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20 17:51

참고로 젠의 성은 리입니다. 리젠 ㅇㅇ.




젠은 정신을 잃던 때처럼 갑작스럽게 깨어났다. 팔에는 왠 링거가 줄줄이 달려있었고, 텅 빈 속은 내장이 모두 피로 녹아버린 것처럼 쓰라리고 또 쓰라렸다. 젠은 뭔가 말을 하려 했는지 입을 달싹였지만, 그러자 폐에 말뚝이 꽂힌듯한 고통이 느껴졌기에 곧 포기하고 대신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주변은 여럿이 한곳을 함께쓰는 돈없는 자들의 중환자실로 보였다. 그곳에는 간호사들이 환자들의 뒷치닥꺼리를 해주고 있었다.


젠은 허탈함에 뒤로 누웠다. 자신은 한강에서 뛰어내리고도 죽지 못해 결국 병원에서 회생한 것이였다. 높은 곳에서 물 위로 떨어졌었기에 비록 살아났다 해도 장기들은 심하게 손상됬을 것이였고, 그렇다는 것은 젠이 결국 죽지 못한채 남은 인생을 그런 골골거리는 장기와 함께 자살실패자로서 살게 되었다는 뜻이였다. 젠은 어째선지 마른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웃을 때마다 폐가 찢어질듯 아파왔지만, 젠은 그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웃는 젠의 눈에서 이유모를 눈물이 흘렀다. 신이 저주스러웠을까? 그저 하루하루 죽기 위해 사는 자신이 정작 죽지 못한다는 사실이 우스웠을까? 웃음과 눈물의 이유는 오로지 젠만이 알았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젠은 자신을 대려온 한 시민이 더 이상 병원비를 댈 수 없다는 이유로 갑작스레 병원에서 나와 자신의 월셋방으로 쫓겨났다. 이틀동안 다행인지 아닌지 걸을 수 있을 정도로는 회복됬었기에, 더 이상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싶지 않은듯한 어느 이름모를 시민을 더 괴롭히지 않으며 젠은 자신의 곰팡내나는 반지하까지 혼자 걸어갈 수 있었고, 그런 상황이 제법 웃길 법도 하건만 젠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채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그렇게 병원에서 자신의 반지하로 쫓겨난 후에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자살시도를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젠의 직장 상사는 그를 조금의 주저도 없이 해고했기에 당장 생계가 위협당했지만, 그렇다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모습으로 골골대는 인간을 고용할 곳은 없었기에 새로운 직장을 얻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수입 없이 모아놓은 쥐꼬리만한 돈을 까먹는 생활 어느날, 마침내 젠의 돈이 바닥났고 돈이 바닥난 젠은 가끔 먹을게 생기면 먹는 정도로 몇달을 시체처럼 보냈다. 그러다 보증금이 모두 바닥나자 매일같이 불안한 얼굴로 젠의 생사를 확인하던 집주인은 마침 잘됬다는듯 젠의 얼마 안되는 가구들과 함께 젠을 밖으로 내쫓았다. 병원에서 쫓겨난 것처럼 집에서부터 쫓겨난 젠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었기에 시체의 모습으로 서울역에 향했고, 그곳에서 추위와 질병에 자신 주변의 노숙자들이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며 의미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였다.




평소처럼 깡통 하나를 앞에둔채 지하철역에 누워있던 젠의 앞에 누군가 멈춰섰다. 성별을 알수 없이 그림자때문에 그저  검게만 보일 뿐인 사람을 젠은 무덤덤하게 올려다봤다. 바쁜 척으로 자신을 무장한 사회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노숙자는 적선을 하더라도 그냥 뗑겅 떨어트리며 스쳐지나갈, 그정도의 존재일 뿐이였다. 그랬기에 가끔 행인이 자신이 얼마나 착한 사람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연인이나 가족앞에서 노숙자에게 적선을 하고 그것을 모두에게 보여주는 경우는 가끔 있곤 했지만, 적선도 하지 않으며 이렇게 가만히 노숙자를 바라보는 경우는 젠의 노숙자 인생동안 한번도 없었다. 그랬기에 이색적으로 보일법도 하건만, 젠은 그저 죽은 눈으로 무덤덤하게 올려다볼 뿐이였다. 그런 젠을 봐서 놀라서인지 떨리는 여성의 목소리로 젠을 내려다보는 누군가가 말했다.


"선배? 선배 맞으시죠? 심하게 볼이 쑥 들어가고 눈빛이 완전히 죽었지만, 그런것들만 빼면 대학교에서 만난 이후로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어요.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만나니 반갑네요. 저 기억 안나세요? 저 K대 99학번 이진아잖아요. 저 밥도 사주고 그러셨는대, 정말 기억 안나세요? 아니, 내 정신좀 봐. 이렇게 뼈밖에 안남은 사람을 앞에두고 대체 무슨 소리람. 선배,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대 제가 밥사드릴게요. 학교식당에서 사주셨던 밥 이걸로 뚱치는 셈 치죠. 어휴, 저 불룩 꺼진 배 채우려면 돈좀 들겠는대요. 뭐, 약속이 있긴 하지만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 무시하도록 하고, 어서 밥먹으러 가요 선배. 같이 먹으면서 그간 무슨 일이 있었나도 얘기하고 그래요."


