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01 00:26

셔틀이 얼마나 상승기류를 통해 이동을 하였을까. 멀리 어둠에 의해 장악 된 영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약 50여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동안 조금씩 어두워진 후 완벽한 어둠속에 진입한다고 메일은 말해주었는대 높이와 거리 때문인지 셔틀에서는 빛의 영역과 어둠의 영역이 마치 선으로 딱딱 그어 나눈 것 처럼 보였다. 사실 그것이 틀린 생각은 아니였다. 행성 전체의 규모를 감안하면 50킬로미터는 가느다란 볼펜으로 그어놓은 선과 다름이 없었으니.


행성의 어두운 면에 진입하자 상승기류를 따라가던 셔틀은 상승기류가 하강기류로 바뀜에 따라 역시 빠른 속도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겨우 50여킬로미터만 지났을 뿐인대도 불구하고 온도가 섭씨 800도에서 영하 50도로 하락했기 때문이였다. 놀라워하는 선원들에게 메일은 50여킬로미터를 더 이동할 시 영하 50도가 영하 150도로 하락할 것이라 말해주었고 그 어마어마한 온도차에 선원들은 질린듯한 표정을 짓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들도 이런 종류의 행성은 처음이였다.


셔틀이 3백여 킬로미터를 더 이동한 후 갑자기 제자리에서 급속도로 하강을 하기 시작했다. 주변에는 셔틀이 내뿜는 미미한 빛과 그것에 옅게 비춰진 검붉은 구름만이 가득했는대 그런 어둠속으로 빠르게 셔틀이 침잠해가자 선원들은 매우 놀랐다. 낮게 그르릉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셔틀이 착지했을 때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어 벙 뜬 표정을 짓었다. 메일과 구출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그들이 기지에 도착했음을 깨달았을 정도였다. 지하에 숨겨진 기지. 최소한 행성수비함대가 위치할만한 곳은 전혀 아니였다.


선원들은 환대속에서 기지에 진입할 수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농협 제국원들은 선원들을 반겼고, 군인의 아내로 보이는 몇몇 여성은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한명은 머독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며 이렇게 말해주기까지 했다.


"아, 용감한 선원이시여! 얼마나 저 춥고 공허한 우주에서 고통스러우셨습니까!"


물론 선원들이 우주에서 어마어마한 고통을 받은 것은 맞았다. 평생동안 그들의 꿈속에서 나타나 식은땀을 흘리게 해줄 것이 분명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우주가 험한 곳이던게 하루 이틀 일이던가? 우주에서 자신의 한계까지 몰려봤던 선원들이 그렇게나 드물었나? 선원들은 몇개월만에 받은 문명으로부터의 환대에 감격한듯 별로 신경쓰고 있지 않은 것 같았지만 머독은 왠지 모를 찜찜함을 느꼈다.


머독이 찜찜해하던 말던, 선원들이 착륙한 후 일은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모두는 우선 식당으로 가서 가장 맛있는 음식들을 시켜 가장 맛좋은 음료와 배터지게 먹었고, 그 후에는 그들이 배급받은 주거용 지구에 짐을 풀은 다음 기지에 흩어져 이곳저곳 뒤져보기 시작했다. 테키는 응급실로 후송 되 실력좋은 의사로부터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모든 일이 잘 해결되고 있는 것 같았다. 머독은 홀로 숙소에 남아 버진메리에서 가져 온 백포도주를 마셨다. 제인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침냄새가 제법 심했다.


그렇게 머독이 얼마나 술을 마시고 있었을까, 숙소의 문이 열렸다. 머독이 힐끗 보니 메일이였다. 메일은 긴 다리로 짐들 사이를 조심스레 가로질러 오더니 머독의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메일이 말했다.


"기지는 맘에 드십니까?"


머독은 혼란스럽다는듯 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어 맘편히 쉴 수가 없습니다. 지난 몇개월동안 인세의 지옥에서 살다 와서인지 무언가 의문이 들면 그것이 해결되기 까지는 쉴 수가 없는 귀찮은 버릇이 생겨버렸습니다."


메일은 조용히 웃더니 갑작스레 담배갑을 꺼냈다. 메일은 그 안에서 담배를 한대 꺼내 들더니 한대 더 꺼내 머독에게 권했다. 머독은 그 담배에 수상한 점은 없는지 살펴봤다. 고풍스럽게 'Igu Duhagi' 라는 뜻모를 단어가 적혀있는 라벨은 공장에서 붙인 것으로 보였고, 필터는 깔끔, 담뱃잎은 잘 갈려있었다. 머독은 메일의 조용한 웃음을 힐끗 본 후 담배를 받아 공중에 대고 휙휙 휘둘렀다. 그러자 발화장치가 작동 되 불을 붙였다. 그렇게 메일과 머독은 아무 말 없이 함께 담배를 폈다.


메일은 한대를 다 피우자 그것을 쓰레기곽에 넣고 조용히 말했다.


"많은 것이 궁금하신가 보군요. 어째서 저희가 여러분을 이렇게 환대하는지, 그리고 왜 저희가 마치 숨어있는 것처럼 보이는지."


머독은 단도직입적으로 답했다.


"예. 구해준 사람한테 보따리 내놓으로 소리지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아시겠지만 이런 식으로 지하에 숨어있으면 함대가 출격하기 매우 불편하기에 대부분 지상에 드러나있곤 합니다. 행성보호함대가 주둔중일 곳이 전혀 아니지요. 그뿐만 아니라 버진 메리가 표류중이던 구역은 아군, 아니 DC제국에 의해 이미 소탕당한 곳이였습니다. 몇개월동안 전황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해도 전선과 이곳은 매우 많이 떨어져있으니 이곳까지 농협군이 왔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알고 싶습니다."


