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25 14:54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16197

함장은 오퍼레이터 전원을 브릿지에서 내보낸 후 홀로 남은 브릿지를 둘러보았다. 약 50여명의 인원이 자유롭게 활동하며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인 브릿지는 총 2개의 층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대, 1층은 오퍼레이터들의 공간이였고 2층은 함장의 공간이였다. 그동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삐 오고다녔기에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브릿지가 만들어진지 거의 최초로 함장 혼자만 남게되자 함장은 브릿지가 얼마나 넓고 고독한 곳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함장은 브릿지 1층을 조용히 걸으며 생각하였다. 그는 오랜 경험으로 문제는 대가없이 해결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적을 물리치고 싶다면 아군을 희생해야 했으며, 함정을 통과하고 싶다면 역시 아군을 희생해야 했다. 함장이란 자리는 결국 그 희생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존재할 뿐이였다.


그래서 함장은 고민했다. 과연 이 희대의 사태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바쳐야 할까. 과연 무엇을 해야만 자신만을 믿던 오퍼레이터들의 기대를 보상해줄 수 있을까. 함장은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자신의 의자에 몸을 파묻혔다. 그는 너무 지쳐있었다. 너무 지친 나머지 무신론자임에도 불구하고 신에게 기대고 싶을 정도로.


"예수! 야훼! 아후라! 부처! 알라! 어째서 저에게 이러시는 것입니까. 대체 어째서 왜. 제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이러시는 것입니까!"


당연하게도, 함장의 외침은 아무도 답해주지 않았다. 스크린에 비춰진 끝없는 공허의 우주가 그를 노려볼 뿐이였다. 숨이 막힐 정도로 농도짙은 침묵으로. 우주는 마치 이리 말하는듯 싶었다. 만약 이 함대가 우주미아가 되지 않았더라면, 적의 수도는 불타고 남자는 학살당하며 여자는 겁간당하지 않았을 것이냐. 적은 자국을 위해서 그것을 막아야 했지 않았냐. 사실, 그것은 우주가 아니라 함장 자신이 자신에게 말해주는 소리였다. 함장 자신도 적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행동하였을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 우주미아가 된 것이 함장이 아니라 다른 제국의 다른 사람이였다면, 함장 자신은 그런 의견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지막하게 충고하듯 말하기까지 했을 것이였다.  그저 이번에는 그가 사건의 피해자가 됬을 뿐.


아무도 없는 고요한 침묵은 함장에게 환청의 소리를 들려주었고, 우주는 잔인한 미래의 환상을 보여주었다. 적의 함대가 텅 빈 제국을 유린하며, 행성에서 행성으로 세력을 펼쳐나가고, 결국 수도가 점령되며 위대한 통치자가 진흙바닥을 구르는, 잔인하지만 확실한 미래. 통치자는 아마 마지막 순간까지 함장이 함대를 이끌고 구원의 손길을 내뻗을 것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였다. 하지만 함장은 갈 수 없으리라. 그의 함대는 언제까지나 목적지 없는 항해를 계속하기만 할 것이였기 때문이였다. 함장은 결국 한가지 사실, 그가 영상을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애써 부정하고 있던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그의 함대는 우주미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렇게 인정해야 하는 사실을 인정하고 해결책이 우주미아를 벗어나는 것에서 우주미아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으로 변경되자, 함장은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곧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함대를 위해서 반영구적인 에너지원과 반영구적인 식량 공급처를 만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들을 제작하려면 못해도 3주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함대가 우주미아가 됬다는 사실이 공개되면 선원들은 폭주할 것이 분명했는대, 그런 선원들을 가지고 대규모 건설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주미아라는 사실을 숨기는 것도 고려해볼만 했지만, 대규모 건설을 하기 위해서는 함대를 정지시켜야 했는대 특별한 이유 없이 함대가 정지를 한다면 선원들은 함대에 무언가 이상이 생겼나 의심을 할 것이 분명했다. 의심을 가진 선원들에게서 진실을 숨기기란 불가능한 일이였다. 함장은 어떻게 해야 3주동안 함대를 정지시키면서, 선원들이 의심을 가지지 않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였다. 그는 곧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너무도 어이없는 방법이였기에 함장은 헛웃음을 했지만, 그것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바로 데브리 필드로 함대의 방향을 꺽는 것. 함대가 데브리 필드와 접촉한다면 대규모 손상으로 인해서 함대를 정지하고 수리에 전념해야 할 것이였으니, 그 이유로 선원들을 정지시킨 후 과도한 업무량을 부과해서 일 말고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게 한다면 무정부상태의 도달까지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함장은 이것이 미친 짓이라는 생각을 그만 둘 수 없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는 함대 전체를 위해서 일부를 희생해야만 했다.


함장은 마침내 결단을 내린 후 무심한 얼굴로 오퍼레이터들을 호출했다.




