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30 12:04

자체적으로 보급기지의 역활도 겸할 수 있는 기함급 함선간의 근접전투는 전함 혹은 그 이하의 급을 가진 함선들의 근접전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띄고 있다. 기함급부터는 거대한 에너지 파장을 형성하여 단거리 강습용 워프 엔진의 좌표를 마구잡이로 뒤흔들어놓는 혁신적인 물건인 크리스탈 파장기가 배치 되기 때문이다. 1톤의 크리스탈만큼의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소모하긴 하지만 크리스탈 파장기는 기함 급 근접전에서 없으면 안 될 매우 중요한 물품이였는대, 이것이 배치 된 기함으로 단거리 워프를 시도한다면 강판 속이나 우주공간 밖으로 이동되게 된다. 사실상 단거리 워프를 봉쇄하는 물품인 것이였다.


이것을 뚫는 유일한 방법은 함선의 주포로 그냥 밀어버리는 것이였는대, 현재 부관이 점령한 기함은 그 점에서도 전혀 꿇리지 않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에너지 배리어는 모든 종류의 빔 어택을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었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장갑과 MD체제는 모든 종류의 미사일을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부관은 기함 내부에 적재 된 어마어마한 양의 자원과 건설봇으로 끊임없이 미사일을 생산해 적을 공격할 수도 있었으니 사실상 모든 방면에서 기함은 난공불락이나 다름없었다. 함선전에서 밀린다면 단거리 공습으로 해결해야 하고, 단거리 공습이 무효화됬다면 함선전으로 해결해야 하는대, 기함은 두 방면 모두에서 적보다 우위에 놓여있었다. 물론 함장은 시간만 주어진다면 이런 기함도 점령할 수 있을 것이였다. 그와 그의 참모진은 매우 창의적이였으니까. 부관은 그들이 이 기함을 뚫지 못하리란 헛된 기대는 품지 않았다. 다만, 어느정도의 시간을 벌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고 부관은 그렇게 벌은 시간을 이용해 일단 내부의 환란을 해결해야 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부관은 우선 젠의 파벌 안에 분열을 일으켜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부관은 자신의 선원중 일부에게 마인드컨트롤 칩을 심어 그에게 무한한 충성심을 가지도록 한 다음 그들을 젠의 파벌 안에 투입시켰다. 그 안에서 그들은 무장을 할 수 있을만한 지위까지 빠르게 올라갔고, 그 지위에 오르자마자 그들을 따르는 자들과 함께 기함 내에서 온갖 종류의 분쟁을 일으키고 다니도록 하였다. 공동휴게실에 무장을 갖춘 채 가서 시비를 건다던가, 화가 나면 가우스 라이플로 천장을 갈긴다던가. 순식간에 이들은 골치를 썩히는 놈들로 분류 되어 무장은 압수당하고 파벌 내에서 따돌림 당하게 됬지만 젠의 파벌 내부에는 자신들이 이리 과격한 집단이였나 하는 회의감을 품는 자들이 빠르게 형성되어 갔다. 지도자가 빠르게 그것을 해결한다면 그런 회의감은 그리 큰 문젯거리가 아니였지만 젠의 파벌은 젠을 지도자로 삼기보다는 젠을 추종하는 자들이 그냥 모여있는 것이였고 제대로 된 지도자가 없었기에 그 회의감은 해결되기는 커녕 오히려 빠른 속도로 집단 내에 퍼져나갔다.


그렇게 젠의 파벌이 회의감에 젖어있을 무렵, 부관은 자신과 자신의 파벌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부관은 겸손한 인물이며 묵묵히 함대를 위해 자신이 맡은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지, 얼마나 그의 파벌은 공정하며 정당하고 모든 일에서 근면한지에 대한 소문이 기함 곳곳에 퍼져나갔다. 그 과정에는 부관에게 작전의 내모를 들은 젠의 혁혁한 지원이 있었다. 젠 스스로도 그 소문을 앞장서서 퍼트렸기 때문이였다. 젠은 권력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자였다. 그렇게 추종하는 대상부터가 자신들을 꺼려하고, 스스로도 회의감이 드는 대다가, 부관에 대한 대대적인 선전까지 자행되자, 젠의 파벌은 순식간에 와해되고 비 내린 후 땅이 단단해지듯 부관을 더 깊게 충성하게 되었다. 분란은 그렇게 간단히 해결된 듯 보였다.


하지만 사실, 이 점에서 부관은 두개의 중대한 실수를 자행해버렸다. 첫번째는 바로 분란을 최대한 빨리 해결하기 위해 외부 정세 관찰에 쏟을 힘조차 분란에 투자했다는 점이였고, 두번째는 바로 함장을 얕봤다는 점이였다. 부관이 외부 정세를 그냥 설렁설렁 살피면서 내부환란에만 집중할 동안 함장은 어마어마한 작전을 계획하고 있었는대, 그것은 바로 기함을 방패삼아 데브리 필드로 돌진하는 것이였다.