메일은 말없이 한대 더 꺼내 불 붙여 입에 꼬나물었고, 머독이 다 피운 것을 보자 한대 더 권했다. 머독은 담배를 거절했다. 메일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한번 연기를 폐 가득 들이마쉰 후 말했다.


"해를 끼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이 대답만으로 끝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럴리가 없겠지요."


머독은 답했다.


"만약 해를 끼치실 의도가 전혀 없다면 당장 이 자리에서 저의 질문을 답해주십시요. 해를 끼칠 의도가 전혀 없다면 무엇을 숨기시겠습니까."


메일은 그 말에 조용히 웃더니 담배연기를 다시 몰아쉬었다. 그 후 연기를 내뱉어 환기구로 빨려들어가는 그 연기를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휘적이더니 연기가 사라지자 답했다.


"서로간에 불화와 불신만을 야기시킬 것이라 생각해 말해드리지 않았었는대, 아무래도 그것이 오히려 불화와 불신을 야기시킨 것 같군요. 그렇게 궁급하시다면 답해드리겠습니다."


메일은 머독의 백포도주를 한잔 마신 후 맛이 이상한지 눈쌀을 찡그리며 답했다.


"저희 식민지는 10년 전만 해도 제법 부유한 곳이였습니다. 항성의 횡포를 피해 지하 도시들이 곳곳에 박혀있고, 마치 거미줄같이 자글자글하게 뻗어나간 지하교통망으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그런 곳이였죠. 모두 근면하게 일해 돌을 파내고 가스를 캐낸 선조들이 이루신 업적들이였습니다."


머독은 조용히 들었다.


"하, 10년. 벌써 그 꿈만 같던 시절이 끝난지 10년이나 됬군요. 당장이라도 눈을 감았다 뜨면 언제 사라졌냐는듯 다시 제 눈 앞에 나타날 것만 같습니다. 그 근면한 사람들, 그 순박한 사람들, 그 행복한 사람들, 모두가 언제 죽었냐는듯 바삐 일하는 세상이 말이에요."


메일은 백포도주를 한모금 더 마신 후 말을 이었다.


"전쟁이 터졌습니다. 외부 나선팔의 황무지 속에서 자란 강력한 군주들이 모여 부유한 중앙의 행성들을 향해 진군을 해왔지요. 저희 행성과 수백년간 교역해온 수많은 행성들이 그들의 손에 떨어져 학살되고 파괴됬습니다. 지도자들은 그들을 막고자 했지요. 모든 행성들로부터 항성간 항해가 가능하고 조악하게나마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모든 함선들이 징발되와 대규모 함대를 이루었습니다. 농협 제국에게 언제나 승리를 가져다 준 불멸의 명장 주난이 함장직을 맡은 함대였지요. 모든 지도자들은 남부의 야만인들이 마침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머독은 전쟁얘기와 행성의 비밀이 무슨 연관을 가졌나 알 수 없었지만 그냥 듣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명장 주난도 저희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수는 없었습니다. 함대가 떠난 후 몇개월만에 관제탑은 함락되고 함대는 우주미아가 됬으며 모든 행성들은 무방비 상태로 텅텅 비어버렸습니다. 남부의 굶주린 군주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행성들이 함락 되 갔고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다. 우주선 연료가 부족 해 자식을 거리낌없이 엔진에 밀어넣고, 수상스러운 아버지를 아들이 주저없이 죽이는 인세의 지옥이 시작됬지요. 전쟁의 마수는 결국 저희 행성에까지 도달하게 됬습니다.


10대의 행성파괴함. 그들은 행성 방어시설들의 사거리가 닿지 않는 궤도의 밖에서 죽음의 빛으로 공격해왔습니다. 적의 위성에 의해 행성은 실시간으로 감시 되고 있었기에 지하 가장 깊숙한 곳에 숨은 건물도 행성파괴함으로부터 피할 수는 없었죠."


머독은 오면서 봤던 수많은 크레이터들이 그제서야 이해가기 시작했다. 운석이 떨어져 생긴 것으로 보기에는 숫자가 너무 많았는대 그런 사연이 있던 것이였다. 또한 머독은 어째서 메일이 이 사실을 숨겨왔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머독이 이 사실을 듣고 메일이 그들을 구출한 이유가 보복을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으리라.


"저는 숨어야만 했습니다."


메일의 말에 생각속에 잠겨있던 머독은 깨어났다.


"누군가는 살아야만 했죠. 살아남아 행성을 다시 부흥시키고 잿더미 위에서 영광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했기에 정찰위성의 레이다로부터 피할 수 있을만한 깊이까지 파서 만들 수 있는 공간은 재건을 위한 시설을 제외한다면 단 한명만을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생물학자로 어느정도 인정받고 있던 제가 바로 그 한명이였습니다. 사회재건을 위해 특수선정한 1천명의 유전자만을 가지고 모두의 죽음을 이용해 홀로 살아남았지요. 어깨에는 죽은 사회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르네상스. 옛언어로 부활이라는 뜻을 가진 그 단어가 행성의 이름이 된 것도 그때부터였습니다."


머독은 말없이 백포도주를 메일에게 권했다. 메일은 역시 말 없이 백포도주를 받고 입안에 쏟아넣었다. 씁쓸한 과거는 그렇게 잊는 것이니까. 머독은 전쟁이라는 장밋빛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붉은 피를 흘렸을지 문득 의문이 들었다. 메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그럼 궁금증은 모두 풀리셨습니까?"


머독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어째서 저희를 받아들여주셨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남아있습니다. 저희를 증오하셔야 할 것 같은대 어째서 받아들여주신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메일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깃발은 깃발이고 사람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메일은 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