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15 11:05

행성에서 보내져 온 짧은 통신을 본 버진 메리의 선원들은 자신들이 피로 점철 된 수년간의 조난에서 겨우 겨우 구출 된 것이라 믿고 있었다. 모두들 살아났다는 사실에 기뻐 어쩔 줄을 몰라했고 테키를 간호하다 그 소식을 들은 던또한 역시 기뻐했다. 일단 구출을 응답하긴 했는대 정말 구출 되긴 하는 것인가 반신반의하던 머독도 반중력자장에 의해 추락하던 버진 메리가 정지하자 그들이 문명에 드디어 도착했다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반중력자장은 영향을 주고 싶은 물체를 그 물체가 위치한 고도에서부터 행성의 중력이 미치지 않는 고도까지 이동시킬 수 있는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소모되야 하기에 대규모 에너지 보급시설을 갖춘 잘 짜인 조직이 아니라면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그들의 믿음은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반중력자장에 의해 정지한 버진 메리에 구출용 셔틀이 도킹을 한 후 구출팀이 함선에 진입하자 선원들의 기대중 무엇이 틀렸었는지 나타났다. V자가 윗쪽에 반쯤 겹쳐진 붉은 원. 구출팀은 모두 농협 제국의 마크를 자랑스럽게 달고 있었다. 버진 메리는 적군에 의해서 구출 된 것이였다. 버진 메리의 선원들은 구출팀의 마크를 보고 놀라 가우스 라이플을 꺼내들었고, 구출팀은 선원들의 DC(Domination and Conquer)마크를 보고 역시 놀라 레이저 피스톨을 꺼내들었다. 가우스 라이플로 구출팀을 조준하는 선원들은 발포를 하지 않음과 동시에 돌발상황이 일어나면 곧장 발포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면서도 약 먹은듯 돌아가는 상황에 미칠 것만 같았다. 차갑고 무자비한 현실은 그들에게 도저히 쉴 시간을 주지 않았다.


대치상태가 계속 됬다. 구출팀은 그들이 적군 함선을 구출하는줄은 몰랐기에 교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무장이 빈약해서 선제공격을 하지 못했고, 선원들은 구출팀을 무찌른다 해도 이 행성에 주둔중인 농협 함대까지 무찌를 수는 없었기에 선제공격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서로에게 대화를 시도하지도 못하고 있었는대 왜냐하면 대화의 시도가 긴장한 적을 자극해서 발포를 유도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였다.


그렇게 대치가 얼마나 계속 됬을까. 바닥에 놓여진 들것에 실려있는 테키가 고통에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테키의 환부는 일단 응급처치로 소독이 되기는 했지만 소독약만으로 그런 심각한 화상을 제대로 항생할 수 있을리 만무했고, 그의 환부는 벌써부터 반쯤 썩어가고 있었다. 생명유지장치가 정지 된 후부터는 헬멧을 써야했기에 고름에 번들거리는 거즈를 갈아주지 못했다는 것도 한몫 했다. 구출팀은 그것을 보자 자신들이 부상자를 앞에두고 무슨 헛짓거리를 하고있나 회의감이 들었다. 그들은 히포크라테스 앞에서 생명을 살리겠다 선서를 한 사람들이였다. 높으신 분들이 뭐라 생각하던 일단 인명은 살리고 봐야한지 않는가. 머독도 구출팀과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테키의 부상은 선의가 내부 분쟁으로 죽은 이상 버진 메리 자체에서 해결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였다. 임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선장으로서 머독은 선원의 안위를 보살펴야만 했다. 깃발과 이념의 분쟁은 그 다음 이야기였다. 머독은 일단 부상자는 치료해줄 수 없냐고 말해야겠다는 생각에 입을 달싹였다. 하지만 구출팀이 먼저 레이저 라이플을 내리고 선원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일단 부상자는 어떻게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구출팀이 선원들에게 다가가자 너무 긴장해있던 선원들은 순간 방아쇠를 당길 뻔 했지만 머독이 재빠르게 외쳐 제지했다.


"모두 총구를 내려! 일단 테키의 부상은 해결해야 하니 저들을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원들은 곧바로 총구를 내리지 않았다. 단순한 긴장혹은 정신교육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전쟁동안 보고 겪은 수많은 일들에 의해 생긴 농협 제국에의 증오가 마음 속 깊은 곳에 있었기 때문이리라. 구출팀은 선원들이 총구를 내리지 않자 주춤거리며 멈춰섰다. 머독은 자신이 선장이 아니라면 선원들과 동일하게 행동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테키의 부상을 한시라도 빨리 손봐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분쟁은 피해야만 했다. 머독은 다시 외쳤다.


"어서 총구를 내려!"


조를은 머독의 말에 반발하듯 총구를 오히려 더 들이밀며 독하게 외쳤다.