정년은퇴를 앞둔 12번 전함의 정비팀에 소속 된 젠은 브릿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지 못한채 휴게실에서 동료들과 포커를 치고 있었다. 장기간의 항성간 항해는 항상 선원들에게 정신적 문제를 일으키곤 했기에 공간이 남는 함선이라면 심지어 군사용 함선도 선원들이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껏 즐길 수 있을만한 공간을 제공하곤 하였다. 젠이 포커를 치고있는 휴게실도 그런 계획의 일환으로 건설 된 공간이였다. 휴게실은 5명의 선원당 1개씩 주어졌는대, 각 휴게실은 홀로그램으로 모든 부분을 커스터마이제이션 할 수 있었기에 각자 취향에 맞는 모습으로 조정할 수 있었다. 젠과 동료들이 포커를 치고있는 휴게실의 컨셉은 해적행성의 술집이였다. 곳곳에 악취와 소음이 가득하지만, 그렇기에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공간. 젠은 럼주 한두잔 걸치면 항상 자신이 해적행성 Z-182에서 해적왕으로 통하곤 했다는 허풍을 치곤 했는대, 물론 동료중 단 한명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들도 그런 술자리 허풍들은 한두개씩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여하튼, 동료들과 포커를 치고 있던 젠은 자신의 패가 풀하우스임을 깨닫고 기뻐서 동료들 앞에 그것을 들고 흔들뻔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행동을 실천하기 전에 자제할 수 있었다. 그는 판돈을 힐끗 쳐다봤다. 판돈은 현재 총합 500 M크레딧(밀리 크레딧)였다. 젠은 한동안 술값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최대한 표정을 어둡게 했다.


"이거, 이거 패가 아까부터 왜이래! 니들 설마 짜고 치는 것은 아니겠지? 이거 원 술값좀 따려다 쌈짓돈까지 다 털리게 생겼구만! 나같이 인맥도 없고 좆도 없는 선원은 그냥 죽으라 이거야?"


젠은 자신의 연기에 스스로 만족하여 이정도면 모두를 속여넘겼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와 벌써 10년을 함께해온 동료들은 그가 항상 좋은 패만 쥐면 그렇게 큰소리 친다는 것을 알았기에 같잖아 보이기만 했다. 그들은 심지어 젠이 어떤 패를 쥐면 어떤 말을 하는가까지 외우고 있었다.


'풀하우스구만.'


동료중 한명은 한명은 이번판은 자신이 이겼음을 직감하였다. 그는 외쳤다.


"올인!"


동료들은 방금 올인을 외친 자가 왠만큼 패에 자신감이 없지 않으면 올인을 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패를 버리고 죽었다. 하지만 젠은 그것이 블러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젠은 콜을 외쳤다.


"콜!"


그리고 서로간에 패를 뒤집었다. 젠은 풀하우스를 보여주며 기세등등했지만, 동료의 스트레이트 플러쉬에 똥을 씹은듯 얼굴을 찌그러트렸다. 젠은 패를 바닥에 던졌다.


"젠장!"


동료는 재수없게 싱글거릴 뿐이였다.


"어허, 어허. 돈 한번 많네. 앞으로 항해가 끝날 때까지는 술값 걱정 안해도 되겠는대? 이거 동료를 생각해서 기부까지 해주는 마음에 어찌 감사해야할지 원. 너희들밖에 없다."


젠은 그것을 보며 술이나 사서 돌리라고 퉁명스럽게 내뱉을 참이였다. 하지만, 갑작스레 어마어마한 물리력이 휴게실을 강타하며 세계를 파괴하듯 뒤흔들었다. 젠은 마치 눈앞에서 핵폭탄이 터지는듯한 어마어마한 진동에 그대로 바닥에 나동굴렀다. 시야가 긴박하게 반전하고 뒤흔들리며 젠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뒤흔들었다.


혼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무엇에 직격당했는지 휴게실의 한쪽 구석이 거대하게 찢겨버렸기에 그곳으로 휴게실 내부의 공기가 어마어마한속도로 빨려들어갔기 때문이였다. 젠이 진공의 힘에 우주로 빨려나갈 것이 분명한 상황! 젠은 강판이 서로간에 갈려 만들어낸 검푸른 먼지가 사방에 자욱한 와중에도 손에 닿는 모든 것들을 붙잡아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려 했다. 다행히, 젠이 속도를 충분히 늦추었는지 곧 전함의 틈은 크림형 보완장갑으로 매꾸어졌고 젠은 그대로 허공 약 2미터에서 바닥으로 추락했다.


먼지가 공기와 함께 대부분 빨려나가서인지 휴게실 내부의 모습은 조금의 여과도 없이 젠에게 보여졌다. 전함 장갑의 파편으로 보이는 약 5미터 길이의 거대한 데브리가 휴게실의 천장부터 바닥까지 꽂혀있고, 그 주변에 누구의 것일지가 뻔한 핏물및 파편이 널려있는, 홀로그램은 전원통제가 시작된 것인지 치지직거리며 주점의 모습, 그리고 가구가 전혀 없는 검푸른 네모난 모습을 정신사납게 연달아 보여주는 방. 젠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선원의 감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데브리가 전함에 직격한 것이였다. 하지만 왜? 젠은 혼란스러웠다.


