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25 20:57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12458

브릿지는 암울한 광기에 젖어 있었다. 오퍼레이터, 부관, 함장 모두 자신이 한 행동이 옳았는지 의문을 느끼고 있었고 사소한 잡담 하나 들리지 않아 오로지 전함들로부터 끊임없이 전해져오는 긴급통신 신청음만이 브릿지를 울리고 있었다. 함장은 그 광경을보니 피곤함이 몰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브릿지는 잠시도 쉬지 않고 항상 기능해야 하기에 24시간 프로그램이 실행되지 않는 유일한 장소였는대, 그랬기에 브릿지에 가만히 있으면 쉽게 우주에 먹히듯 시간감각을 잃을 수 있었다. 함장도 시간감각을 잃어 깨닫지 못했을뿐 벌써 30시간째 잠도 자지 않고 있었다. 숙면을 취하기 전 보고를 듣고 그 후부터 계속 자지 않고 있었던 것이였다. 함장은 눈을 감고 귀를 막은채 의자에 몸을 기대고 싶었다. 그러면 달콤하게 숙면을 취하며 수도에 귀환하는 꿈을 꿀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이것은 그가 스스로 불러온 일이니까.


전함의 함선장이란 자리는 평시에 긴급통신을 요청했다면 스크린 전체를 장악할 수 있을만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그런 함선장 수백명이 한꺼번에 긴급통신을 요청하고 있었기에, 스크린은 32x8m라는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했음에도 불구하고 함선장 각각은 주먹만한 크기의 공간만을 배정받아 다양한 표정으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들의 다양한 표정을 보면 인간의 만가지 표정을 일부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외쳤다.


"함장 바꿔!"


오퍼레이터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답했다.


"현재 너무 많은 긴급통신 요청이 들어오고 있기에 함장님은 통신에 답하실 수 없습니다."


그럼 다시 그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외쳤다.


"지금 이게 무슨 지랄이야! 브릿지에서는 대체 무슨 헛짓거리를 하고 있었길래 이런 대규모의 데브리 필드도 감지 못한거냐고! 망할!"


환상이 무너져 인간이 바뀐듯한 부관은 함장의 옆에서 그것을 내려다보며 무심히 흘리듯 말했다.


"원하셨던 광경입니다. 상부의 명령만을 따르며 집으로 돌아갈 날짜만을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고급 선원들이 이 사건으로 사망하였고, 정비중에도 사고로 인해 불구가 되거나 사망하는 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겠지요. 만족스러우십니까?"


함장은 피곤한지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은채 조용히 생각을 하다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이러지 않는다면 우린 모두 자멸할 것이다. 자네도 우주미아가 된 함대보다는 이유없는 데브리 필드가 더 자주 발견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지? 심지어 발견된 우주미아 함대도 내부의 승무원들은 모두 생필품과 에너지부족으로 사망했거나, 내부 분쟁으로 자멸한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도 알고 있겠고.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 난 극약을 처방해야만 했다."


함장과 부관이 나누는 대화는 진정 기괴한 대화였다. 내용 자체로는 살벌하기가 그지 없는대, 서로간의 목소리는 무심하기 짝이 없었다. 함장의 경우는 권위로 내심을 감추었기 때문이였고, 부관의 경우는 내심자체가 반쯤 말라죽었기 때문이였는대 서로는 서로의 목소리의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함장은 내심 부관이 그렇게 된 것에 안타까움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함장이 굳건하게 보이려는 것도 부관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부관은 이미 별로 신경쓰고 있지 않았다.


"꼭 극약을 처방해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 어머니는 우주돌림병의 1차감염자중 한명이셨는대, 병에 대한 이해도가 없던 의사들이 극약을 처방해서 사망하셨습니다. 아시겠지만 우주돌림병은 그냥 1달만 잘 요양하면 낫는 병이였는대도 불구하고요. 그들은 항의하던 저에게 법정에서 이렇게 변명했습니다. 난 극약을 처방해야만했다. 함장님은 이 결정이 그냥 조급함에 쫓겨 내린 결정이 아니였다고 당당하게 말하실 수 있습니까?"


함장은 왼손에 쥐고 있는 타이머를 다시 힐끗 본 후 말했다.


"난 문제를 이해하고 있고, 인정할 사실은 인정하여 함대를 위한 최적의 선택을 내리었을 뿐이다. 자네도 군인이니 잘 알지 않은가? 가끔 전체를 위한 나머지의 희생이 불가피한 상황이 온다는 사실을. 사회에서 배운 인도주의적 선택으로 모두를 살리려 하는 군인은 그저 상실을 두려워하는 유아적 마인드를 가졌을 뿐이라는 사실을. 우린 지금 전쟁의 한복판에 놓여져있다, 부관. 난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부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함장은 뒷짐진채 무심하게 서있는 부관의 얼굴을 힐끗 보더니 속으로 자신이 한 마지막 말을 중얼거렸다. 지휘관으로서 내려야 했던 거짓말을 인간 자신에게 납득시키고자 할때 그는 그리 중얼거리곤 하였다. 함장은 왼손에 쥐고 있던 타이머를 다시 힐끗 본 후 시간이 다 됬음을 깨달았다. 3주동안 함대를 정지시킬 수 있을만한 피해를 입을 시간. 함장은 이제 사태수습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오퍼레이터. 함대방송을 시작할 예정이니 모든 채널을 나에게 연결시키도록."




