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14 01:48

브릿지의 인원들이 다시 모인 것은 그로부터 정확히 24시간 후였다. 그들은 그동안 쭉 숙소에서 현 상황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채 마치 무형의 인간들이 그 안에 그들을 가둬둔 것처럼 그곳을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랬기에 단 한번의 부름만으로도 그들 모두 브릿지에 모일 수 있었고, 함장은 그 사실을 기뻐해야하는지 아니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혼란을 느꼈다. 그나마 그들이 우주미아가 됬다는 사실이 승무원들 사이에 퍼져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니 그것만은 다행이리라.


부관은 함장의 퀭한 모습을 보자마자 그들이 브릿지를 나섰던 24시간 전부터 지금까지 그가 함장의 자리에서 잠도 자지 않고 계속 앉아있었단 사실을 깨닫고 눈썹을 꿈틀였다. 24시간동안 부관은 자신이 신봉하던 환상에서 벗어나 좀 더 현실적인 인간으로 변해있었지만, 그 환상이 사라지자 오히려 함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떠올랐다. 무조건 절대적이고 늠름한 그의 모습이 깨져버리자 그 안에 있던 인간적인 함장이 사실은 얼마나 고독했을지가 문득 이해됬기 때문이였다.


개리모드 중장은 그런 함장을 보더니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자신의 자리에 거칠게 앉았다. 그로서는 이런 곳에 와서 겁쟁이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불쾌했지만, 현재 이곳의 최고통솔자는 자신이 아닌 함장이였기에그의 부름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부름에 응답해야만 하는 현상황이 만족스럽다는 것은 아니였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지금 함장의 자리에 앉아서 함대를 지휘하고 싶었다. 그가 보기에 함장은 이런 대규모 함대를 지휘하기에는 너무 약했다.


그들 모두가 자리에 앉자 함장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애써 내면을 무심함으로 감춘 목소리였다.


"벌써 하루가 지났군. 이렇게 모두 자리에 앉아있으니 그런 일은 애초에 없었고 우리는 여전히 목표를 향해 항해하는 것 같다는 기분이 느껴지지만 말이야."


확실히 승무원들은 모두 자신이 여전히 이 배의 자랑스러운 일부로서 제국의 적을 무찌르기 위해 항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제의 일들은 너무도 비현실적이였기에 지나고 보니 꿈이 아닐까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였다. 게다가 함대는 여전히 기능을 정지하지 않은채 크리스탈과 가스의 막대한 에너지를 불태우며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비록 그 전진의 끝에 적행성이 있을지 아니면 영원한 공허가 있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함장은 조용히 브릿지의 전면 스크린에 거대하게 펼쳐진 끝없는 공허를 무심히 바라보는 승무원들을 내려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본인은 이런 재앙적인 사태를 맞이해 본 함대의 생존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였다.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았지만 계속 생각하다보니 어떤 조치들을 취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더군."


승무원들은 무심히 함장을 바라보았다. 홀로스크린과 함장. 이 둘에 의해서 이미 희망이 배신된 후이기에 세번째는 아닐 것이란 생각을 할 수 없었기에, 그 눈빛에 기대감은 없었다. 함장은 오히려 그런 눈빛이 기대감에 가득찬 눈빛보다 온몸을 더욱 더 무겁게 짓누른다는 사실을 느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지금 함대의 모든 인원에게 함장으로서 명령을 내리겠다. 우선 이곳의 인원 모두에게 현 사태에 대한 함구령을 내린다. 지금 이 순간부터 함대의 모든 부분은 실시간 감시될 것이며, 현 사태에 대한 정보를 승무원들에게 퍼트리려는 시도가 적발될 시 그자는 다음 날부터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런식으로 엄포를 놓지 않아도 모두 이 명령의 중요성을 잘 이해할테니 바보같이 말하고 다니진 않겠지만, 만약에 대비해서 내리는 명령이다."


그리고 함장은 느리게 침을 삼켰다. 함장은 어느새 너무 끈끈해진 침을 힘겹게 넘기며 자신이 하룻동안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주란 공간은 너무도 넓고 한결같았기에, 그것을 바라보다보면 시간감각을 잃기 일쑤였다. 함장은 몰려오는 피로를 고개를 흔들어 떨쳐낸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었다.


"그리고 강습항모의 제2해병전단중 본인이 직접 선발할 1만명은 앞으로 모든 함대에 헌병대와 함께 주둔하며 함내 치안을 관리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온 함대는 지금부터 내부시설들을 운용할 정도의 전력생산만을 남긴채 완전히 정지할 것이며 모든 잉여 자원은 탐사정과 감시 위성을 만들어 외부로 보내는대 사용될 것이다. 이의는 받지 않는다."


부관은 손을 든 후 함장을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함장이 자신이 한 말처럼 이의는 받지 않을 생각인지 자신을 무시하자 그냥 일어선후 느리게 박수를 쳐서 이목을 자신에게 모았다.