젠이 얼마나 공황에 빠져있는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으며, 정신사납게 지직거리던 홀로그램이 사라졌고 사방이 붉게 물들었다. 전함이 1급경보상태라는 뜻이였다. 전함은 적 함대에게 기습을 받을 때나 1급경보를 발령하곤 했는대, 현 상황이 그만큼 위급하다는 뜻이였다. 젠은 멍하게 있다가 또다른 데브리에 직격받았는지 전함이 크게 흔들리고 인공중력이 사라졌다 다시 돌아오자 생명에 심각한 위협을 느꼈다. 젠은 자신의 짓뭉개진 동료들을 돌아보지 않으며 재빨리 휴게실을 나가려 했다.


하지만 크리스탈 강판으로 만들어진 휴게실의 문도 근처에 거대한 데브리가 직격한 충격을 견디지는 못했는지, 찌그러져서 열릴 생각을 안하고 있었다. 안에 갇힌 것이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휴게실에 박힌 데브리가 전함이 흔들린 충격 때문인지 크림형 보완장갑에 기울어지며 심각한 하중을 가하기 시작했다. 크림형 보완장갑은 곧 그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찢겨질 것으로 보였다. 그것이 찢겨진다는 것은 젠이 휴게실의 산소와 함께 진공의 우주로 빨려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했다. 방금 전처럼 구사일생할 가능성 전혀 없이. 젠은 최대한 빨리 휴게실을 나가야만 했다.


젠은 휴게실의 문을 두들기며 고래고래 외쳤다.


"이봐!! 이 주변에 아무도 없어? 이 안에 살아있는 사람 있다고! 어서 내보내줘! 어서 내보내달라고!"


하지만 주변엔 아무도 없는지 문은 열릴 생각을 안했다. 젠은 다급함에 문에 주먹을 날리고 발로 차봤지만 인류 야금술의 결정인 크리스탈 강판이 그정도에 흠집이나 날리 만무했다. 젠은 아픈 손을 부여잡으며 주변에 쓸만한 도구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전류가 반쯤 나갔는지 치지직거리는 홀로그램 형성기가 보였다. 젠의 머릿속에 생각이 번뜩했다. 홀로그램 형성기로 레이저 칼날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였다.


젠은 벽에 부착된 홀로그램 형성기를 붙잡은 후 그것을 잡아뜯으려 하였다. 하지만 벽에 여간 튼튼하게 부착 된 것이 아닌지 홀로그램 형성기는 뜯겨나올 생각을 안했다. 젠은 다른 방법이 없기에 필사적으로 그것을 붙잡고 잡아뜯으려 했는대, 또다른 데브리가 전함에 직격했는지 전함이 크게 흔들리며 젠을 다른 쪽 벽에다가 강하게 처박았다. 그 충격이 제법 심했는지 크림형 보완장갑은 심하게 찌그러져 당장이라도 틈을 만들어낼 것 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젠은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며 방금 충격에 뜯겨져나온 홀로그램 형성기를 바라보았다. 


젠은 살면서 한번도 보인 적이 없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순식간에 홀로그램 형성기를 레이저 칼날 생성기로 변형시켰다. 당장이라도 우주로 빨려나갈 것 같다는 공포가 그의 머리를 장악해 모든 기억과 잠재력을 끌어와준 덕분이였다. 그는 홀로그램 형성기가 뜯겨진 벽에서 전선을 붙잡아 끌어온 후 그것에 연결해 전원을 공급했다. 다행히 전원공급이 레이져 칼날을 생성할 수 있을만큼은 됬는지 무채색으로 빛나는 송곳같은 칼날이 만들어졌다. 젠은 그것을 이용해 벽과 문의 연결부를 뜯어낸 후 문을 발로 차 밖으로 나왔다. 문이 부수어지고 젠이 통로로 몸을 날리자마자 크림형보완장갑이 문을 매꾸었다. 


젠은 레이저 칼날로 문을 뜯기 시작한 순간부터 전혀 숨을 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바닥에 누워 숨을 몰아쉬었다. 젠의 길다면 길 삶동안 이렇게 죽음에 가까운 적은 한번도 없었다. 복도에 누운 젠은 문득 자신이 이렇게 복도로 나와 안전해지기 전까지는 동료들의 생각을 조금도 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젠은 10년간 함께해온 동료들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젠은 보완장갑으로 매꾸어진 문 너머에서 우주밖으로 산소와 함께 날아져가는 동료들의 파편을 뜻모를 눈으로 바라봤다. 그간 그들과 가졌던 수많은 추억, 서로간의 동료애, 우정, 그런 것들이 동료들의 파편과 함께우주로 날아가 공허속으로 잠겨들었다. 젠은 짧게 그들을 위한 기도문을 외운 후 복도를 걸어갔다. 산 자는 죽은 자들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야지, 그것에 짓눌려선 안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