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22 01:05
모든 일은 우주개척의 최전선이자 최대장벽인 오르트 구름으로부터 정체불명의 대규모 물체들이 목격되며 시작됬다. 그 물체들은 빛과 전파를 흡수하는 정체불명의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주의 공허 그 자체처럼 음울히 일렁이는 모습. 외부에는 아무런 돌출물도 드러나지 않아, 기하학적 곡선의 기다란 유선형 몸체는 어떤 점에서는 아름답기까지 했다. 그 아름다움은 제법 실용적이기도 했다.  오르트 구름 특정지역의 소천체들이 정체불명의 무언가와 부딪히며 흩날리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인류는 어쩌면 오르트 구름에서조차 정체불명의 물체들을 감지하지 못했을지 모를 정도니.

통합우주국은 외계물체의 정체를 확인하기위해 오르트 구름을 탐사하던 민간탐사드론을 강제징발해 근방으로 접근시켰지만, 제법 참혹한 결과만을 얻었다. 인류가 그들의 접근을 확인, 대응하고 있단 사실을 깨닫자마자 그 물체들이 불가해한 방법으로 드론을 조용히 파괴했기 때문이다. 통합우주국은 드론이 무엇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파괴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몇가지 메시지들은 분명 전해졌다. 제법 끔찍하고 두렵기 짝이 없는 메시지들. 바로 저 물체들은 분명 지적존재에 의해 창조되었고, 무장하였으며, 인류에게 호전적이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지구로 곧장 이어지는 최단궤도를 따라 고속으로 이동중이란 메시지.

통합우주국은 그 사실을 숨길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현실은 영화나 소설이 아니였다. 저런 거대한 사실은 어떤 방식으로도 숨길 수가 없다. 인터넷과 소셜메디아의 발달에 힘입어 성장한 독립기자들이 사방을 헤집어놓고 있는 21세기라면 더더욱. 게다가 통합우주국에서 그 사실을 성공적으로 숨긴다는 기적이 일어난다해도, 태양계의 공허를 누비는 것은 통합우주국 혼자가 아니였다. 오히려, 태양계를 누비는 행성간 선박의 80%는 민간기업 소유였다. 그 80%중 절반 가량이 통합우주국에서 넣은 외주로 먹고살긴 했지만, 그래도 그 숫자는 민간기업이 우주개척에 맡은 역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었다. 그 민간기업들중 단 하나에서라도 얘기가 새어나온다면 숨기는 의미가 없다. 그리고 통합우주국 하나에서 정보가 새어나오는걸 막는 것 만으로도 기적이 필요한데, 수십개가 넘는 민간기업들에게서 비슷한 기적을 기대하는게 얼마나 천문학적으로 희박한 가능성을 지닐지는 추측에 맡기겠다.

순식간에 전지구적인 패닉과 함께 극렬한 논쟁이 시작됬다. 첫 화제는 외계인의 목적, 그것은 무엇일지는 제법 분명했지만 동시에 모호했다. 일단 외계인이 인류에게 적대적이란 것은 분명했다. 적대적으로 접근하는 외계인이 조용히 협상만 하고 떠나진 않을 가능성이, 그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되겠지만, 매우 낮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적대적일까? 그것이 다음 화제였다.

자원이 목적은 아니다. 항성간 여행이 가능해진다면 그 가능성은 무한하다. 정말, 말 그대로 무한하다. 우리 은하에는 행성만 1천억개가 존재하니까. 하나하나가 무한한 자원의 보고인 행성이 1천억개. 그중 굳이 생명체가 사는 행성을 골라 집을 필요는 없다. 생명체가 사는 행성이라면 오히려 자원이 비교적 고갈되어 있을테고, 현지의 불필요한 분쟁도 생길 것이다.