작전의 세부내용은 이러했다. 우선 최대한 무인화되서 10%의 선원만이 필요한 전함 50척에 데브리 필드에서도 50%이상의 생존율을 자랑하는 탈출용 우주선을 가득 채운 후 그것을 순식간에 기함에 돌진하게 한다. 이 50척의 전함의 두부(머리 부분)에는 주포 대신 함선 단위 견인에 사용하는 초강력 전자석이 부착 되 있었는대 이 전자석을 이용해 전함 50척을 기함에 부착시킨 다음 기함을 앞세워 데브리 필드에 진입한다. 기함의 장갑이 강력하다고는 해도 거대 데브리까지 막아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였다. 아마 MD체제를 풀가동한다 해도 데브리 필드의 반대쪽으로 뚫고나올 즈음에 기함은 괴멸적인 피해를 입은 후일 것이였다. MD와 빔 포는 지근거리에서는 그리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헛점을 이용한 작전이였다.


부관은 함장이 이러한 작전을 준비중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함장이 최대한 비밀스럽게 작전을 수행한 것도 있었지만 부관의 외부 정세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 가장 컸다. 그렇게 작전의 D데이가 밝아왔고, 전함 50척은 함대 속에 숨어있다가 최대출력으로 돌격 해 기함에 달라붙었다. 마치 숨겨진 단검이 찔러오듯 진행 된 그 속도에 부관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고, 기함이 그들에 의해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하자 함장의 꿍꿍이 속을 깨달을 수 있었다. 부관은 MD체제와 빔 포를 총동원해서 전함들을 떨쳐내려 했지만, 전함들은 기함에 마치 찰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어 있었기에 대부분 전함보다는 기함을 더 많이 타격했다. 자신의 주먹으로 자기 자신을 때리는 것이였다. 그렇게 데브리 필드가 가까워지자 기함은 혼란에 빠졌다. 반란군 모두는 데브리 필드의 공포를 기억하고 있었다.


기함의 브릿지는 공포에 질린 반란군 오퍼레이터들의 비명소리로 가득찼다.


"데브리 필드 진입까지 1분 남았습니다!"


함장이 한 때 앉았던 푹신한 의자에 앉아 부관은 관자놀이를 무심히 어루만졌다. 그는 그가 함장을 얕잡아봤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런 전략을 이리 빠른 시간 안에 함장이 생각해내고 수행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고, 현재 그것의 대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30초!"


거대한 스크린에는 대규모 데브리 필드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모습이 비춰져있었다. 꾸준한 속도로 가까워지는 데브리 필드의 모습은 보는 인간의 숨을 턱턱 막히게 할 정도로 압도적이기 그지없었다. 부관은 일단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모든 미사일을 소진하는 한이 있더라도 MD체제를 최대한으로 가동시켜 데브리를 요격시키십시요. 우선순위는 장갑을 관통할 수 있는 5x2m이상의 대규모 데브리. 일단 피해를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오퍼레이터들은 바쁘게 움직였고, 곧 부관의 명령에 따라 기함의 모든 부위에서 마치 거대한 구름이 퍼져나가듯 미사일들이 발사되었다. 붉게 번뜩이는 죽음의 구름은 컴퓨터에 의해 조종되며 거대한 데브리들을 우선적으로 요격했고, 순식간에 데브리 필드에 거대한 구멍이 하나 생성되었다. 나름 쓸만한 성과였지만, 방금 그 한방에 기함이 소유한 미사일중 10%가 소모됬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리 유용한 성과는 아니였다. 하지만 다른 선택이 없었다.


"재차 발사하십시요."


부관은 미사일을 모두 소진하고 나면 함장은 어떻게 막아야할지 눈앞이 막막해져왔다.


임시로 기함의 역활을 맡은 한 전함의 브릿지에서 기함의 곳곳이 뒤틀리며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함장의 눈앞또한 부관처럼 막막해져왔다. 그 기함의 안에 설치 된 시설들은 이 함대의 미래나 다름 없었다. 그것들이 파괴된다면 함대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불보듯 뻔했다. 함장은 피곤한듯 자신의 의자에 파묻혔다. 그의 참모진에서 새로 임명 된 부관이 그런 함장을 보더니 나지막하게 읊었다.


"오 차갑고 비정한 철의 칼날이여. 그대는 누가 처음으로 만들었는가. 인육을 가르며 뼈를 부수는 그대의 이름을 누가 처음으로 생각해냈는가."


함장은 조용히 대답했다.


"이름모를 그대여 그것은 당신의 무게이오리니 세계의 모든 과부와 고아는 그대를 증오할지어다. '지휘관의 마음가짐'을 자네도 읽었었나보군."


"함장님은 그 문구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함장님의 작전이 잘못 되 죽은 남아의 아내와 아이는 함장님을 증오하시겠지요. 함장님의 작전에 사망한 적의 아내와 아이는 함장님을 증오하시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짓눌리시면 안됩니다. 함장님은 그 무게를 짊어지셔야합니다. 모두가 기피하는 일이라 해도 누군가는 해야만 하니까요."


한편, 기함의 브릿지에는 절망같은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미사일을 전원 소모했습니다!"


그 말은 기함에 대한 사형선고나 다름 없었다. 헤쳐나가야 할 데브리 필드는 아직 반이 넘게 남아있었다. 부관은 머리가 아파오는지 눈두덩이를 짓누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모든 선원에게 충격에 대비하라는 말을 전하십시요."


그리고, 기함은 데브리 필드와 정면으로 충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