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24 20:11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420

끝없이 펼쳐진 막막한 공허. 최근 개발 된 혁명의 신기술인 초광속 워프 엔진을 사용한다 해도 몇주동안 항성계 하나도 이동하지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공간인 우주는 우주란 것을 인류가 깨달은 순간부터 정복하기 위해 뭇 남자들이 피를 흘려왔던 곳이였다. 완벽한 절대 영도이자 완벽한 무중력의 무심한 공간. 그곳에 흐른 뜨거운 피와 노력의 결정체인 거대한 전함들이 함대를 이루어 조용히 공허를 항해하고 있었다. 


"장관이군."


이 위대한 함대의 조율자이자 지배자, 우주 작은 공간이나마 자유자재로 휘두를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 함장은 브릿지에 설치 된 거대한 홀로스크린에 비추어진 그 모습을 보며 무심히 말했다. 그는 쉽게 말을 하는 자가 아니였고, 그 쉽지 않게 내뱉은 말이 칭찬인 경우는 더욱 드물었다. 하지만 그런 딱딱한 그도 이리 칭찬을 할 정도로 함대의 모습은 조화롭기 그지 없었는대, 언제 어디서든지 기습공격에 대비할 수 있도록 가장 강력한 장갑을 가진 전함들이 일종의 껍질로서 함대의 가장자리에 배치 되 있고, 전함이 모루로서 공격을 받아주면 효과적으로 망치 역활을 맡을 순양함들이 그 뒤에 배치 되 있었으며, 전함의 라인이 흔들리면 언제든지 추가로 배치 되 라인을 보강해줄 미사일 순양함들과 기함이 중앙에 배치 된 계란처럼 보였다. 이렇게 진형을 짜면 양익을 재빠르게 반전시킴으로서 어느 방향에서 적이 나타나든 역으로 적을 포위할 수 있었기에 전술적인 면에서도 흠잡을 수 없을 진형이였다. 이 모든 일을 수개월동안 계속 유지시키기 위해 3교대로 일한 오퍼레이터들은 피곤에 절어 헬쑥해진 얼굴로 기쁘게 미소를 짓었다.


함장은 손을 흔들어 스크린을 끈 후 마저 보고를 하라는듯 자신의 검은 인공가죽 의자에 축 늘어졌다. 노란 머리와 맵시있는 몸이 인상적인 부관은 한 손에 들고있는 U패드를 조작하며 나머지 내용을 읊었다.


"..........그리고, 마지막 보고입니다. 현재 탐사정들이 전방에 대규모의 데브리 필드를 발견했습니다. 규모는 약 3천 전함(3천대의 전함이 부서진 규모.)으로 추측되며, 본 함대의 항로와 겹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현 시각으로부터 1시간 6분 후까지 함대의 이동각도를 3도 변경하여야 한다는 항해팀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정비팀은 데브리 필드가 최소 10년 이상은 지난 것인지 대규모로 흩어져있기에 만약 충돌할 경우 전함의 장갑까지 반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함장은 그 마지막 보고에 약간 놀랐는지 눈썹을 살짝 떨었다. 함장이 놀랄 때마다 볼 수 있는 일종의 버릇이였다. 함장은 그의 작은 체구를 집어삼키듯 빨아들인 의자에서 오른팔을 뺀 후 U패드를 달라는듯 손을 까딱였다. 부관은 정중히 함장에게 U패드를 건내줬고, 함장은 빠른 속도로 보고서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내리다 다시 U패드를 건내주었다.


"함대의 인공중력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속도로 함대의 각도를 변경하는 것을 허가한다. 항해팀은 전문가들이니 알아서 하겠지."


보고가 평소와는 약간 다른 사건으로 끝났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 날은 평소와 아무것도 다를 것이 없는 날이였다. 인공중력은 정확히 1G를 유지하고 있고, 전투력 보존을 위해서 365일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인공자연 프로그램이 만들어준 초가을의 날씨가 선선하기 짝이 없는 평범한 하루. 어찌보면 아무런 이상도 없는 평범한 항해였지만, 함장은 기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함대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 8개월의 항해를 계획하고 있었고, 현재 그중 5개월째가 끝나가는 중이였다. 당연하지만 함대간의 전투는 강한 에너지폭풍과 대규모 데브리를 생산하기에 방어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행성 근처에서 전투가 일어나는 것을 막는 것이 함대전의 기본이였다. 에너지폭풍은 접전지로부터 50광분(빛이 50분동안 갈 수 있는 거리)까지의 행성을 모두 강타해 EMP 방어기능이 없는 전자제품은 모두 파괴시킬 수 있으며, 데브리는 행성의 중력에 이끌려 거대한 운석우를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였다. 물론 적의 공격을 받은 곳이 변방행성이라면 역으로 그렇게 초토화된 행성을 적에게 건내주는 전략을 쓸 수도 있겠지만, 현재 그들이 향하는 곳은 바로 적의 수도. 수도는 단순히 제국의 중심으로서의 의미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 동시에 경제적, 산업적 중심지이기도 하니 적이 수도를 포기할 가능성은 전무했다. 적이 중간에 요격함대를 보낼 것이 분명하다는 뜻이였다.