"함장님. 함대가 정지하게 되면 승무원중 일부가 자신들이 우주미아가 된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수십년을 승무원으로 살아온 자들이고, 함선 내부란 밀폐된 곳에서 쉽게 퍼지는 이야기란 놈중에는 우주미아가 되서 지금까지 공허를 떠도는 유령선들에 대한 괴담도 포함 되어 있으니까요. 의심은 독처럼 빠르게 퍼질 것이며, 이것을 막기란 주먹으로 행성파괴함을 막는 것과 다를바가 없을 것입니다. 제 의견은 함선에 조금의 변화도 주지 않은 채 계속 지금까지 이동하던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이 방향에 조금의 오차도 없어서 이대로 쭉 이동만 하면 적 행성에 도달할지 누가 알겠습니까? 안하는 것보다는 낫지요. 적 대규모 함대가 본부를 점령하였고, 저희 함대가 우주미아가 되서 전력외가 됬다면 저희 제국은 그 본부를 되찾을 방법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탐사정과 감시 위성을 제작해서 흩뿌려도 오로지 적의 감시에만 잡힐 것이란 뜻이니 그냥 시간낭비하자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함장은 부관이 단순히 자신에게 태클을 걸고 싶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주장이 실제로 틀리다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피곤함에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기에 겨우겨우 무심한 표정을 유지하며 이 말을 할 뿐이였다.


"본인은 이의를 받지 않을 것이라 말했네, 부관."


마지막 부관에 악센트를 줘서 서로간의 위치차를 상기시키는 함장의 말에 부관은 무심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함장은 그 사건이 일어난 후 브릿지의 인원들이 표정을 잃어서 매우 불편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 시작하도록."




젠은 13살에 보이로 순양함에 처음 들어간 후 지금까지 30여년간 승무원으로 일해왔던 베테랑이였다. 그는 그간 수많은 궃은 일을 해왔고, 수많은 전투를 겪었다. 한번은 갑작스러운 수송선의 박치기에 이동중이던 통로의 장갑이 찢겨져서 무중력 속으로 던져졌다 40초동안 그것을 맨몸으로 경험한 후 구출된 적도 있었다. 그는 그때 처음으로 무중력 속에서도 짧은 시간이지만 사람이 살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함선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겪었던 젠. 그도 그의 기나긴 커리어동안 경험하지 않은 것이 딱 하나 있었으니 바로 우주미아. 그것은 오로지 수많은 이야기로만 들어봤을 뿐, 단 한번도 직접 보거나 경험해보지 못했다. 하긴, 그랬다면 그가 지금 이곳에서 이렇게 있을 수도 없었으리라. 우주미아중 돌아온 자는 단 한명도 없었으니까.


젠은 갑자기 함선이 정지한 것을 느끼며 이런 사실들을 떠올렸다. 그는 모든 늙은 선원들처럼 함선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닥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득보다는 해로 이어질 때가 더 많았기 때문이였다. 게다가 함선의 갑작스런 정지같은 한번도 겪어본적 없는 사태는 더더욱 그러하였다. 젠은 문득 그리 생각하다 과거 자신이 여전히 보이일 때 친하게 지냈던 선원으로부터 들은 한 이야기의 전말을 떠올렸다. 우주미아가 된 함선에 관한 이야기였던 그것은 함장이 함선을 정지한 후 주변에 탐사정과 감시 위성들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됬었다.


'설마. 아니겠지.'


하지만 우주미아라니.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한 늙은 승무원이라 하여도 그것은 너무 심한 비약이였다. 아마 기함의 외부장갑에 무엇인가 문제가 생겨 수리를 위해 정지한 것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을 뒤로한채 다시 일과를 수행하기 위해 이동하는 젠의 머릿속에는 장갑은 나노봇들이 자가수리할 수 있다는 기초적인 승무원지식이 스밀스밀 떠오르다 사라졌다. 그런 쓸모없는 생각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기에는 며칠전부터 갑작스레 증가한 업무량이 따라가기에도 너무 바빴기 때문이였다.




부관은 자신의 숙소에 위치한 장교용 침대에 팔베개를 한 채 누워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도 어째서 그 순간 그런 이의를 제기한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고개 끄덕이는 기계로 태어난마냥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고 있었는대, 갑자기 안에서 자기 자신부터 놀랄정도로 갑작스럽고 거대한 불이 끓어올랐기에 그랬던 것일 뿐이였다. 그 불은 말을 끝내자마자 나타났을 때처럼 갑작스럽게 사라졌기에 그의 이의는 그것으로 끝났었다.


천장은 비상시 외부로부터 격리 되 최소 1달은 구조를 기다릴 수 있도록 설계된 흔적인 크리스탈 합금 강판들로 푸르고 검게 빛나고 있었다. 부관은 그런 그것을 바라보며 문득 자신의 불이 저 천장처럼 검고 푸르렀음을 깨달았다. 그런 분노를 느낀 것은 지금까지 살았던 짧은 생 동안 한번도 없었기에 그는 지금까지 그 분노가 어떤 느낌으로 어떤 대상을 향한 것이였는지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제 그는 그 대상이 누구인지 알았다. 그는 함장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그 분노가 배신감인지, 나약함에 대한 분노인지, 아니면 그저 아기같은 환상이 남긴 잔재인지 그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알고싶어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알지 못하는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다. 부관은 자신또한 24시간동안 잠을 자지도, 밥을 먹지도, 물을 마시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자 마자 그대로 눈을 스르르 감았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 현 상황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