그 무렵, 젠은 함내구출팀에 배치 되어 비상정비는 기계에게 맡기고 일단 인명구조에 전념하고 있었다. 함선에 들어가는 부품이 다양한만큼 데브리의 크기도 다양했는대, 전함의 장갑을 뚫을 정도로 거대한 데브리가 있는 반면 너트나 초정밀 광학장치처럼 끽해야 새끼손가락에 끼는 반지만한 크기인 부품또한 존재하였다. 크기가 작다 해도 그것들은 장갑에만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이지 인간처럼 약한 존재에게는 쉽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다. 수리가 필요한 곳들은 대부분이 그것들의 침입을 허락할 정도의 균열이 생긴 곳들이기에, 함선이 일단 정지를 해야 유인수리를 할 수 있는 것이였다.


그렇다고 인명구조가 쉽냐면 그것은 전혀 아니였다. 함내의 모든 문들은 비상시에 크림형 보완장갑의 도움과 함께 에어락의 기능또한 하기 위해서 크리스탈 강판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대, 그것은 전함의 장갑과 동일한 성질이였고 당연히 더럽게 튼튼했다. 단순히 쉽게 쓱쓱 그어서 부수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종류의 물건이 아니였다. 가장 강력한 출력의 공업용 레이저를 사용한다 해도 문과 벽 사이의 연결부를 자르기 위해서는 연결부의 한쪽에 레이저를 쏘아 서서히 달구어 녹이고, 그렇게 한쪽이 녹으면 아래로 내리고, 그것을 계속 반복해야만 했다. 그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정신을 갉아먹을 정도였는대, 그것에서 멈추지 않고 끝없이 생존자들이 안에서 살려달라고 문을 두들기는 소리까지 더해지니 언제 생존자가 죽을 지 몰라 결국 조급함에 인간의 정신이 잡아먹히도록 하였다. 한 병사는 조급함에 사로잡혀 반쯤 미쳤는지 레이저 칼날을 사방에 휘두르다 결국 실수로 자신의 다리를 자르고 균형을 잃어 쓰러지는 와중에 자신의 목을 자르기도 하였다.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는 농도짙은 블랙 코미디가 현실에서 재현 된 셈이였다.


젠이 함대방송을 들었을 때는 막 2인실에 갇혀있던 한 병사를 구출해낸 후였다. 그가 막 구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안에는 연인으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 두명이 있었는대, 구출 도중 데브리에 직격당해 남자는 죽고 여자만이 살아남았다. 젠은 여자의 구슬픈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처음 떠오른 생각이 '내가 아니여서 다행이네.' 였다는 사실이 신경쓰였지만, 그런 3류 싸구려 비극은 이 전함뿐만 아니라 아마 온 함대에서 수천개가 지금 이 순간에도 양산되고 있을 것이였다. 그런 것 하나하나에 다 신경쓰며 구조하다가는 자신의 다리와 목을 자르고 죽은 그 병사처럼 될 뿐이였다.


젠은 우주에 빨려나가도 1시간은 버틸 수 있도록 지급받은 우주복의 헬멧을 벗고 땀을 닦았다. 정비를 기계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이유인 소규모 데브리가 밖에 가득하니 1시간은 커녕 10초 버티면 오래 버티는 것이라는 생각에 입지 않는 병사도 많았지만 젠은 그래도 왠지 신경이 쓰였기에 우주복을 입고 있었다. 유비무환이라고 대비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은가. 그때 함대방송이 시작되었다.


"본 함대의 통솔자이신 함장께서 곧 방송을 시작하실 예정입니다. 급한 상황이 아닌 모든 선원은 본 방송을 듣길 바랍니다."


함대방송을 예고하는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이곳뿐만 아니라 함선 곳곳에서 메아리치듯 울렸고, 잠시 후 낮은 노중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함장이였다.


"함장이다. 평상시라면 이런저런 말도 하면서 함대방송을 시작했겠지만 모두 알다시피 현재 함대는 심각한 위협을 직면하고 있으니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현재 본 함대는 데브리 필드의 한가운대에 위치해있다. 데브리필드에 진입한 초기에는 최대한 빨리 함대를 정지하고 유인정비를 시작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이 데브리 필드는 구식 부품으로 이루어졌는지 자기장에 반응해서 함대 장갑에 느리지만 달라붙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져 본인과 참모진은 역으로 속도를 내서 데브리 필드를 최대한 빨리 벗어난 후 정비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모든 함장은 함선의 속도를 시속 10광초로 유지하길 바라며 워프엔진의 정비를 일순위로 하길 바란다. 또한 전함보다 장갑이 약한 순양함, 미사일 구축함, 구축함, 강습 항공모함, 수송선에 피해가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진형을 유지할 예정이니 함장은 전원 오퍼레이터의 조율에 전격 따르길 바란다. 이견은 받지 않는다. 이상."


젠은 어이를 상실했다. 함선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속도를 시속 5광초에서 6광초로 유지중인대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그것을 줄이는 대신 오히려 2배로 늘린다니. 잠시 후 속도를 진짜로 늘린 것인지 곳곳에서 우박내리듯 우두두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속도를 늘려서 소형 데브리가 크리스털 강판에 기스를 낼 수 있을정도로 위협적으로 변한 것이였다. 대형 데브리는 어떻게 됬을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