애초에 함장이 항해중에도 전투대형의 유지를 고집하는 이유부터가 적이 언제 스텔스필드를 이용해 항해중인 함대를 기습할지 알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였다. 하지만 항해의 반이 끝나가는 이 순간까지도 그런 요격함대는 발견되지 않았다. 적이 미치지 않은 이상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과연 적은 무엇을 꾸미고 있을까. 함장은 의자에 파묻힌채 조용히 생각하고 생각하였다. 전투에 나선 이상 지휘관으로서 그는 적보다 한발 앞서 생각하고 행동해야만 했다. 갑자기 한 생각이 번개처럼 함장의 머리를 스쳤다. 그래, 그래! 적은 그것을 노리고 있는 것이...!


그때, 함장의 깊은 생각을 방해하며 스크린에 한 영상대화 대기창이 떠올랐다. HQ로부터 온 긴급통신이였다. 오퍼레이터는 함장의 눈치를 살짝 본 후 물었다.


"HQ에서 긴급통신을 요청했습니다. 통신의 해킹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통신을 연결할까요?"


함장은 번뜩이며 떠올랐던 생각의 실마리를 잡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더 모호해지기만 하자 그 생각을 떨쳐낸 후 통신연결을 허가하였다. 그는 빨리 통신을 떨쳐낸 후 하던 생각을 계속하고 싶었다. 하지만 거대한 스크린을 가득채우며 심한 부상을 입은 한 사병이 나타나자 함장은 눈썹을 살짝 떨기만 할 뿐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놀라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스크린에 나타난 사병은 멋쟁이 스닉 일병이라 불리는 자였는대, 별명에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제복으로 멋부리기로 유명하였다. 하지만 그런 멋부림이 무색하게도 영상에 나타난 스닉 일병의 제복은 마치 고열에 녹아버린듯 피부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드러난 피부는 시뻘겋게 달아올라 수포가 잔뜩 가득했으며, 오른팔은 어디다 놓고온건지 길게 줄처럼 녹은 제복만이 덜렁거렸다. 그것만으로도 처참하기 짝이 없는 꼴이였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의 하얗게 익은 눈이 갑자기 픽 터지며 수정액을 사방에 흩뿌리자 오퍼레이터 몇명은 헛구역질까지 하였다. 함장은 그들을 이해했다.


스닉 일병은 성대가 반쯤 익었는지 유리 긁는듯한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보고를 하였다.


"스닉 일병 보고드립니다. 현재 연락병과 연락장교 모두 부재중이기에 대리로 연락을 맡게 되었.... 쿨럭, 쿨럭!"


스닉 일병은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기 그지 없는지, 마치 심장을 토해내듯 거세게 기침을 하였다. 그가 기침을 하다 피를 걸쭉하게 토해내자 잠시동안 함장은 그가 진짜로 심장을 토해낸줄 알았다. 오퍼레이터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얼굴이 새하얘졌다.


스닉 일병은 기침을 거칠게 하다가 아래에서 쿵쾅거리며 중무장 해병대가 이동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화상에 익은 얼굴로도 표현되는 다급함을 담아 토해내듯 보고를 계속하였다.


"현재 HQ는, 쿨럭! 적 세력에 의해서 기습당했습니다. 탐사위성들은 모두 적의 해킹에 의해 파괴 되 있었기에 기습은 대비되지 못하였고 행성보호함대는 적의 기습에 의해 현재 전멸하였습니다. 그 후 궤도 폭격과 대규모 해병 강하에 의해서 행성보호전단마저 전멸하였고 관제탑은 기능을 곧 상실할 것으로 추측됩니다. 관제탑의 항해지원은 중지 될 것이니 현 항로를 어떤 일이 있어도 유지하셔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들은 제국의 희망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미아가 되서는 안됩니다! 절대,,,,"


보고가 계속 되던 중, 스닉 일병의 머리가 마치 리볼버로 수박 터트리듯 터졌다. 중갑으로 온몸을 둘러싼 중무장 해병이 가우스 라이플을 발사 한 것이였다. 중무장 해병은 영상이 촬영중인 것을 보더니 가우스 라이플의 개머리판으로 그것을 부수었다. 개머리판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영상은 끝났고, 스크린은 자동으로 종료되었다. 브릿지는 방금 본 것을 믿지 못해 침묵에 젖었다.