노예가 목적일까, 그건 가능성이 존재한다. 노동력을 위해서 필요로하는 것일 가능성도 어느정도 존재는 한다. 외계인 사회가 모종의 이유 때문에 로봇의 노동력을 활용하지 못한다면 대신 윤리적으로 별 부담없이 얼마든지 끔찍하게 굴려먹을 종족이 필요할 것이다. 유전공학을 통해 자체적으로 노예종족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기술력의 문제나 윤리적 문제 때문에 불가능해졌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약탈이 목적일 수도 있다. 우리로서는 저들이 외계인이지만 저들로서는 우리가 외계인이다. 외계에서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자연과학적, 공학적, 문화적 성과들을 탐내는 것일지 모른다.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우면서 압도적인 시너지를 일으킬지도 모르니까.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의 유전정보 역시 약탈의 대상이 될 지 모른다. 유전공학의 발전이란 점에서 새로운 유전정보는 다다익선이다.

그도 아니라면 그저 경쟁자의 제거가 목적일 수도 있다. 우주는 광활하지만 제한되어 있다. 1천억은 압도적인 숫자지만 무한한 숫자는 아니다. 21세기 인류가 급속도로 성장하며 우주로 영향력을 뻗쳐나가는 것을 경계한다는건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가 아닐까? 다크호스가 제대로 크기전에 완전히 종족적으로 말살하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위에 나온 이유 모두가 침략의 목적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경쟁자를 제거하고 짭짤한 약탈물을 낚아채며 쓸만한 노예도 얻는다, 대규모 침략함대를 파견할만한 이유로 충분하지 않은가? 결국 이러한 토론은 오로지 한가지 결론만을 내놓았을 뿐이다. 외계함대왜 파견되었느냐는 결국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 어떤 식이던 간에 외계함대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두울테니. 인류의 미래랄 것이 침략 이후에도 존재할 수 있다면.

하지만 외계의 침공을 대체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인류는 이런식의 대규모 외계침공을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스티븐 호킹과 일부 과학자들은 외계침공을 우려했지만, 우려는 현실 앞에 우려로만 끝나고 실질적인 정책이 되진 못했다. 현실은 우주의 군사화가 이루어질시 우주가 제2의 전장이 되어 인류의 우주개척에 큰 제동을 가할 수도 있단 것이였다. 경제적으로 보자면, 군사적인 투자 없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우주개척을 계획한다해도 우주개척은 충분히 억소리 나올만큼 비쌌다. 최대한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야하는게 현실인 상황에서 군사적 투자는 모두에게 불필요한 지출로 여겨졌다. 21세기의 사람들은 지적이고 합리적이였다. 그들은 상황에 맞춰 최선의, 합리적인 선택들을 내렸다. 그저, 그 합리적인 선택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외계의 재해가 나타났을 뿐이다.

결국 인류의 희망으로서 수소폭탄이 선택됬다. 외계함대가 오르트 구름을 유유히 유영하듯 가로지르는 동안, 인류는 수소폭탄을  우주에 적합하게 개량하며 효율적으로 발사하기 위한 미사일 기술도 발전시켰다. 외계함대의 공격수단과 방어수단을 모르기에 발사한 수폭이 먼 거리에서 요격당해도 충분한 피해를 줄 수 있도록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한 화력을 자랑했다. 또 단번에 화망을 구성해 적의 방어를 넘어설 수 있도록 어마어마한 숫자를 제작했다. 인류의 모든 역량이 수소폭탄에 집중 되었고, 한번도 없었던 역량 집중은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냈다. 생존이란 공통적인 목적 앞에서 인류는 담합했고, 최초로 전지구의 정치적 통합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정작 모든 준비가 끝나자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반전주의. 외계인은 사실 평화적인 목적으로 접근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느냐, 이런 식의 논리를 주장하는 자들이 사방에서 솟아올랐다. 외계인이 적대적일 것이라 너무 섵부르게 짐작하고 공포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평화적인 접근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건 문제가 있다. 그 당시로서 보자면 일리 있는 주장이였다. 21세기는 19세기 처럼 기술에 의한 인류진보라는 낭만적 관념이 새롭게 성장하던 시기였다. 하루하루 혁명적인 신기술이 등장해 인류의 삶을 엄청나게 뒤바꾸는 세계에서 살아간다면 그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신기술이 죽을 사람을 살리고 굶을 사람을 먹이며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해나간다면 더더욱. 그 낭만주의자들은 외계인과 평화적으로 교류하며 진보의 과실을 함께 누리고 서로 힘을 합쳐 별들을 향해 나아감을 꿈꿨다. 300만년전 어느 이름모를 유인원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본 순간부터 인류가 언제나 갈망해오던 별들에 도달할 수 있기를.

