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14 09:35

부관의 생각은 반은 정확했고, 반은 부정확했다. 함장은 5일전 대규모의 데브리 필드가 고속으로 이동하던 함대의 전면부를 강타해 장갑에 깊은 손상을 남겼음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것을 명분으로 들어 함대를 정지시킨 후 그것의 수리를 명분으로 과도한 업무량을 부과해 그들이 불확실한 이야기에 귀기울일 수 없도록 하였다. 그 판단은 정확했기에, 함대는 자신들이 우주미아가 됬다는 사실은 눈꼽만큼도 알아채지 못한채 과도하게 늘어난 업무량에 툴툴거리기만 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부관의 생각또한 정확했다. 데브리 필드가 평생동안 나타나주진 못할 것이 아닌가. 게다가 모든 승무원들은 이 항해가 약 3달간 지속될 예정이며, 현재까지 1달이 흘렀음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2달 후에 항해가 끝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결국 함장이 어떤 짓을 해도 2달 후에 함대에 찾아올 혼란은 그 무엇으로도 피하거나 도망갈 수 없는 것이였다.


브릿지의 인원들은 곧 3개의 부류로 나뉘어졌다. 함장파, 부관파, 준장파. 함장파는 수십년간 그를 따라 온 전장을 누비었던 베테랑 장교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부관파는 부관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받아들인 신세대들, 준장파는 게리모드 준장처럼 군국주의적인 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처음에 각 3개의 파벌들은 그닥 조직력도 보이지 않았고, 다른 파벌과의 분쟁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도망칠 수 없는 곳에 갇혔다는 초조함이 그들을 좀먹어가자 주먹분쟁도 심심찮게 일어나게 되었고, 결국 각 파벌들은 화장실에 갈 때도 서로간에 모두 뭉쳐야만 갈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심심찮게 브릿지의 장교들이 얼굴에 멍을 달고 다니거나, 여럿 뭉쳐서 화장실 들어가는 모습을 본 승무원들은 브릿지에서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대부분은 업무에 바빠 그것을 신경쓰지 않았지만 함대가 정지한 것과 브릿지에서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이어붙인 일부는 혹시 함대가 단순히 수리를 위해서 정지한 것이 맞는지 의심을 품기 시작하였다. 그 의심은 과도한 업무량에 밀려 곧 사라졌지만, 그 업무량이 사라지면 지독한 독처럼 함대 곳곳으로 퍼져나갈 것이 분명했다.


함장과 부관과 준장은 함장이 브릿지로 전원을 불러모을 때가 아니면 서로간에 얼굴을 보지 않았다. 본다 하여도 각자의 추종자들을 사방에 휘장처럼 두른 상태에서만 그리 하였다. 함장은 그토록 심화된 세 파벌간의 갈등을 자신이 직접 골라 곳곳에 배치한 해병대를 동원해서 해결해야할지 저울질 하였다. 지금까지는 그렇게까지 악화된 것 같지는 않았지만, 함장은 해병대를 동원해 그들을 진압함으로 일어날 혼란보다 그들이 일으키는 혼란이 더 크다고 판단될 때는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던 그 명령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정지한 함대의 1주일이 흘렀다.



젠은 숙소에서 동료들이 서로 모여 수근거리는 것을 최근들어 자주 봤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확실히 자신부터 이 함대에 무엇인가 이상이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이 함대는 1주일간 정지하였고,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둔한 발로 했다 해도 수리가 이미 끝나고도 남을 시간이였다. 애초에 그렇게 정지할 필요도 없었고 항해를 계속하면 나노봇이 알아서 수리해줄 것이였는대, 그것으로 정지를 했다는 것부터가 곰곰히 생각하니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이였다.


게다가 그는 보급고에 위치한 동기가 만날 때마다 해주는 이야기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의 동기가 말하길 보급고의 크리스탈과 가스가 항상 어디론가 계속 배급되는대, 한번 추적해보니 그것이 도착한 곳은 함내위성공장과 부품공장이였다고 하였다. 위성과 부품제작? 왜? 함대가 정지한 것과 무슨 연관이 있었나? 젠은 그것의 대답을 알지 못했지만, 최소한 이 함대가 지금 잘못 되 도 더럽게 잘못됬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젠이 그렇게 생각을 하던 도중, 숙소에서 모여 쑥덕대던 승무원들중 하나가 젠을 알아챈 후 암울한 표정으로 그를 불렀다.


"젠. 와봐. 너도 봐야만 하는 것이야."


젠은 호기심에 찬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난 후 느릿느릿 걸어가며 물었다.


"뭐? 대체 뭔대 그래?"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 직접 봐봐."


젠은 호기심과 불안감이 동시에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들이 모여서 보고있던 무언가를 확인했다. 그것은 초소형 홀로스크린이였는대, 그것에는 한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젠은 그것을 처음으로 돌린 후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왜 그렇게 암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를 곧 암울하게 깨달았다.


그 영상에서 스닉 일병이 죽어가며 말했다.


"스, 스닉 일병 보고드립니다..."




함장또한 이 상황이 오래 유지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저 아주 잠시동안만이라도 혼란이 도달하는 것을 늦춘 것이였을뿐, 혼란 자체는 막지 못했다. 공포를 느끼는 군중은 빠르게 그 몸집을 불리곤 하였고, 그들이 몸집을 불린 후 할 것은 혼란의 창출이란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태양광 패널로 인한 전력 공급을 최근 시도해서 성공하였기에 전력의 자체공급은 가스와 크리스탈 없이도 가능할 것이란 보고가 있었다는 것이였다. 게다가 대규모의 수경농장이 성공했다는 보고또한 들어왔기에 모두가 굶어죽거나 어둠속에서 진화 혹은 퇴화해가는 일만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물론 군중이 그것을 약탈하고 파괴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기에 그리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함장은 문득 자신만이 남은 브릿지의 내부를 고독하게 바라보았다. 가로 42m, 세로 8m의 압도적의 스크린은 여전히 끝없는 공허만을 막막한 암흑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밝은 브릿지 내부와 대조적인 그 모습은 마치 함장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 너무도 지독히 무심하게.


그렇게 함장이 묵묵히 스크린을 바라보던 도중, 갑자기 그의 패널 구석에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무언가 숙소 혹은 은밀한 곳에서 여럿이 모여 집단을 이루는 모습이 감시카메라에서 발견되면 보내라고 명령했었는대, 그래서 해병들이 전송한 것으로 보였다. 함장은 그 영상을 클릭해 재생시킨 후 조용히 감상하였다. 그러다 영상속에 그들이 보는 한 영상이 매우 눈에 익다는 사실을 깨닫자 마자 그는 스프링 튕겨오르듯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문 밖에 대기하고 있던 해병들은 그가 나오자 경례를 하였고, 함장은 그들에게 안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을 애써 잠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승무원 주거시설 SX-12에 있는 모두를 잡아 내 앞에 대려오게!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