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30 01:20
"알림. 전투기 기장 및 수송선 선장 총원 비서실 집합."

우주항 내에 방송이 울려 퍼졌다.

아마 또 시작하려는 모양이지... 하고 스넬 소위는 사관 대기실에서 일어나 비서실로 향했다. 통치자의 귄위를 바탕으로 건축, 징수,군사, 무역, 연구 등 행성 개척에 필요한 모든 행정업무를 아우르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그들이었다. 그 비열한 낯짝을 보러가는 것이 스넬 소위에게는 전장으로 나서는만큼이나 괴롭게 느껴졌다.

비서실 문에 카드를 대어 들어간다.

"스넬 소위. 복명 보고하였습니다."

이미 여럿 기장과 선장들이 모여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바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린 채 어디론가 연락을 계속하는 통치부 제 1비서, 레이나가 있었다.

그녀에겐 신경을 끄고 스넬 소위는 다른 전투기 기장들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래요?"
스넬 소위가 물었다.

"보나마나 뻔하지 않나요. 다른 행성을 약탈하는 명령이지."

저 사람 이름이 뭐였지... 하고 잠시 기억을 더듬는다. 애초에 만난지도 몇일 안되는 사이였다. 사실 앞으로 만날 날도 얼마 안될거라고 스넬 소위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찰 위성이 갔습니까?"
스넬이 다시 물었다.

"글쎄... 아마도 이 행성엔 정찰 위성이 없는 모양이지."
수염을 덮수룩하니 기른 한 소위가 대답해주었다.

"낭비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그분께서는 말야." 파란 눈을 가진 한 소위도 빈정거렸다.

제길, 역시나였다. 이쪽은 목숨을 걸고 있는데...


"자자. 정숙하시죠."

제 1비서 레이나가 갑자기 큰 소리로 말하였다. 선장들과 기장들이 다 온 모양이었다.

"다 왔나요?"

"예 다 왔습니다. 비서님!!"

수송선 선장들중 몇명이 기쁜 목소리로 소리질렀다. 통치자와 자주 만나는 비서 노릇을 하는 여자라 그런지 꽤나 미인 축에 속했던 것이다. 그 미모에 젊은 선장들이 훅하는 것도 과연 무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저...저 쓸개빠진 놈들...민간인들은 저래서 안돼..."

수염을 덥수룩히 기른 소위가 혀를 끌끌 찼다.
그 의견에는 스넬 소위도 전적으로 동감이었다. 저들은 통치자가, 또 레이나가 무슨 요구를 해 오는지 판단할 지식도, 지혜도 없는 것이다.

"그보다는 배알이 없는거겠지..." 스넬 소위는 조그맣게 중얼거리고는 한숨지었다.


"자 여러분. 통치자 님으로부터의 명령이에요. 저번에 했던 것 처럼 이웃 행성을 공격하시면 돼요!"

"가진걸 전부 빼앗아오겠습니다!"

"맡겨만 주시죠."
선장 녀석들은 신난 모양이었다. 그거야 그들은 약탈한 만큼 수당도 나오니까...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그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까?"
스넬 소위가 조용히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러자 레이나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그 이면성에 스넬 소위는 소름이 끼치는 것이었다.

"정보를 알아서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안갈 거에요?"
그녀는 정색하며 그렇게 묻는다.

핏기가 가시는 말이었다.
군인은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만약 가서 모두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명령은 명령인 것이다. 따르지 않는다면... 군인은 존재 의미를 잃는다. 즉 레이나는 알아도 갈거고 몰라도 갈건데 알아서 뭐할 것이냐고 묻고있었다.

"지금까지 문제 없었잖아요. 왜이래요?"

"그래도 적이라도 나타난다면..."
스넬 소위는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전투에는 자신 있어도 언변엔 약한게 그의 결점이었다.

"그걸 위해 당신들 기장들이 있는거잖아요. 아니면 충성스럽고 착한 선장님들만 보냈지. 이것저것 잔소리 많은 당신들을 왜 딸려보내요?"

"하지만..."

"이봐요. 그만하죠. 제가 시키고 싶어서 시키는 줄 알아요? 다 통치자 님께서 시키시는 건데.."

레이나는 그렇게 명령이란점을 다시금 강조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 할말이 없어지는게 군인들이었다. 괜히 선장들로부터 분노에 찬 시선만 돌아올 뿐 소득은 없었다.

제1비서는 시간이 지체됬다면서 거의 쫓아내듯 비서실에서 해산시켰고, 곧 함대가 우주항으로부터 바쁘게 빠져나왔다.


"그렇게 말하더랍니까?"
전투기 병기사인 노런 하사가 물었다.

"그래."
스넬이 점멸하는 하이퍼 드라이브 등을 한쪽으로 흘깃 보며 말했다.

