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07 21:10

그 무렵, 해롤드는 그의 가족 170명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들만 해도 50명, 딸까지 합치면 110명, 아내는 60명이나 되는 대규모 인원이였다. 그의 자식중 가장 어린 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였는대, 고령의 나이임에도 정정한 해롤드가 30살이나 어린 아내를 행군 중에 임신시켰기 때문이였다. 이렇게 그의 가족이 대규모라는 것은 해롤드가 과로에 시달리면서도 항상 식사는 저녁식사는 모든 가족이 함께 해야한다는 규칙을 만든 이유이기도 했다. 워낙 대규모기에 하루에 한번씩 그렇게라도 만나지 않으면 자신의 형제의 얼굴도 모르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이였다. 식사는 해롤드의 아내들과 장성한 딸들이 도맡아 했다. 아내들은 저녁식사 때가 아니면 서로간에 얼굴 보기도 힘들었기에, 아내들간의 기싸움과 세력다툼은 주로 주방에서 벌어지곤 했다. 해롤드는 그녀들의 분쟁이 너무 심화되지만 않으면 별로 간섭하지 않았다. 분쟁은 그 자체로서의 문제가 아닌 더 심화 된 갈등의 결과일 뿐이라는 해롤드는 잘 알고 있었다. 문제의 본질을 건드릴 수 없는 상황에서 그것의 결과만 건드리는 것은, 덤불에 얼굴을 묻고 위험은 사라졌다고 믿는 멍청한 짓이나 다름 없었다.


그날의 식사도 평소와 다르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해롤드의 주변에는 어린 아내들이 앉아 재담을 늘어놓았고, 해롤드는 묵묵히 식사를 하며, 자식들은 끼리끼리 모여 영웅담을 늘여놓거나 재잘재잘 거리는, 의외로 평범한 모습이였다. 그때, 그의 아들들중 한명인 링컨이 수염에 묻은 술을 쓰윽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코는 붉게 물들어있었고, 근육은 풀려있었다.


"아버지, 있죠. 정말 아버지는 남자로서 축복받은 것 같아요. 뛰어난 지성, 강력한 육체, 아름다운 아내들, 수많은 자식들까지. 정말 같은 인간이 맞긴 하는진 의심스럽단 말이죠."


해롤드는 대답 없이 식사를 했다. 링컨은 계속 말했다.


"진짜, 나도 한번 그런 삶 살아보고 싶어요. 아버지 아들이잖아요? 생각해보니, 못 살 것이 어딨겠나~ 싶더라고요. 아버지가 고꾸라져 뒤지면 그 자리가 제꺼 되는 건대, 뭐."


사람들은 공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들들은 식기를 놓고 조용히 링컨을 주시했고, 아내들도 어린 자식들을 꼭 껴앉았다. 오로지 해롤드만이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링컨은 그런 해롤드의 모습을 보더니 무언가 울컥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해롤드는 항상 저랬다. 능력있는 자들만을 대우하고, 능력없는 자들은 같은 혈육이라 생각하긴 하는 것인지 무심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대하곤 했었다. 링컨에게 해롤드 하면 떠오르는 것은 그를 내려다보는 무심한 두 눈이였다. 링컨은 뒤틀린 웃음을 짓으며 숨겨두었던 도끼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슬슬 몸에 힘이 안들어오실 것입니다. 주방장을 죽이고 새 주방장을 넣어서 아버지가 주로 드시는 음식에 독을 좀 넣었거든요. 저 제국놈들은 싸움을 기집애처럼 하는지 의외로 쉽게 무너지더라고요? 후대에게 싸울 기회를 좀 물려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의 얼굴이 링컨의 말에 새하얘졌다. 링컨은 그들을 보며 뒤틀린 미소를 짓었다. 그를 경시하던 자들이 대신 그를 두려워하는 모습은 정말 양물을 뻑뻑하게 만들 정도로 흥분되기 그지없었다. 링컨은 여전히 묵묵히 식사를 계속하는 해롤드를 보며 숨을 씩씩 들이쉬었다. 그리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자, 괴성을 내지른 후 야수처럼 해롤드에게 달려들었다. 모두들 해롤드가 링컨의 도끼에 반토막나는줄 알았다.


