위에 남은 카레를 닦아 먹는 용도로 주어지는 식빵 2장을 곁들인 치킨카레정식은 언제 먹어도 질리기 힘들었다. 잠시 기다리자 식탁 근처의 나무 하나에 초록불이 띵 하고 들어오며 나무 그루터기 한가운대가 번쩍 열려 치킨카레정식이 담긴 네모난 플라스틱 판이 나왔다. 존 햄턴은 여유롭게 자리에서 일어나 치킨카레정식을 집어 들고 다시 의자에 앉아 포크와 나이프로 치킨카레정식을맛 좋게 먹었다. 정거장 로스의 메인프레임에는 증강현실 망막과 연동해서 시각및 청각적인 면에서는 현실과 아무런 차이점을 찾아볼 수 없는 게임을 즐기는 기능이 내제되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햄턴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누가 뭐라해도 아침식사였다. 게다가 야외에서 먹는 밥 만큼 맛있는 밥도 드무니, 침엽수림을 배경으로 한 식사시간은 일반적인 식사보다도 더 즐거웠다.


존 햄턴은 풍경도 감상하며 30분에 걸쳐 식사를 마쳤지만 식사를 마친 후에도 여유롭게 오렌지 주스를 홀짝이면서 샐러드의 방울토마토를 하나씩 집어 톡톡거리며 씹어먹었다. 그러던 존 햄턴은 문득 한가지 호기심이 들었다.


"미스 프레임, 혹시 순록 닌자를 본 적 있어?"


"제 알고리즘을 짜고 인공지능을 성장시킨 나사 공학자들중에는 온갖 종류의 기괴한 취향의 긱(Geek)들이 있었지만 그들중 단 한명도 순록 닌자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볼 만큼 괴상한 사람은 아니였어요."


"뭐든지 최초의 경험이란게 있는 법이지. 순록 닌자가 저기 침엽수림 위에서 눈빛을 번뜩이며 튀어나오도록 해줄 수 있어?"


"햄턴씨, 제가 10억달러짜리 최신형 양자컴퓨터라는 것은 알고 계시죠?"


"아니까 이런 부탁도 하는거지."


메인프레임은 과연 10억달러 값을 충분히 한다고 할 수 있을만한 양자컴퓨터였다. 대략 1분만에 순록 닌자의 3d 메쉬, 텍스쳐, 애니메이션, 그래픽이펙트, 사운드이펙트, 물리엔진을 모두 연산해낸 메인프레임은 온몸에 시커먼 닌자복을 두른 채 눈 한쌍과 뿔 한쌍만 내놓은 순록 닌자가 고고하게 침엽수 한그루 위에 앉아 존 햄턴을 내려보는 모습을 만들어냈다. 애니메이션은 아주 자연스러웠고 물리엔진은 조금의 오차도 없이 적용되서 순록 닌자가 꼭대기에 앉아 있는 침엽수 한그루가 순록 닌자의 무게 때문에 살짝 구부러진 모습을 자연스레 연산해냈다. 메인프레임은 심지어 적절한 일본풍 음악도 하나 찾아서 배경음악으로 틀어놓기까지 했다. 존 햄턴은 낄낄거리며 오렌지 주스를 홀짝 거렸다.


"나사는 저것도 프리도메인으로 공개할까?"


"아마 그러겠죠. 나사가 프리도메인으로 공개 안하는 소프트웨어는 없잖아요."




p.s. 이 단편은 별다른 목적 없이 그냥 우주정거장에서의 정거장 운영자의 삶을 적어서 제가 생각하는 미래에 대해 얘기해보기 위해 쓰는 것입니다. 딱히 기승전결 같은 것은 없을거에요 아마.


p.s.2.

mo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