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03 23:35
코네펠트(Konnefeld)는 헤세-로텐부르크 방백령(Landgraviate of Hesse-Rotenburg)에 속한 자그마한 마을이였다. 인구는 대략 1백여호 내외, 로텐부르크(Rotenburg)에서 풀다(Fulda) 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면 대략 하루정도 거리에 나온다. 남자들은 풀다 강의 풍요로운 강물을 활용해 근처의 농지를 근면하게 가꾸고, 여인들은 지혜롭게 가족을 가꾸는 전형적인 17세기 제국의 마을이다. 오랜 세월간 제국을 사로잡은 종교전쟁의 광기에 지친 자들은 코네펠트를 보고서 평화롭다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평화로운' 코네펠트의 어느 날, 한 농부가 죽었다. 그는 근방에 넓은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 프랑크라는 이름의 부유한 자유농인데, 친척도 하나 없고 자식들은 죄다 열살도 안 됬기에 그의 아내 클라우디아가 재산들을 관리하게 됬다. 클라우디아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자식들을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남편의 재산을 지혜롭게 관리하기로 했다. 

그런 '평화로운' 코네펠트의 어느 밤, 클라우디아는 마을 사제의 부름을 받고 성당으로 갔다. 클라우디아의 미모는 근방에 명성이 자자했는데 클라우디아가 이제 과부가 됬으니 코네펠트의 많은 젊은이들이 클라우디아를 침대에서 품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은 마을 사제도 마찬가지였다. 클라우디아가 성당에 도착하자 마을 사제는 클라우디아를 유혹했고, 사제 자신과 함께 침대에 누울 시 많은 방면으로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사제라는 직위는 상당한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클라우디아는 거절했고, 마을 사제는 이미 예상했다는듯 혀를 한번 쯧 차더니 로텐부르크에서 고용한 용병들을 시켜 클라우디아를 강제로 침대에 눕혔다. 그날 밤 성당의 침대는 고통과 수치의 비명소리에 요란히 삐꺽였다.

하지만 클라우디아는 무너지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남편의 농지들을 일부 매각한 후 한무리의 용병들을 고용해 대리고 다녔다. 클라우디아는 마을 사제의 권력에 짓밟혔을지언정 저항없이 짓밟힌채로 남아있을 생각은 결코 없었다. 한번 자빠뜨리고 나면 순종적으로 변할 것이라 생각한 마을 사제의 예상과는 제법 다르게 일이 진행됬다고도 볼 수 있겠다. 아니, 같은 침대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어떻게 나를 거부하기 위해 용병까지 고용한단 말인가? 마을 사제의 당황은 분노로 이어졌고, 마을 사제는 클라우디아의 하찮은 저항을 깨부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마을 사제는 클라우디아를 마녀라고 지목했다. 그녀의 집에서는 하루 전까지만 해도 찾아볼 수 없었던 우상숭배의 증거들이 튀어나왔고, 짧지만 격렬한 고문 이후 클라우디아는 '사악한 주술을 부려 코네펠트의 선량한 기독교도들을 타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으려 했다' 라고 자백했다. 클라우디아는 반쯤 발가벗겨진채로 마을 사람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한 후, 화형대에 올라 산채로 불태워졌다. 화형대가 타오르며 시뻘건 혓바닥을 낼름거리자 마을 사제는 불빛에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었다. 클라우디아가 관리하던 재산은 자식들에게 상속되는 대신 코네펠트 성당과 마을 사제를 도와준 일부 마을 사람들에게 분배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신의 이름으로 하늘 아래에 이토록 당당하게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클라우디아의 장남 프랑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신의 이름이 이토록 평화로운 가정을 산산조각낼 수 있으며, 대체 어떻게 신의 이름이 이토록 쓰라리고 쓰라리도록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평화로운' 코네펠트의 잔인한 현실은 프랑크가 고통과 증오에 막연히 매달려 있는 사치를 허락하지 않았다. 프랑크와 동생들은 마녀의 자식이였고 코네펠트의 사람들은 마녀의 자식을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한참 어른들의 보호를 받아야할 나이인 프랑크와 동생들은 매서운 길거리로 쫓겨졌고, 그들의 손아귀에는 당장 먹고 죽을 빵쪼가리 하나도 쥐여져있지 않았다. 프랑크는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위해 어떤 일이던지 해야만했다.

몇번의 힘겨운 겨울을 어찌어찌 살아남은 프랑크와 동생들. 모두가 그렇게 운이 좋지는 못했다. 가장 어린 두 동생들은 첫번째 겨울을 이겨내지 못해 죽었고, 두번째 겨울에는 한명이 더 죽었다. 여섯중 오로지 셋만이 살아남았다. 프랑크는 그가 지켜내지 못한 세 동생들을 결코 잊지 않았다. 프랑크는 매일 밤 자기 전에 죽은 동생들의 이름과 모습을 머릿속에 새겨넣듯 끊임없이 떠올렸고, 차갑게 식은 동생들의 시체를 처음 발견했을 때의 그 처절한 상실감을, 아무리 뼈저릴 정도로 고통스러울 지언정, 결코 잊지 않았다. 자신이 실패했을 때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지를 똑똑히 기억해야만 그런 비극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죽을 각오로 달려들 수 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한무리의 용병단이 코네펠트를 방문했다. 그들은 헤세-루텐베르크 방백의 깃발 아래 종군할 용병들을 모집하는 것이 목적이였다. 제국은 똑같은 십자가를 다른 방식으로 섬기는 두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온 유럽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종교분쟁에 개입해오자 제국 전역은 전쟁터로 변했다. 그리고 그런 험난한 난세에는 한명이라도 더 많은 군인을 가지고 있어야만 욕심스러운 짐승들로부터 자신의 영지를 지킬 수 있었다.

