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14 06:50

서울은 언제나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로봇들에 의해 아직도 작동하는 곤돌라를 탄 이스마엘은 그 모두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상공 820m에서 탄소나노튜브 케이블에 의존해 내려다보이는 도시는 이스마엘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아마 그것에 얽혀있는 추억들 때문이리라. 저곳에 우뚝 솟아있는 208층 높이의 서울 그랜드 호텔, 저곳에서 이스마엘은 그의 첫 스폰서를 만났었다. 그곳에서 그는 타인이 그를 믿어준다는 사실이 얼마나 마음을 아리게 하는지를 처음 깨달았고 그곳에서 그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이했다. 저곳 건물들에 가려져 아릿하게만 보이는 대학로, 저곳에서 이스마엘은 그의 아내를 처음으로 만났었다. 목성으로의 6개월간의 항해로부터 돌아온 그는 무엇인가 문화활동을 하고 싶었고, 그는 그 문화활동으로 연극을 택했었다. 그때 그가 보았던 연극이 캣츠였나, 이스마엘은 기억을 더듬거렸다. 그래, 캣츠였다. 고양이들의 사회를 다룬 연극. 그의 아내는 이름이 기억안나는 암코양이 역활을 맡았었다. 야성적이였고 생동적이였으며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 3시간의 연극동안 이스마엘은 그의 아내만을 눈이 뚫어져라 바라보았고 나머지 연극 내용은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이스마엘은 그 후 그녀의 이름을 알아보고자 팜플렛을 뒤졌고 대화라도 나눠보기 위해 제작진들에게 애걸복걸했다. 이스마엘의 친구들은 프로그램이 계산 해주는 '성격및 교육수준과 재산상황으로 파악하는 최적의 아내'를 찾으라고 조언했지만, 이스마엘은 들은채도 하지 않았다. 이스마엘에게는 한채윤이라는 여배우가 아닌 그 어떤 여자도 여자가 아니였다. 프로그램은 가서 엿이나 처먹으라지, 이스마엘은 생각했다.


이스마엘은 순결한 백빛으로 빛나는 서울을 계속 내려다보았다. 그는 한채윤과 처음으로 함께 걸었던 거리, 처음으로 함께 영화를 보았던 영화관, 처음으로 함께 연극을 보았던 연극관, 처음으로 함께 밥을 먹었던 식당, 처음으로 선물을 사주었던 가게, 그 외 다양한 추억거리들을 계속 손으로 짚어가며 찾았다. 이스마엘과 한채윤이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었던 호텔은 아이러니하게도 서울 그랜드 호텔이였다. 이스마엘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곳에서, 이스마엘은 인생의 피크를 맞이했었다. 아, 추억으로 가득찬 서울! 너무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제 서울은 죽은 도시였다. 그 안에 가득찬 추억은 오로지 보는 자의 마음을 천천히 찢어놓기만 하는 죽어버린 추억이였다. 서울 지하와 상공까지 통틀어본다 해도 서울 안에 살아있는 인간은 이스마엘이 유일했다. 단순히 서울뿐만 아니라 온 지구를 통틀어본다 해도 살아있는 인간은 이스마엘이 유일했다. 대체 무엇이 인류를 멸망시킨 것일까, 이스마엘은 생각했다. 그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1년 2개월 전, 그는 유일한 장거리 우주항해사로 그를 도와주는 로봇들과 함께 해왕성으로의 1년 2개월짜리 항해를 떠났었다. 그와 지구 사이에 놓여진 무지막지한 거리는 통신을 매우 힘들게 만들었고, 본부로부터의 주기적인 통신과 주기적인 보고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통신도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항해 후 6월 21일에 그 실낱같은 통신을 가능하게 해주던 통신장치가 망가졌고, 로봇이 그것을 수리했지만 다시 한번 망가졌다. 그 후에는 남은 부품이 없었기에 이스마엘은 통신을 중단했다. 사실, 통신이 없다 해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이미 이스마엘은 그의 임무를완벽하게 브리핑 받은 후였고, 통신의 부재는 그저 해왕성에서 할 보고를 돌아가서 하게 된다는 사소한 차이점만을 야기시킬 뿐이였다. 중간에 많은 변칙상황이 생기는 임무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가 받은 임무는 그저 해왕성으로부터의 표본 채취일 뿐이였다. 설마 해왕성에 잠들어 있는 고대의 외계인과 접촉하기라도 하겠는가?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낸 후 지구로 귀환한 이스마엘은 오랫동안 해온대로 그의 함선을 궤도상에 정박했고, 소규모의 셔틀에 타 지상에 착륙했다. 셔틀에 타 지구로 돌아가던 이스마엘은 1년 2개월만에 한채윤을 만날 것이란 생각에 아직도 신혼부부인마냥 두근거렸다. 하지만 지구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스마엘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스마엘은 오토바이를 타고 텅 빈 도로를 달리며 온 서울을 질주했다. 목구멍이 터져나가라 누구 없냐고 외치며, 너무도 간절하게 외치며. 하지만 아무도 그의 울부짖음에 응답해주지 않았다. 이스마엘은 그대로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가정부 로봇만이 텅 빈 집을 청소하며 남아있을 뿐이였다. 이스마엘은 텅 빈 신문사로 달려가 신문들을 뒤적였고, 텅 빈 방송사로 달려가 1년 2개월간 있었던 모든 방송들을 탐색했다. 하지만 모든 신문과 방송은 그가 항해를 떠난지 6개월하고 21일을 마지막으로 완벽하게 사라져 있었다. 마치 그 후에 갑자기 세계가 정지라도 한 것처럼. 물론 남아있는 그 어떤 신문과 방송도 왜 사람들이 사라졌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장난인 것일까, 이스마엘은 생각했다. 1년 2개월만에 돌아온 외로운 이스마엘을 놀래켜주기 위해 모두 어딘가에 숨어서 기다리는 것일까? 물론 그럴 가능성은 전무했다. 하지만 지구상에 홀로 남았다는 좌절감에 미친 이스마엘은 분명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인간으로서 모든 로봇들의 통제권을 위임받은 이스마엘은 군사로봇들을 이용해 온 지구를 뒤엎어 놓았다. 미사일들, 무인전투기들, 무인탱크들, 무인박격포들, 무인망할무기들, 모든 것들이 지구의 수많은 문명들을 산산조각냈다. 이스마엘은 광기에 차 외쳤다.


"숨은 사람들아, 어서 나와! 어서 나오라고! 제발 나와줘! 제발! 제발! 제발! 제발! 내가 지구를 산산조각내기 전에 제발 어서 나와줘!"


하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이스마엘은 잔인한 사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지구상에 인류는 단 한명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 오로지 이스마엘 그만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인간이라는 사실. 1년 2개월간 홀로 우주를 항해할때도 느껴보지 못한 그 아린 고독감에 이스마엘은 울부짖었다. 아니, '홀로' 울부짖었다.


이스마엘은 곤돌라를 조종해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는 이제 지구를 떠날 생각이였다. 그의 오랜 우주선에 올라타 연료가 허락하는 곳까지 무작정 달린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였다. 연료가 바닥나면 이스마엘은 생명유지장치를 정지한 후 수면제를 먹을 것이였고, 조용히 꿈을 꾸며 죽음을 만끽할 것이였다. 마지막 항해였다. 인류의 마지막 항해, 이스마엘의 마지막 항해. 이스마엘은 셔틀에 올라타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의 사랑, 안녕히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