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27 01:50

메시아력 xx년.

메시아 은하 서부, 킬테일 행성 상공. 제 7함대 기함 볼텍스Voltex

“후,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고.”

볼텍스의 함교에 앉아 있던 남자는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그의 앞에는 대여섯 장의 종이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아마도 그가 방금까지 읽다가 던져버린 듯 했다.

[뭐가?]

남자의 앞에 연한 금발머리를 한 여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느새 통신 채널을 감청당하기라도 했단 건가, 남자는 퉁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전문 내용 말이야.”

[왜? 전문 내용이 신경 쓰이나 봐?]

“아니, 별로 신경 쓰이진 않는데 말이야. 또 이렇게 우르르 몰려들거면 난 잠도 못 자고 애들 굴려야 한다고.”

[뭐야, 니 애인 결혼 상대 찾는다는 광고 낸 것이 걱정도 않되? 너 다른 여자 있지? 맞지?]

“다른 여자는 개뿔. 너 때문에 다른 여자들이 내 모습만 보면 멘탈이 붕괴된 듯 마냥 도망쳐 버리거든? 볼텍스 뿐만 아니라 7함대 내에서 내가 뭐라 불리는 지 아냐? 건조남이야 건조남.”

[건조남? 건조남이 뭐야?]

“건들면 조옷되는 남자. 제독을 건들면 좆되는 거에요, 아주 좆되는거야.”

[큿, 뭐야 그게. 건들면 좆된다고? 하긴 뭐, 누가 감히 내 남자를 건드리려 하겠……잠깐만, 너 진짜 내 결혼상대 찾는다고 하는 것에 걱정 안 되?]

“음…….”

[뭐야!]

“끝까지 들어. 걱정 안 되냐고? 그걸 말이라고 하냐? 당연히 걱정 되지.”

[그으래애? 어떤 점이 걱정되는데?]

여자는 어느새 얼굴에 미소를 천천히 퍼뜨리고 있었다. 그걸 발견한 남자는 이마에 손바닥을 갖다 대며 말했다.

“넌 내가 결혼 상대 찾습니다. 열 네살 이하 여자 급구요! 라고 한다면 어떤 느낌 들겠어? 그거랑 똑같을거야.”

[……야, 열 네살 이하는 행성 내 법률로도 금지되어 있거든? 니가 만약에 열 네 살 이하랑 하다가 걸리면 난 매우 서글프겠지만 특별히 너에게만 거세형을 내릴거야.]

“어차피 우주에 짱박혀 있어서 쓰지도 못하는 거 그냥 한번 질러봐?”

[죽을래! 그거 니꺼 아니거든!]

남자가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여자가 고함을 빽 하고 질렀다. 남자는 피식하고 웃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물론 너라면 열네 살이라도 기쁘게……”

[……거기까지! 나도 내 남자 범죄자 만들고 싶지는 않으니까. 어쨌든 걱정 안해도 되. 그냥 행성 지도자간의 친목회니까. 내 결혼상대 찾습니다! 는 명분일 뿐이야.]

“뭐, 그럴 것 같았어. 그럼 난 이 주변을 철통경계하면 되는 거지?”

[응. 혹시나 레벤탈 측의 공습이라도 있는 날엔 주변 수십개 행성이 싸그리 멘붕해버리는거야.]

“별로 좋진 않네.”

남자가 중얼거렸다. 레벤탈. 킬테일을 비롯한 주변 행성들과 적대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제국이다. 그리고 서부 개척을 주장하며 주변 행성들을 무섭게 잡아먹기 시작한 레벤탈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킬테일을 구점으로 뭉치고 있는 것이다.

“주변 행성은 멘탈이 붕괴하던 말던 상관 없어. 하지만 너는 반드시 지키겠어. 믿어도 좋아.”

[……치, 그럼 내가 너 아니면 누구를 믿으라는거야, 키르건?]

“이름을 바꿀까 해.”

남자, 키르건은 불쑥 지나가는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당연히, 그간의 주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이였기에 여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되물었다.

[갑자기 뭔소리야?]

“키르건 킬테일. 뭔가 이상하지 않아? 고양이 이름같아.”

[그런 고양이 있으면 좀 잡아와 봐. 키워보게.]

“싫어. 고양이 따위에게 질투하고 싶진 않아. 쨋든, 야노. 걱정 마. 네가 이 행성에 있는 한 나는 이곳을 지키겠어. 그 끝이 설령 내 끝과 수렴한다 해도.”

[……어려운 말 쓰지 말지? 그리고……죽지 마. 절대 죽지 마. 설령 레벤탈 놈들이 몰려와서 그 함대 다 갈아버렸대도……니가 죽는다면 용서하지 않을거야. 알았어? 차라리 깨갱하고 도망치는건 용서해줄 수 있지만.]

“어이, 보통 한 행성의 지도자쯤 되면 ‘목숨을 다해 싸워라!’ 해야하는거 아냐?”

[상관없어! 은하계를 다 준대도 너 없으면 싫단말이야…….]

한껏 고함을 지른 야노는 금새 시무룩해진 얼굴로 말했다. 키르건은 그런 야노의 모습을 잠깐 바라보다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이른바 ‘한빙寒氷의 여제’ 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야노지만 자신의 앞에선 새끼고양이처럼 구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귀엽다. 엄청난 업무로 인해 쌓일대로 쌓인 스트레스를 키르건에게 툭탁이며 풀려는 모습마저도 귀엽다. 키르건은 당장이라도 야노를 폭 안아서 토닥토닥해주고 싶었다.

“걱정 마. 안 죽을테니까. 그날 맹세했잖아? 너의 뒤를 따르겠다고. 그러니까 죽어도 니가 먼저 죽어야 나도 죽을 수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되. 걱정 말고 행사 준비나 잘 하세요."

[……죽어버리면……죽여버릴거야.]

“네네, 니 좋을대로 하세요. 어이, 야노 각하? 이제 슬슬 회의시간인데 말이지. 나중에 또 연락해도 될까?”

흘낏 하고 시계를 바라본 키르건이 말했다. 30분 후면 함대 참모들과의 회의 시간이다. 야노는 아쉬운지 볼을 살짝 부풀렸지만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저 통신을 끊었다. 눈앞에서 야노의 얼굴이 사라지자 키르건은 한숨을 푹 내쉬며 뒤의 의자에 몸을 푹 하고 파묻었다.

“젠장할.”












내가젠장할



짧아서 미안하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