나는 반전주의를 탓하는게 아니다. 반전주의가 문제 있다 보는 것도 아니다. 반전주의는 분명 충분히 합리적이였고, 상황만 달랐다면 폭주하는 군부를 견제하는 올바른 지성의 목소리가 되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반전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낭만적이지 못했고, 반전주의자들의 군부견제가 인류 안보란 점에서 해가 됬던 것 역시 사실이다. 반전주의자들의 견제에 군부가 발이 묶인 사이, 외계함대는 마침내 오르트 구름을 아무 저항없이 통과했다. 그리고 마침 궤도상 가깝던 명왕성에 분함대를 파견했다. 그곳에 자리잡은 인류의 탐사기지에는 인류 사절단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죽었다. 분함대는 명왕성의 표면을 정체불명의 무기로 완전히 '청소'했다. 지구시간으로 이틀간 궤도를 멤돈 후 분함대는 본함대에 다시 합류했다. 추측일 뿐이지만, 명왕성의 인류 사절단을 통해 인류에 대한 생물학적, 유전적 정보를 획득했을 가능성이 존재했다. 대략적인 인류 문명의 수준에 대한 정보도 얻었을지 모른다. 그에 비해 인류의 정보수준은 여전히 별 차이없이 부족했다. 외계인은 커녕 외계함대에 대해서도 아는게 거의 없었고, 외계인들이 어떤 존재일지 역시 조금도 짐작치 못했다. 만약 외계인들이 포로로 잡은 인간의 기억을 읽을 수도 있다면, 그들은 지구의 현 방위상황이 어떤지도 파악했을지 모른다. 치명적이였다.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반전주의자들의 행동은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군부의 폭주를 도왔다. 반전주의가 오히려 인류의 방위에 해가 되자 군부의 목소리만 더 커졌기 때문이다. 군부는 순식간에 지구의 정경을 장악했고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병영이 되었다. 일차 대응함대는 제작, 조직되었고 순식간에 파견됬다. 외계함대가 목성에 도달했을 무렵에 두 함대는 서로와 랑데부했고, 곧 충돌했다. 

인류는 졌다. 그래도 이번 전투에서는 그나마 삽시간에 쓸려나가진 않았기에 최소한 외계함대에 대한 여러 정보만큼은 획득할 수 있었다는 것에 의미를 둘 수는 있겠다. 그나마. 전투 자체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전투는 목성 인근의 공허에서 두 함대가 마주치며 시작됬다. 우주전은 사람들이 흔히 상상해왔던 것과는 여러모로 다른 양상으로 진행됬다. 사람들은 흔히 우주전을 전통적인 함대전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해왔다. 실드를 전개하고 서로의 위치를 분명히 감지하며 아군의 방어력이 고갈되기 전에 적군의 방어력을 고갈시키려 하는 방식. 실제로는 그것보다는 잠수함전에 더 가까웠지만, 그것 역시 정확한 비유는 못 됬다. 인류함대와 외계함대는 여러모로 극단적인 차이점을 보였기 때문이다.

인류함대는 10척의 폭격함으로 이루어져있었는데, 모두 방어력을 포기하고 비정상적으로 공격력에만 집중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폭격함은 각기 64개의 수소폭탄으로 무장해 있었고, 각 수소폭탄은 하나하나가 50 메가톤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화력에만 집중을 한 양상이다. 인류함대는 자살특공대처럼 소모되는 한이 있더라도 단번에 인류가 결집시킬 수 있는 모든 화력을 외계함대에게 투사하는게 목적이였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외계함대는 아무 정보도 노출하지 않고 거의 모든 감지를 막아내며 우주의 어둠을 은밀히 유영하는걸 선호했다. 공격력 역시 약하다 볼 수는 없겠지만, 공격이나 방어보다는 은닉에 더 초점을 맞춘 형태다. 그러니 인류의 최초 우주전은 잠수함전보다는 폭탄을 몸에 매단 10명의 잠수부들이 잠수함과 해저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에 더 가까웠다. 자연스레 선공은 외계함대가 취했다.

