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11 18:05

하트리는 오늘도 휴게소에서 홀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마시고 있는 술은 알코올 농도 60%의 합성주. 마치 물처럼 아무런 맛도 없고 워낙 독하기에 아무도 마시지 않는대다, 마신다 해도 보통 물에 희석시켜 마시는 술이였지만 하트리는 언제나처럼 병나발을 불었다. 이렇게 병나발을 불다 몸이 버티지 못하면 하트리는 제자리에 고꾸라져 24시간을 죽은듯 잠만 자곤 했고, 깨어나면 휴식없이 일만하다 다시 술을 퍼마신채 쓰러지곤 했다. 그는 마치 인간이 아니라 알코올로 작동하는 기계처럼 보였다. 사실 그 관점이 그렇게 틀린 것은 아니였다. 몇년 전 고향 행성에서 홀로 살아남은 후 그는 알코올 없이는 살아가지 못할 시체가 되어버렸으니까. 그에게 알코올은 아름다운 과거였고 아련한 향수였다. 잔인한 현실을 잊게해주는, 그런 마약같은 과거.


그는 한번 마약도 손에 대본 적이 있었다. 우주돌림병의 환자들이 죽기 직전 엔돌핀의 과다분비로 극한의 기쁨을 느낀다는 점을 이용해 복용자를 일시적으로 그 상태로 만들어주는 마약, Stairway to Heaven. 그는 그것을 치사량의 50배만큼 구입한 후 밀실에서 한꺼번에 복용했었다. 아마 오지 않을 환상속에서 죽고 싶다는 생각에 저지른 일이였으리라. 하지만 STH는 그를 죽이지 못했다. 하트리는 STH를 복용한지 3일 후 밀실에서 나왔다. 그가 어떻게 죽지 않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3일동안 밀실에서 무엇을 보았을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다만 그 날 이후 하트리가 STH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마약에서 손을 뗐다는 것만 알 수 있었을 뿐이였다.


하트리는 몇년간 우주를 떠돌았다. 그는 삼각지대를 뚫고 은하의 중심에 침투한 남부 군주들의 공작조와도 혈투를 벌였고, 끝없이 후퇴하는 최전선에서 싸워보기도 했고, 수많은 행성들의 지하조직에 배치되기도 했었다. 그는 그 와중에 수많은 지휘관들을 만났었는대 그 지휘관들은 하트리를 모두 한마디로 표현하곤 했다.


죽지 못해 안달난 놈.


이 짧은 한마디는 농협 제국 HQ로부터의 지원대에 포함 되 있던 하트리를 처음 본 순간 메일이 받은 첫인상이기도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군인처럼 죽음과 가까운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역으로 죽음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을 꺼려한다. 마치 죽음이 돌림병이고 자신에게 언제 옮겨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처럼 그들은 죽음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고 본능적으로 기피하곤 했다. 르네상스의 사람들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기에 하트리가 술을 마실 때는 언제나 휴게소에서 도망가듯 떠나곤 했었다. 하트리는 그것에 별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에게는 연료를 채울 공간이 필요할 뿐이였다.


대부분의 군인들이 그러한 반면, 제인은 의외로 그런 것에 둔감했다. 그녀는 군인답지 않게 죽음을 그리 잘 알아채지 못했다. 그녀에게 적은 나타나지 않으면 더 좋을 사람들이였고 아군은 나타나면 더 좋을 사람들일 뿐이였다. 그런 그녀여서인지, 휴게소에서 홀로 마시는 하트리를 본 제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단 네가지 뿐이였다. 


'급한대로 배급받은 비누로 씻긴 해서 냄새는 안나는대 그 비누 냄새가 맘에 안든단 말이야.'


'아! 내가 술을 마신다.'


'그런대 사람들이 모두 어디갔지?'


'그래도 한명 있으니 저 사람하고 술 마셔야겠다.'


제인은 하트리의 옆에 털썩 앉은 후 숙소를 배정받으며 받았던 ID카드를 꺼내 탁자에 배치 된 인식기에 인식시키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하트리는 아무 말 없이 계속 병나발만 불었다. 옆에 사람이 앉은 것을 알긴 하는지 의심스러운 반응이였다. 대답이 없자 머쓱한듯 작게 웃던 제인은 병에 붙어있는 레벨을 보고 하트리 주위에 굴러다니는 병들이 얼마나 독주인지를 알아챌 수 있었다. 전투력 유지를 위해 1주일에 1병만 허락 되는 1등급 독주들중 하나였다. 제인은 걱정됬다.


"저, 그렇게 마시면 건강에 안좋으실텐데, 괜찮으신가요?"


제인의 걱정이 무색하게, 하트리는 말없이 병나발만 불었다. 제인은 뒷통수를 긁으며 어깨를 으쓱한 후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전쟁은 극단적인 상황이고 극단적 상황은 별 종류의 인간들을 만들어내니까. 제인은 하트리의 건강을 그만 걱정하고 몇개월간 침내나는 백포도주에만 연명한 한을 풀기 위해 아이스 와인을 주문했다. 아이스 와인으로 유명한 커먼웰쓰 행성의 물건이였다. 제인은 신이 나 말했다.