"머독, 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에요! 저놈들은 빨갱이 제국놈들이라고요! 저들에 의해서 얼마나 많은 전우들이 죽었는지 아시잖아요! 얼마나 많은 행성이 학살당했는지도! 저놈들은 모두 팔다리를 자르고 내장을 꺼내 가죽은 해적행성에 선물로 보내야 하는 더러운 빨갱이들이에요!"


구출팀은 성자가 아니였다. 그들은 조를의 말에 분개해 레이저 라이플을 다시 꺼내들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대표자로 보이는 차분한 검은 눈의 청년이 그들을 제지했다. 구출팀은 그의 제지에 어쩔 수 없다는듯 레이저 라이플을 다시 집어넣었고 청년은 긴장감, 공포, 적개심, 증오, 온갖 극단적인 감정들이 뒤섞인 선원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쳤다. 선원들은 차분한 청년의 눈동자에 마치 자신의 모든 감정들이 빨려들어간다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청년의 눈동자는 눈을 마주치는 것 만으로도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어줬다. 선원들은 그렇게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오히려 용납할 수 없었기에 불가해한 분노로 총구를 더 들이밀었다. 청년은 그런 선원들을 차분하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DC제국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본 행성 주둔군의 함장이자 통령인 메일이라 합니다."


구출팀은 메일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자 매우 놀랐다. 물론 그들은 메일이 함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놀란 부분은 메일이 적대적인 선원들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는 점이였다. 선원들이 메일을 포로로 잡고 주둔군을 위협할 수도 있지 않은가? 선원들 역시 매우 의아해했다. 그들의 의아함을 뒤로하고 메일은 말을 이었다.


"이런 서로간에 얼굴만 붉힐 일로 만나게 됬지만, 그래도 쓸모없는 분쟁은 피할 수 있으면 좋겠군요. 저희는 패잔병과 부상병을 국제법에 따라 명예적 전쟁포로로 취급할 용의가 있습니다. 저희는 소규모이지만 사회를 구축하고 있으며, 깨끗한 물과 영양가있는 음식을 제공할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저희의 오락시설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실 수도 있고, 역시 원하신다면 이곳에서 발생한 불상사를 잊고 여러분의 신분을 감추어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구출팀 여러분?"


구출팀은 굳은 얼굴로 메일을 바라봤다. 사실 그들도 DC제국에게 쌓인 감정은 매우 많았다. 구출팀중 한명은 내부로 칩투한 DC제국의 첩자에 의해 생명유지장치가 부서지고 선원 모두가 사망한 전함의 선의로 복무했던 적이 있었고, 나머지도 비슷한 경험을 한두번 가지고 있었다. 전쟁이라는 것은 서로를 필사적으로 물어뜯고, 그 상처에 분노해 더 큰 상처를 입고 입히는 악순환의 반복이니까. 그렇지만 구출팀은 메일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구출팀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하는 것을 확인한 메일은 고개를 돌려 선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여러분이 저희를 믿으실 수 없다는 것은 저도 압니다. 아마 이런 생각이 드시겠죠. '만약 저놈들을 따라갔다가 총맞아 죽으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드시지 않으신다면 대신 이런 생각이 드시겠죠. '저런 놈들은 그냥 당장 쏴죽여야해!'. 저희로서는 저희가 여러분에게 호의적이며 안전과 안락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믿어달라는 말뿐이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저희를 신뢰해달라는 것이 무리한 부탁인 것은 아닙니다. 결국 모든 인간관계는 신뢰로서 시작하는 것이고, 인간관계는 흔하니 역시 신뢰또한 흔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흔한 신뢰를 저희와도 나눈다는 것이 너무한 부탁인 것은 아니지 않지 않습니까? 적대심이 눈을 가리신다면 부상자를 한번 봐주십시요. 헬멧 속에 놓인 거즈가 얼마나 고름에 번들거리고 있으며 그 거즈 아래에 얼마나 심한 부상이 있을지, 그 부상으로 부상자는 얼마나 고통스러워하고 있을지 한번만 생각해보십시요. 저분은 저희가 아니면 당장이라도 사망하실 수 있습니다. 저희는 그저 저분의 부상을 치료해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그것을 정말 모르시겠습니까?"


메일의 말은 차갑고, 이성적이며, 빈틈을 신랄하게 파고들면서 동시에 감성에 호소하고 있었다. 메일이 정체를 밝혀 당혹감에 선원들의 마음이 흐트러지자 메일은 그 틈을 파고들어 안락이라는 당근과 부상자라는 채찍을 시기 적절하게 휘둘렀고 선원들의 경계심이 서서히 사라지자 선원들의 감성에 호소해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혼란을 부여했다. 머독은 메일의 놀라운 언변에 놀랐다. 메일은 놀란 눈빛의 머독을 조용히 바라봤다. 선원들의 반발심을 거의 다 해결했으니 그들을 지휘해달라는 뜻이였다. 머독은 메일의 뜻을 따랐다.


"저 메일이라는 분의 말이 옳다. 모두 총구를 내리도록."


선원들은 서로를 바라본 후 하는 수 없다는듯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총구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