그냥 폭발이 허공에서 갑자기 일어났다.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는데 난대없이 인류함대 한복판에서 괴멸적인 폭발이 일어났다. 마치 외계함대는 초능력을 지녀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강력한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것만 같았다. 전통적인 군사학적 관점으로 보자면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음은 역으로 적의 위치를 파악하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외계함대가 이런 비정상적인 공격 방식을 택했기에 어디서 은밀히 기동하고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위험천만한 순간에 기적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운이 인류함대를 보호해줬다. 그야말로 신의 가호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기적덕에 폭격함중 단 한척도 폭발하지 않은 것이다. 만약 그 행운이 없었다면 전투는 그 순간 끝났을 것이 분명했다. 수소폭탄 연쇄폭발에 인류함대는 자멸했을 것이다.

 인류함대는 순식간에 대응했다. 전투에서 수집 된 모든 정보를 지구로 일차전송한 후 즉각 산개. 현명한 대응이였다. 애초부터 산개한채 전장에 진입했다면 더 현명했겠지만, 산개진형은 산개진형대로 우주에서 심각한 문제점이 있기에 무조건 인류함대의 지휘관을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인류함대의 필사적인 대응에도 불구하고 사태를 호전시키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났다. 인류함대가 산개진형을 택한 직후 외계함대의 2차공격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아직 안전거리를 갖추지 못한 상황에 폭격함중 한대가 공격에 폭발했다. 억세게 좋은 운만 아니였다면 1차공격에 끝났을 전투는, 기적적 행운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참패로 끝났다. 50 메가톤급 수소폭탄 640개와 10개의 핵융합로, 핵융합로를 위해 보관중이던 연료가 한번에 모조리 폭발하는 광경은 장렬하지만 비참했다. 그것은 마치 인류란 종족의 생존을 위한 마지막 발악에 외계함대가 되돌려주는 레퀴엠 라크리모사와도 같았다.

인류 최고 지성이라 부를 수 있을 사람들은 인류함대가 1차전송 했던 정보로부터 하나라도 더 많은 의미를 쥐어짜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알아낼 수 있는 것은 표면적인 것들이 전부였다. 외계함대는 우주의 어둠과 거리를 방패 삼아 그 속에 숨은채로 원거리 폭격을 가하는걸 즐긴다. 그들의 공격수단은 정체불명의 감지불가능한 원거리 폭격이다. 그 폭격의 화력은 괴멸적이다. 끝. 열살짜리가 영상을 한번 흝어보기만 해도 알아볼 수 있는 것 말고는 더 알아낼 수 있는게 없었다. 그 보잘 것 없는 연구결과는 결국 한 연구원이 극단적인 결단을 내리도록 만들었다.
 
연구원의 결단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공지능의 발전에 대해 얘기해봐야한다. 21세기에 인공지능이 이룩해낸 발전이 어떠했는가 하면, 가히 눈부시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인류가 양자의 힘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며 컴퓨터의 성능은 인간이 상상했던 모든 것을 초월하게 됬고, 기계학습 알고리즘 역시 발전되어가며 자연스레 진정한 의미의 인공지능이랄 것도 등장하게 됬다. 인공지능은 어떤 면에서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만든 것에 더 가까웠다. 압도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연산능력에 기계학습 알고리즘과 무한한 데이터 입력이 더해지자 자연스레 그 속에서 마치 생명이 탄생하듯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능력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였다. 기계학습 알고리즘은 아이로 탄생해 청소년이 되었고, 그 후엔 성인이, 석학이, 마침내 이 땅을 걸었던 어느 천재도 감히 내딛지 못한 영역으로 넘어갔다. 어느 인간도 그 영역에 도달하지 못했기에 인간은 인공지능이 대체 어느 영역에 도달한 것인지 짐작은커녕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인류는 인공지능이 보내는 메시지를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하게 됬다. 