프랑크는 용병단 앞에 뛰어들었다. 저는 빼빼 마르고 나이도 어릴지언정 갑옷을 입고 장창을 들을 수 있다고, 그러니 부디 자신을 용병단에 받아달라고, 프랑크는 애원했다. 난세에는 어떤 사람이던 한명이라도 더 많다면 언제나 쓸모 있다. 그래서 프랑크는 보수를 절반으로 받고, 약탈물을 얻지 못하고, 갑옷과 무기는 용병단에서 사주지만 장비값이 다 지불되기 전까지는 보수 전액이 자동으로 장비값으로 지불되고, 동생들도 용병단에 함께 따라가서 잡일거리를 대가로 숙식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언제 마을이 약탈당할지 모르는 난세에는 역설적으로 군대를 따라다니는 것이 가장 안전할 수도 있으니까.

세월이 흐르고 프랑크의 첫번째 전투가 시작했다. 상대방은 제국의 개신교도 영주들. 신참 프랑크는 장창을 든 채 온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요란하게 울리는 전장의 북소리, 사방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온갖 영주와 온갖 연대들의 온갖 깃발들, 죽음을 앞둔채 긴장한 남자들의 거친 땀냄새. 프랑크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전장을 보기 전까지는 전장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했으나, 전장을 보고나니 그 공포와 긴장을 직접 두 눈으로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었다. 프랑크의 온몸이 전장의 아우라에 사로잡힌 것만 같았다. 

그때, 죽은 동생들의 얼굴이 프랑크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다음에는 프랑크만 바라보는 두 동생들의 얼굴들도 떠올랐다. 그래, 프랑크는 여기서 죽을 사람이 아니였다. 프랑크는 반드시 살아남고 또 살아남아서 어떤 수를 써서라도 사다리의 꼭대기로 기어오를 생각이였다. 프랑크는 다른 사람들의 결정에 의해 그의 삶이 좌지우지되는 것에 진절머리가 나 있었다. 어째서 마을 사제의 결정에 모친 클라우디아가 죽고 프랑크와 동생들의 삶이 이토록 처절하게 변해야만 하는가, 클라우디아의 삶은 클라우디아의 것이고 프랑크의 삶은 프랑크의 것인데. 다른 사람들의 결정이 프랑크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결정했다, 프랑크는 그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지배받고 결정된다는 것이 너무도 두렵고 너무도 증오스러웠다. 프랑크는 다른 사람들에게 지배받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지배받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지배해야만 했다. 한손에 힘과 공포를, 다른 손에는 존경과 온화함을 적절히 휘두르며 자신보다 나약한 자들을 필요하다면 짓밟고 필요하다면 일으켜주며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해야만했다. 그리고 프랑크는 군림할 생각이였다. 오, 프랑크는 기필코 남들 위로 기어올라 이 엿같은 세상 위에 군림할 생각이였다. 프랑크는 이 엿같은 세상의 꼭대기에 올라 경멸과 증오를 얼굴에 띈 채 아래에 살아가는 미천한 나머지를 비웃고 조롱하며 미친듯이 웃어재낄 것이였다. 그러니 프랑크는 겨우 이런 자그마한 전투에서 하찮게 죽을 사람이 아니였다.

한편, 21세기의 대한민국이란 곳에서 트럭에 깔린 후 이세계로 이동해온 이재준이란 사람이 개신교도 진영에서 기독교도 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죽어가는 드래곤의 후인으로 선택되서 그의 드래곤하트와 모든 기억들을 전수받았다. 이재준은 옅은 미소를 띈 채 주변을 둘러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흐음, 아무래도 밥을 먹은 이상 밥값을 해야겠지?"

이재준은 한손을 들고 작게 주문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하늘이 시꺼멓게 변하고 뇌전이 번쩍이더니 수백발 넘는 거대한 뇌전이 기독교도 진영을 연달아 후려쳤다. 프랑크를 포함한 기독교도 진영의 수천 군인들은 이재준의 마법에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이재준은 다시 작게 중얼거렸다.

"이거 이거, 아무래도 다음부터는 힘조절을 해야겠는걸?"

수천명을 죽일 수 있다는게 그저 즐거운듯한 모습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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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실제 역사에서 헤세-로텐부르크 방백령은 개신교였지만 걍 넘어갑시다. 주인공이 뭐 할 때마다 수천 수만씩 걍 죽어나가던데, 그 죽어나가는 사람 한명한명도 다 각자만의 삶을 가진 사람이 아니겠냐는 생각이 들어서 한번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