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15 18:36

하늘에서 불의 피눈물이 내렸다. 문학적인 표현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이겠지만, 굼은 그 말에 전혀 문학적인 과장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행성보호함대가 강렬한 근거리 미사일 폭격에 무차별 난사되며 파괴되고, 그 잔해가 행성의 중력에 의해서 바닥으로 추락하는 과정이 마치 행성보호함대의 죽음에 행성이 슬퍼하며 불로 된 피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였다.


털썩.


굼은 애인에게 100일 파티를 열기 위해 준비한 물건들을 힘없이 떨어트렸지만,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채 믿을 수 없다는듯 하늘을 올려다봤다. 눈을 감고, 다시 뜬 후 다시 감고, 그러고를 몇번이나 반복했음에도 하늘은 여전히 불의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번쩍!


그렇게 행성보호함대가 순식간에 전멸하자, 행성 공략의 다음 단계로 보이는 천벌같은 빛이 그 잔해속에 거대한 구멍을 뚫으며 순간 온행성을 새하얗게 뒤덮었다. 마침 눈을 비비느라 감고 있던 굼은 다시 주변을 둘러보자 눈을 비비던 그 잠깐 사이에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온 은하계에서 온 수송선들로 가득하던 은하경매장의 지부점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신,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만큼 거대한 크레이터가 그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어, 어."


굼은 지금 자신이 보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입에서 의문의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도 막을 수 없었다. 그저 그 어마어마한 폭력의 집합체가 저지르는 믿을 수 없는 규모의 학살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바닥에 주저앉을 뿐이였다.


"꺄아아아아악!!"


은하뉴스로 보도되는 은하 곳곳의 전투가, 자신들과는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듯 바라봤을 행성 거주민들이 300만년전 원시인일 때부터 내려왔던 본능적 공포의 비명을 내지르며 파괴가 일어난 곳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갔다. 그들은 이제 거대한 크레이터인 파괴된 은하경매장의 지부점으로부터 약간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면 그동안 인생을 바쳐 벌었던 크레딧을 모두라도 바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굼은 그들과 달리 주저앉은 바닥에서 일어나 도망갈 수가 없었다. 은하경매장의 지부점은 그의 친구, 그의 애인, 그의 인생, 그의 모든 것이 존재하던 그의 생명보다 중요한 무언가였기 때문이였다.


"어, 어."


굼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언어들이 가장 거센 표류처럼 휘몰아치며 수많은 문장들을 조합해냈다. 그 문장들은 모두 현 상황이 어떤 것이고,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굼에게 가르치는 지침들이였다. 하지만 굼은 그동안 열심히 따랐던 그 모든 지침들을 이번에도 따르는 대신, 그저 가장 기초적인 외자 단어만을 나지막하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 앞에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고 맡아지고 맛볼수 있는 모든 장면들이 거짓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였다.


"이건 꿈이겠지?"


마치 굼의 말에 너무도 잔인하게 '아니' 라고 대답하듯, 은하경매장의 지부점을 없애버린 파괴의 빛이 이번에는 그의 각막도 함께 무자비하게 태워버리며 다시 번쩍였다. 그 빛이 사라지고 나자, 각막이 타버려 볼 수 없게 된 굼은 알지 못했지만, 그의 부모가 평온히 낮잠을 즐기고 있었을 거대한 주거지역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래, 이건 꿈이야."


"미친 소리 그만 중얼거리고 얼렁 일어나! 씨팔, 저게 대체 어디서 나타난 누구의 함댄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저건 망하게 차가운 현실이란 말이라고!"


그렇게 반쯤 넋이 나간듯 주저앉아있는 굼은 갑작스레 누군가에 의해서 거칠게 부축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굼은 시야를 잃었기에 누가 자신을 부축해준 것이였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의 피부로부터 공포에 의해 분비된 땀냄새와, 긴장되서 헥헥대는 혀로부터 나는 희미한 입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정말 날씨 좋은 날이네요. 태양은 어제처럼 온화하기 그지없고, 사람들도 정말 너무도 착해요. 아, 오늘이 제 애인의 100일 기념일인대, 혹시 같이 가서 축하해주실 생각 있으신가요? 제 애인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을 너무도 좋아하거든요. 아! 사람들 속에서 기뻐할 때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정신줄을 놓아버렸군."


바닥에 주저앉은 굼을 부축해준 흑인, 흐로펩은 굼이 정신줄을 놓았다는 사실을 알아챈 후 짜증나는 어조로 짧게 내뱉은 다음 굼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자 하는 수 없이 그를 자신의 넓은 등에다 업혔다. 그 후 품속에서 행성파괴함이 내는 죽음의 빛으로부터 각막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인 타키온 감지 선글라스를 굼의 눈에다 한손으로 어렵게 걸친 후 온힘을 다해 워프게이트 관리소로 달려갔다. 그곳은 전시에는 시민 대피용으로 무료가 되곤 하였는대, 그것을 통해 다른 행성으로 달아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굼을 업고 있었기에 흐로펩은 다른 사람보다 느려질 수밖에 없었고, 그랬기에 워프게이트 관리소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왠 싸이코가 명령을 내리는 것인지 사람들이 밀집된 곳만 노려서 발사되는 죽음의 빛에 의해서 워프게이트가 이미 파괴 된 후였다.. 흐로펩은 잠시 실망감에 믿을 수 없다는듯 입을 벌리고 있다가, 재빨리 머리를 흔들어 좌절감을 떨쳐낸 후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워프게이트 관리소가 파괴됬다면 그 다음으로 사람들이 향할 곳은 관제소였다. 하지만 이미 행성수비함대가 완파된 상황에서 우주로 도망갈 수 있을리는 만무하니 그곳으로 가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 없었고, 관제소와 워프게이트를 제외한다면 행성 밖으로 도주할 수 있는 수단은 없었기에 흐로펩은 더 이상 도망가기 보다는 행성내에서 안전한 곳을 찾아 숨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저들이 하는 것을 보니 저들은 이곳을 식민지로 만들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기에 어디 잘만 숨어 저들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린다면 그들은 운이 좋을시 이 재앙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였다.


"......."


각막이 파괴되서인지, 아니면 모세혈관이 파괴되서인지, 그도 아니라면 그저 현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잔인해서인지, 흐로펩의 등에 업힌 굼은 소리 없이 피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하늘이 흘리는 눈물과 비슷한 빛이였다. 그렇게 하늘과 대지에서 모두 피눈물을 흘리는 은하 어딘가의 행성. 그곳에서 두 남자는 달리고 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