젠은 떨리는 목소리로 호들갑을 떠는 상대를 그저 무심히 바라보기만 했다. 이진아라고 자신을 밝힌 여성은 그것이 자신을 기억 못해서인지, 아니면 그냥 돈이나 떨어트리고 가란 뜻인지, 그도 아니면 그냥 만사 다 귀찮다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젠이 전혀 일어날 생각이 없어보였다는 것이였다. 그랬기에 이진아는 눈 딱 감고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것 같은 젠의 팔을 붙잡고 일으켜준 후 젠이 다시 앉으려 하자 황급히 다른쪽 팔도 붙잡아서 젠을 밖으로 거의 끌듯 대리고 나왔다. 그 다음 가장 가까운 음식점인 설렁탕집으로 향했다. 그 음식점은 노숙자를 별로 신경쓰지는 않는지 이진아가 설렁탕 대짜를 공깃밥 세개와 함께 시키자 별다른 말 없이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젠은 단체에서 나눠주던 밥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설렁탕을 묵묵히 바라보더니 그 안에 공깃밥 두개를 푹 던진 후 소면과 함께 걸신들린듯 먹었다. 이진아는 그것을 보더니 설렁탕을 수육과 함께 하나 더 시킨 후 그것에 자신의 공깃밥을 넣어서 먹었다.


젠이 수육까지 끝낸 후 속이 다 찼는지 배를 어루만지자, 이진아는 어떤 일이 생겨서 젠이 이렇게 됬는지 궁금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물었다. 이진아에게 젠은 정말 모범적인 선배였다. 목표도 없는 그녀와는 달리 젠은 하루하루를 어디론가 끝없이 달려가며 살았고, 그렇게 성실했기에 교수들도 한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를 좋아했는대다가, 심지어 교우관계까지 원만했다. 어떤 면을 보더라도 그녀의 기준에는 서울역에서 노숙자로 살 사람이 아니였던 것이였다.


"선배, 그래서 대체 어쩌다 그렇게 되신거에요? 졸업 후로 연락 끊겨서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선배같으신 분이라면 뭘 해도 잘하셨을 것 같은대."


젠은 여전히 세상물정을 모르는 것인지, 순진하기만한 이진아를 비웃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밥은 먹었지만 대답하고 싶지는 않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무덤덤한 눈빛으로 이진아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이진아는 그런 젠을 보더니 말을 이었다.


"정말 저 기억 안나세요? 한번은 MT에서 제가 벌주걸리자 선배가 흑기사 서주셨었잖아요. 그때 그 이진아 정말 기억 안나요?"


젠은 이진아가 기억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이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인지 마른 입을 열었다. 목구멍에서는 땅이 갈라지는듯한 소리가 났다.


"올라가기는 힘들어도, 떨어지기는 한순간이더라."


그리고 그 말을 하자마자 품속에서 피와 가래로 번들거리는 수건을 하나 꺼내더니 입을 가리고 격하게 기침을 하였다. 한강대교의 자살시도로 얻었던 골병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였다. 이진아는 그런 젠을 연민의 눈으로 보다가 무언가 떠올랐다는듯 말했다.


"아! 선배! 제가 선배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알고 있어요. 그 (주)천년기업 아시죠? 근광속 엔진의 사용을 유일하게 정부로부터 허가받은 기업 있잖아요. 막 포스터도 붙이고 그랬는대. 어쨌든, 제가 운좋게 거기 취직을 할 수 있었는대 몇년전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상품을 다시 개발하고 있다고 개발팀에 있는 동기가 말해줬었거든요? 그 상품 내용이 무엇이냐면 바로 천년 후로 상품의 구입자를 보내주는 것이에요."


이진아는 잠시 젠의 더러운 수건을 보더니, 그것을 뺏어 던진 다음 대신 자신의 백에서 티슈를 꺼내서 건내주었다. 그런 다음 잠시 물을 한모금 마신 다음 말을 이었다.


"원리는 간단해요. 상대성이론 아시죠? 제가 문과라서 어려운 내용은 모르지만, 대충 동기가 말해주길 물체가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할수록 그 물체를 둘러싼 시간이 빠르게 흐른대요. 그렇기에 광속으로 5년을 이동하고 돌아오면 지구에서는 약 천년이 흐른 후가 되는대, 그것을 이용해서 미래로 가고 싶은 사람들을 미래로 보내주는 것이라네요. 최근 실험자를 구하고 있다는대, 제가 동기한테 부탁하면 아마 선배를 그곳에 넣어줄 수 있을거에요. 체력문제는 제가 해결해 드릴 수 있으니 그냥 몸만 들고 오면 되요. 선배는 항상 미래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하셨었잖아요. 최소한 이곳에서 이렇게 사시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젠은 대답하는 대신 그저 어딘가를 묵묵히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 후 시간은 쏜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이진아는 젠의 내장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들은 후 젠에게 인공장기를 구입해주었고, 그것에 익숙해지는 물리치료를 받으며 1달이 지났다. 그렇게 치료를 하며 이발도 하고 목욕도 해서 젠이 좀 인간이 되자 이진아는 젠을 말했던대로 실험자에 넣어주었고, 젠은 그곳에서 우주로 가는대 필요한 다양한 훈련들을 받으며 결국 우주선에 타서 안전성을 실험할 마지막 10인이 되었다. 그렇게 훈련이 끝난 후에는 이 실험의 목적인 안정성 테스트를 할 수 있을만한 조치없이 그냥 우주로 나간다는 사실이 의문스러울법도 했건만, 젠은 그저 묵묵히 훈련을 따를 뿐이였다.


그리고 그렇게 우주선이 출발할 날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