"햐, 이게 대체 몇개월만에 마시는 술이람. 제가 이래 뵈도 어려서부터 맛좋은 술만 마셔온 애주가인대 최근 몇개월간은 선원들하고 돌려마셔 침내나는 화이트 와인밖에 못마셨거든요. 맛좋은 와인을 다시 맛 볼 수 있기만을 얼마나 고대해왔는지 원. 특히 아이스 와인이 가장 그리웠어요. 입안에 머금으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그 부드럽고 달달한 향! 그 무엇으로도 그것만큼은 대신할 수가 없다니까요."


하트리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지만 제인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간 쌓인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놓을 상대가 필요했을 뿐이였으니까. 아이스 와인이 나오자 제인은 코르크 마개를 돌려 딴 후 좁고 긴 유리잔에 쪼르르 아이스 와인을 따랐다. 보석같이 아름다운 옅은 노란색의 액체가 휴게소의 빛에 찰랑이며 반짝였다. 보는 것 만으로도 그 달달하고 청량한 향이 혀끝으로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제인은 짧게 감탄사를 내뱉은 후 한모금 마셨다. 과연 커먼웰쓰 행성의 아이스 와인은 최고였다.


"아!"


그 무렵, 하트리는 고향행성에서 기분좋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물론 그의 육체는 어두운 지하기지의 휴게소에서 마치 연료를 주입하듯 기계적으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고향행성에서 기분좋게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은 현실로부터 도망쳐온 그의 정신이였다. 바람은 산들산들하니 시원했고 풀내음은 향긋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대 그 풀내음 속에서 이질적인 향기가 맡아져왔다. 달달하고 부드럽고 소박한 냄새. 익숙한 향기였다.


그런 향기 속에서 기다란 무언가가 나와 하트리의 얼굴을 간질였다. 부드러운 털들이 기분좋게 간질거리는 풀. 눈을 떠보니 하트리로서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여인이 장난스러운 얼굴을 한채 강아지 풀로 심술궃게 하트리의 얼굴을 간질이고 있었다. 그의 애인인 디벨라였다.


"오늘도 어디갔나 했더니 인공자연재현실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네요? 행성보호군이 이렇게 농땡이 피울 줄만 아니 어떻게 소시민이 발 뻗고 잘 수가 있겠어요. 정말 불쾌하네요."


몇년 만에 본 디벨라의 얼굴은 하트리의 가슴 속에서 수많은 말들을 펌프질해냈다. 묻고 싶었던 것들, 말하고 싶었던 것들, 사과하고 싶었던 것들. 그런 수많은 말들에도 불구하고 하트리는 아련함에 잠긴 목소리로 한마디만을 내뱉을 수 있었다.


"아, 디벨라!"


"...이렇게 해서 아이스 와인이 다시 부활 할 수 있었던, 네?"


한참 아이스 와인이 어떻게 안드로메다에서 다시 부활할 수 있었나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던 제인은 하트리가 무언가 말을 하자 놀라 되물었다. 뭐라 말했는지는 하트리의 목이 너무 잠겼었기에 이해할 수 없었다. 하트리는 고개를 느리게 돌려 너무도 애절한 눈초리로 제인을 바라보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제인이 놀라 손을 뺄 새도 없이 하트리는 애절함에 잠긴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그간 너무도 그리웠어요."


그 목소리는 절망을 맛본 자의 것이였다. 제인은 그런 애절한 목소리를 듣고도 손을 빼낼 정도로 차가운 여자가 아니였다. 제인은 하트리의 사연을 알지는 못했지만 손을 빌려주는 정도야 해줄 수는 있었기에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하트리는 횡설수설했다. 말은 계속 될 수록 점점 힘을 얻어갔다.


"그 빛! 그 빛은 너무도 강력했어요! 깊은 지하에 있던 저에게까지도 그 열기가 느껴졌으니까요! 오, 대지는 갈라졌고 바다는 말랐어요! 불타는 공기속에서 사람들은 죽어갔어요! 그 빛속에서 디벨라도 죽은 줄 알았어요! 하, 하, 하하! 하하하!"


하트리는 믿을 수 없는 행운 속에서 점차 기쁨을 느껴가는 표정으로 유쾌하게 웃더니 문득 떠올랐다는듯 말했다.


"덴. 오, 저의 훌륭한 친구 덴! 디벨라가 살아있다면 덴도 살아있을 수 있어요! 디벨라는 덴이 어딨는지 아시나요? 덴! 오, 그또한 제가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저는 덴을 만나야만해요. 술 한잔 사면서 사과를 해야만 한다고요! 그럼 덴은 제 등을 두들기며 이미 다 잊었다고 말해주겠죠. 반드시 그래야만해요! 아, 얼마나 좋은 친구인지! 얼마나 좋은 친..."


미친 사람처럼 횡설수설하던 하트리는 갑자기 말을 잇다 말고 정신을 잃었다. 하트리의 횡설수설을 어리둥절해하며 듣고 있던 제인은 갑자기 거구의 하트리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어찌할 새도 없이 하트리에게 눌려 바닥에 깔려버렸다. 제인은 낑낑대며 겨우 하트리를 옆으로 밀어내 자리에서 일어난다음 하트리를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