물론, 해롤드는 반토막나지 않았다. 그는 무시무시한 길이의 팔을 이용해 링컨의 목을 붙잡았고, 무시무시한 괴력으로 링컨의 거대한 체구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경추에 무시무시한 압력이 가해진 링컨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채 발버둥을 쳤다. 해롤드는 마치 강철같이 요동없는 몸으로 링컨이 몸부림치던 말던 무심히 링컨을 치켜올렸고, 악력만으로 링컨의 주요 혈관들을 터트리고 목뼈를 부러트렸다. 링컨이 토해낸 피가 해롤드의 온몸을 뒤덮었다. 해롤드는 링컨의 시체를 구석에 던지고 말없이 그의 아들들을 찍어누르듯 내려보았다. 아들들은 그런 해롤드의 눈을 감히 마주보지 못하고 어깨를 찌그러트렸다. 해롤드는 그런 아들들을 무심히 보더니 아내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화장실로 향해 먹은 것들을 모조리 토해냈다.


해롤드는 식은땀을 흘리며 얼굴을 찬물에 처박았다. 독에 온몸의 근육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독에 중독 되 심각한 상황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해롤드가 허세를 부렸던 이유는 여전히 자신이 건재하다는 것을 아들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조용히 해롤드가 약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이리같은 아들들이 그에게 달려들어 그를 거꾸러트렸을 것이였다. 해롤드의 아들들은 그런 양날의 검이나 다름없었다. 날카롭고 튼튼하지만, 언제 주인을 찌를지 모르는 양날의 검. 해롤드는 언젠가 그가 그의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의 아들중 한명이 그를 죽이고 부족장의 자리를 차지할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 되!"


마치 스스로에게 일침을 놓듯, 해롤드는 작게 중얼거렸다. 해롤드의 아들들은 똑똑했지만, 제국이 약해서 패배한 것이 아님을 알 정도로 똑똑하지는 못했다. 제국은 약하긴 커녕 오히려 압도적으로 강했다. 후계자들 모두 해롤드의 군대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과 싸우는 일은 마치 외줄타기와도 같았고, 오로지 해롤드의 연륜만으로만 승리할 수 있었다. 해롤드가 하는 전쟁은 언젠가 멈춰야만 하는 전쟁이였기 때문이였다.


"그들은 멍청하게도 사소한 승리 하나에 눈멀어 제국의 심장부로 들어가겠지. 제국과의 전면전에서 우리는 절대로 승리할 수 없어!"


문명과 야만의 경계. 해롤드는 그곳까지만 점령하고 제국과 평화협상을 벌일 생각이였다. 문명과 야만의 경계를 중심으로 한 근방 지역을 점령하지 못한다면, 해롤드의 야만인들은 뒷심이 부족할 것이였다. 그렇다고 그 이상을 먹는다면 제국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것이였다. 제국이 해롤드를 위해 그어놓은 선은 문명과 야만의 경계에서 끝났다. 물론 해롤드가 그정도에서 만족할 인물은 아니였다.


"문명과 야만의 경계 후부터는 정치적으로 접근해야해! 후계자중 한명과 동맹을 맺고 그의 가신이 되는 형식을 취해야만 해. 그러다 적당한 순간에 배신을 하는 것만이 유일한 승리의 방법이야! 전면전은 절대 안되!"


해롤드는 거울 속의 자신을 조용히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생각했다. 하이퍼 드라이브를 위한 준비는 아직 끝난 상태가 아니였지만, 지금 진군하지 않는다면 추가적인 암살시도가 있을 것임은 자명한 바였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군대를 전진시켜야만 했다. 그의 아들들도 행군이 시작 된 후에는 해롤드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였다. 행군이 시작 된다면 해롤드가 죽은 후 발생할 지휘체계의 혼란을 잠재울 시간을 벌 수 없기 때문이였다. 제대로 질량을 줄이지 않은 상태에서의 하이퍼 드라이브는 엔진 과부하를 일으킬 수 있었지만, 해롤드는 다른 선택지가 없음을 직감했다. 해롤드는 세수를 한번 더 한 후 아들들 앞에 섰다.


"든든히 먹고 충분히 쉬어라. 내일 본대는 3B9 요새식민 항성계로 진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