"그냥 이쁘다고만 생각했는데..."
갑판병인 자누자 이병이 말했다.

"이쁘긴 하지. 흐흐..."
노런 하사가 침을 흘렸다. 스넬 소위는 그런 승조원들을 보며 한심하다고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이들도 따지고 보면 신입이고, 경험이 모자란 탓에 사태의 경중을 모르는 것이었다.

"기장님이 너무 과민반응하시는거 아니십니까? 저 버려진 행성에서 누가 반격해온다고..."
자누자 이병이 말했다.

그러나 이변은 그때 발생한 것이었다.

행성 쪽에서 날아온 빔이 3대밖에 없는 전투기중 하나를 궤뚫었고, 전투기는 엄청난 빛을 내며 폭발해버렸다.

"어...? 어어?"

"뭐.. 뭐야."
승조원들이 당황하여 아무것도 못하고 얼빠진 소리만 내는 사이 스넬은 재빨리 소리쳤다.

"총원! 전투배치!"

"예...예?

"야! 복창안해!?"

"초..총원 전투배치!"

그러고서야 승무원들은 정신을 되찾은 것이었다.

"회피기동 실시해!"

"회피기동 실시합니다."

추진기가 불꽃을 내뿜으면서 전투기가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본래 전투기의 진로상에 빔이 스쳐지나갔다.

"회피기동 계속 실시해! 전탐병! 적 함종과 수, 거리와 위치 보고해!"

"저...적은 초계함 클래스! 1척! 거리는 8 광초! 행성 궤도위에 있습니다!"

스넬 소위는 재빨리 계산을 실시했다. 비록 컴퓨터가 계산해준다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쪽이 이해도 쉽고 빠르다.
빔이 제아무리 광속이라도 거리가 8광초였다. 즉 적은 8초 전의 표적만 관측할수 있으며 그 제원에 대고 사격하면 빔이 8초를 날아간다. 이 16초 동안 움직이는 거리는 주추진기로는 반경
120m... 전투기의 피탄면적은 대략 400평방미터 ... 적 초계함의 각종 화기가 14문... 이쪽을 노리고 탄막을 펼쳐 공격한다면 피탄확률은...대략 8분의 1 정도...

아무리 이쪽이 회피기동을 하더라도 초계함이 8번만 쏘더라도 한번은 맞는다... 그러면 이 경량 전투기가 버텨낼 재간은 없었다.

불리불리불리불리불리.....불리하다.
절대로 불리하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그래도... 만약 남은 수송선들을 재규합해 싸운다면...!

그러나 그런 기대를 무너뜨리듯 통신망은 이미 크게 혼란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상태였다.

"살려줘!"

"피탄했다! 도와줘!"

"으아아아아아악!"

이 상태에서 새로운 지시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다.

"후퇴해! 후퇴해! 하이퍼 드라이브 가동해! 도망치자... 도망쳐! 이곳에서 빠져나가...!"
스넬 소위가 비명지르듯 소리쳤다. 초계함이라니... 게다가 저쪽은 이쪽를 먼저 발견했다. 게다가 수송선들은 기습당해 혼란한 상태... 승산은 없다.

다행히 초계함은 수송선 사냥에 재미를 들렸는지 스넬 소위의 전투기를 쫓지는 않았다.
그러나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수송선 선장들의 단말마와 잠시나마라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자신 때문에, 스넬은 순간 역겹다고 느껴졌다.

"살려줘... 누구라도 좋으니 도와줘.."

"항복할게 항복한다고.. 제발 멈ㅊ... 으아아 치직...."

전장이 멀어져 감에 따라, 생존자들이 사망자가 되어감에 따라, 통신망은 점차 조용해져 갔다.


전-2호기의 승조원들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빠르게 앞서가는 물질 문명을 비물질적인 것들이 따라잡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통치자들은 막대한 자본과 기술, 엄청난 전투 기계들을 들고 오면서 인류가 그동안 쌓아온 전훈이나 전투교리들은 그대로 버려두고 왔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통치자를 만나야겠어..."
스넬이 중얼거렸다.

전-2호기가 우주항에 닿자마자 항내방송이 울려퍼졌다.

"전투기 기장. 지금 바로 비서실로 보고."

그러나 바라던 바였다. 따질것이 있다. 제 1비서를 설득하고, 통치자에게 간언해야 한다! 아니면 이 죽음의 고리는 계속될 것이다! 멈춰야 한다... 멈춰야 한다.

문을 박차고 들어간다.
"제 1비서님...!"

그곳에는 수송선 선장들과, 소위 견장을 단 못보던 기장들이 이미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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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 정숙하세요. 여러분. 명령이에요. 이번에도, 또 이번에도 이웃 행성을 공격하러 가는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