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30 03:02

33번 베이스의 지휘관은 상황실에 설치 된 스크린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33번 베이스로부터 약 1광초의 거리를 두고 거대한 구체의 형태로 33번 베이스를 포위 한 적의 군세는 제법 상당해보였고, 당장이라도 33번 베이스를 초토화시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적의 군세는 구축함으로만 이루어져있었지만, 그것은 33번 베이스도 마찬가지였고, 함선의 질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함선의 물량이니 대형급 함선이 33번 베이스에 배치 되 있었다 해도 전혀 얕잡아볼 수는 없는 군세였다.


지휘관은 원래 FM대로 본대를 호출하자마자 33번 베이스로부터 후퇴를 하려고 했었다. 그가 FM을 따르지 못한 이유는 외부상황을 직접적으로 살펴보기 위한 목적으로 보낸 초계함 소대가 연락이 두절되고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였다. 그는 연락이 두절 되자 새로운 소대를 보냈고, 그 새로운 소대마저 연락이 두절되자 또다른 소대를 보냈지만, 그 소대마저도 중도에 연락이 두절되었다. 그 당시 적과 33번 베이스는 약 1광분의 거리를 두고 있었는대, 구축함은 그정도 거리를 뛰어넘어서까지 공격을 할 수 없었다. 적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이였기에, 지휘관은 베이스를 나서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포위를 당하고 나니 그냥 33번 베이스를 나서야하지 않았을까 지휘관은 후회감이 들기 시작했다.


지휘관은 절망감을 잊기 위해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착각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상황병에게 물었다.


"본대는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나?"


상황병은 바삐 터미널을 조작하며 답했다.


"본대는 이제 막 출격을 끝내고 워프 게이트에 진입하였습니다. 예상 도착시간은 현 시각으로부터 약 712분 후입니다."


지휘관은 상황병이 애써 잊으려 하던 현실을 재차 확인시켜주자, 두통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마치 머릿속의 뇌가 부풀어올라 두개골 안에서 터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지휘관은 머리가 아파오는지 자신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그는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이라는 생각을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었다. 다가오는 죽음을 향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무력하며 증오스러운 일인가. 지휘관은 의자의 팔걸이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분노를 해소하기 위한 행위였지만, 분노를 해소하기는 커녕 잘못 내려찍어 어긋난 손뼈가 전해주는 고통에 분노는 오히려 더 심화되어만 갔다. 지휘관은 분노한 야수처럼 울부짖었다.


"대체, 왜! 망할, 대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냐고! 다른 사람들은 잘만 살아가지 않나? 이곳이 최전선이긴 하지만, 이놈의 지랄맞은 베이스만 해도 50개나 된다고! 왜 하필 50개나 되는 베이스중 내가 있는 베이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지? 대체 왜!"


그의 분노에 답해주듯, 무엇인가가 33번 베이스를 강타했다. 순식간에 인공중력이 망가지며 온갖 물건들을 공중에 떠올렸다가 바닥에 처박았다가를 반복하기 시작했고, 모든 전류는 순간 끊어졌고 대신 비상전력과 연결 된 비상용 기기들이 작동을 시작했다. 베이스 모든 부분에는 붉은 빛과 함께 사이렌이 울렸고, 한 여성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비상 사태. 비상 사태. 피해에 따라 본 베이스에는 자동으로 1급 대피태세가 발령되었습니다. 침착함을 유지하며 가까운 오피서를 찾아 그의 지휘 아래 본 베이스를 탈출하길 권유합니다. 비상 사태. 비상 사태."


겨우겨우 이런 사태에 대비해 건설 된 돌출물을 붙잡은 지휘관은 고래고래 외쳤다.


"상황병!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고!"


하지만 상황병이 그에게 대답을 해줄 수 있기도 전에, 무엇인가가 한번 더 33번 베이스를 강타했고, 더 이상 타격을 버티지 못한 33번 베이스는 그대로 산산조각나며 내부의 인원들을 사방으로 흩어지는 공기와 함께 공허 속으로 날려보냈다. 우주로 날려보내진 사람들은 입을 뻐끔거리며 비명을 지르거나 숨을 쉬려 했지만, 그들에게 남은 운명은 진공의 공허속에서 영원히 떠도는 얼어붙은 시체가 되는 것일 뿐이였다. 사방으로 흩어진 공기를 타고 전해져오는 절대영도의 냉기 속에서 얼어붙어가는 지휘관은 기압차에 의해 실핏줄이 터져 붉게 물들은 눈으로 무엇이 33번 베이스를 강타했는지를 살펴봤다. 점점 희미해져가는 그의 눈에 구축함의 전열 속에 숨겨져있던 무엇인가가 보여졌다.


".......!"


무엇이 그리도 두려운지, 지휘관은 무심한 공허 속에서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렇게 입을 활짝 벌린 채로, 지휘관은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공포에 질려 벌려진 지휘관의 입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와 그의 부하들을 죽이라 명령한 당사자인 해롤드의 손에 의해서 닫혀졌다. 해롤드가 그의 입과 눈을 닫아주자, 사자는 그제서야 평온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해롤드는 사자를 내려다보며 오래전에 죽은 언어로 명복을 빌어준 후 그의 품속을 뒤졌다. 아들들은 물었다.


"아버지, 무엇을 찾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험한 일은 저희가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해롤드는 지휘관의 품속에서 레이저 포인트를 하나 꺼낸 후 천장에 비춰보며 답했다.


"사자의 명복은 죽인 자가 빌어줘야하는 법."


지휘관의 품속에서 꺼낸 레이저 포인트로부터 아무런 빛도 보이지 않자, 해롤드는 만족한듯 그것을 첫째아들 제퍼슨에게 던졌다. 제퍼슨은 그것을 받으며 물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해롤드는 답했다.


"33번 베이스가 기반 되어 있던 행성에 배치 된 감시위성의 마스터키다. 잘 가지고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