함장은 상황판단이 빨랐다. 데브리 필드를 그대로 뚫고가야만 한다 해도 그들은 항로를 변경할 수 없었다. 항로지원의 중단은 함대가 은하단위의 좌표를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것은 함대가 광활한 우주속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을 뜻했다.


"부관. 지금 당장 항해팀에 연락해 항로 변경을 중단시키도록."


함장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함장은 방금 내린 명령이 입을 열자마자 나오려하던 횡설수설을 되삼킨 후 한 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부관은 함장의 명령을 들을 정신이 없는지 멍한 표정으로 검은 스크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초가 급한 상황이였기에 함장은 몸을 일으켜 부관의 얼굴에 주먹을 한대 날렸다.


퍽!


부관은 함장의 작지만 튼튼한 주먹에 얻어맞아 바닥을 굴렀고, 그 소리는 브릿지의 모두를 멍한 상태로부터 깨웠다. 함장은 부관을 내려다보며 쥐어짜듯 외쳤다. 그는 이럴 때는 고함이 답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부관! 나의 명령이 들리지 않는 것인가! 당장 항해팀에 연락해서 항로 변경을 중단시키도록!"


부관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U패드를 집어들어 항해팀과 연결하였고, 뭐라뭐라 대화를 나누었다. 온 브릿지의 인원이 그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대화의 내용이 그들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였기 때문이였다.


툭.


U패드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브릿지를 울렸다. 부관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함장을 포함한 브릿지의 모두는 부관의 입을 노려보았다. 잠시 후 부관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미 항로를 변경했답니다."


브릿지의 모두는 온몸에 힘이 빠져 바닥에 쓰러졌다. 함장의 머리는 새하얘지며 모든 생각을 지워나갔다. 함장은 순식간에 10년은 늙은듯 했다. 그는 지금 무슨 상황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알 수 있었지만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퍼레이터 한명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나보다.


"그렇다면, 우린 지금 우주미아가 됬다는 것입니까?"


우주미아! 그 강력한 단어가 쓰나미처럼 브릿지를 강타했다. 그 단어는 스스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마치 망치처럼 모두를 흠씬 두들겨놓았다. 우주미아! 그렇다, 그들은 우주미아가 된 것이였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말이다.


함장은 그 단어를 듣자마자 온몸이 피로감에 젖어버림을 느낄 수 있었다. 나약한 자신을 감추기 위해 온몸에 둘둘 감고 있던 권위의 휘장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그 안의 나약한 함장을 여지없이 내보냈다. 부관은 존경하던 함장에게서 전혀 예상치 못하던 모습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의 머릿속에 건설된 환상의 성채가 와르르 무너졌다. 부관은 위급한 상황에는 든든한 등만을 보여주던 함장이 나약해보일 날이 올줄은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함장의 추종자이던 부관에게는, 함대가 미아됬다는 사실보다 함장이 보여준 나약한 모습이 더 큰 충격이였다. 하지만 다행인지 아닌지 브릿지의 나머지는 함장이 어떤 모습인지 신경쓸 겨를이 없었기에 부관만이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함장은 순간 부관이 자신을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의 경악한 표정도. 부관의 눈에 비친 함장 자신의 모습은 나약하기 짝이 없는 지친 늙은이일 뿐이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리라. 순간 '어차피 상관없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함장은 재빨리 그 생각을 없앤 후 다시 권위의 휘장으로 온몸을 무장하였다. 빈틈없는 거대한 성채, 언제나 도망쳐와 기댈 수 있는 늙은 거목. 함장은 그런 존재여야만 했다. 원하든 원치 않든.


함장은 외쳤다.


"우리는 우주미아가 되지 않았다!"


순간 오퍼레이터들의 얼굴에 희망이 깃들었다. 그러면 그렇지. 저분이 얼마나 수많은 역경을 이겨낸 역전의 명장이신대, 이런 고난에 굴복하시겠어! 그런 생각이 오퍼레이터들 모두의 머리를 스쳤다. 함장은 그것을 보며 어깨가 얼마나 그 무게에 짓눌려지는지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처음 함장이 됬던 30년 전부터 저런 무게에 짓눌려왔기에 이제 너무도 지쳐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그 무게를 짊어져야만 했다. 그는 함장이니까.


"내가, 내가 방법을 생각해낼 것이다. 반드시! 생각해낼 것이다.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봐라! 우리에겐 아직 이 거대한 함대가 있으며, 앞으로 수십년은 쓸 수 있을 에너지, 제국의 일류들로만 이루어진 선원들이 있다.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퍼레이터들은 희망찬 얼굴로 함장에게 거수경례를 하였다. 하지만 부관은 초점이 잡히지 않은 멍한 얼굴로 함장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 두개의 상반된 시선을 느끼며, 함장은 속으로 오퍼레이터에게 했던 말을 자신에게 다시 외쳤다. 마치, 거짓을 진실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