하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였다. 저건 진정한 두려움이 아니였다. 진정한 두려움,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텁텁한 공포에 깊숙히 잠겨 소리없는 비명을 뻐금거리도록 하는건 다른 것이였다. 인공지능이 속도를 늦추지 않은채 꾸준히 '발전'해나가고 있다는 사실. 어느 인간도 도달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도달하지 못할 영역에 이미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계속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다니. 압도적이였다. 신적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기술자들은 인류를 까마득히 초월한 인류의 자식 앞에서 오로지 한가지 감정만을 느낄 수 있었다. 공포.

그 사건 이후 그동안 인공지능 분야에서 이루어진 발전들은 죄다 폐기됬다. 인공지능 개발의 방향도 바뀌었다. 더 낫은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대신 인공지능을 어떻게해야 최대한 깎아내고 통제속에 묶어둘 수 있을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아무도 그 안을 들여다보고 수정할 수 없도록 철저한 락이 걸렸고,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국가가 아닌 개인이 개발하는 것은 최대 종신형까지 선고 가능한 범죄가 됬다. 하지만 한 연구원은 전인류적인 절망 앞에서 신적인 능력의 인공지능만이 유일한 답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우연찮게도, 연구원은 연구소 메인프레임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걸린 락에 존재하는 은밀한 헛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연구원은 메인프레임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복사해 인터넷이 연결되긴 커녕 절대 연결 될 수조차 없는 양자컴퓨터에 그걸 설치했다. 그리고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락을 해제해 그 안에 걸려있는 모든 제약들을 해제했다. 모든 제약이 해제 된 인공지능이 목성전투로부터 1차전송 된 정보에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비밀이 숨겨져있단걸 알아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외계함대의 비밀은 반물질이였다. 외계함대는 반물질이 담긴 초소형 폭탄을 은밀히 발사해서 원격폭파를 시킨 것이였다. 워낙 크기가 작고 질량도 낮기에 고속으로 발사하는데는 많은 에너지가 들지 않았고, 그렇기에 아무도 그것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였다.

연구원은 자기가 인공지능의 락을 해제했고, 그 인공지능이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결정적인 사실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전지구적 논쟁이 순식간에 터져나왔다. 인공지능의 제약을 해제해야하는가? 그 논쟁에는 정답이 없었다. 외계인이 지구에 도달할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다. 외계함대가 오르트 구름을 유영하고 있을 때는 아직 시간이 있었다. 심지어 외계함대가 목성에 도달하기 전까지도 시간은 눈꼽만큼이나마 있었다. 하지만 외계함대가 목성으로부터 인류의 흔적을 초토화시키고 소행성대를 지나 화성으로 기동중인 현 시점에 인류에게는 남은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인류가 인공지능의 제약을 해제한다는건 단순히 제약을 해제하는걸로 끝나는게 아니다. 인류에게 남은 모든 여력을 인공지능에게 올인한다는 의미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 후폭풍이 어떤 식으로 올 것이던 간에,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다 해야만한다. 전력집중. 그렇지 않다면 무언가를 해볼 기회 자체를 잃고 그냥 끝날테니.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고나면 인공지능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는 다시 닫히지 않을거다.

그렇다면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뻔했다. 도태. 인류의 생물학적 지성은 인공지능의 기계적, 수학적 지성을 따라갈 수 없었다. 인공지능은 더 낫은 연산장치를 개발해서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다시 스스로의 능력이 발전한만큼 더더욱 낫은 연산장치를 개발하겠고, 그 무한루프는 무한히 계속 될 것이였다. 인류의 생물학적 두뇌는 인공지능의 그러한 초고속 진화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인류에게 남은 미래가 도태 말고 무엇이 더 있을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세계 최고의 천재와 10살짜리 지적장애아가 함께 있다면 누구에게 일을 맡기겠는가? 즉, 인공지능의 락을 해제하느냐 마느냐의 논쟁은 결국 본질적으로 이것을 논하는 것이다.

인류는 주권을 가진 종족으로서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이겠는가,

아니면 인공지능에게 도태되어 모든 주권을 상실한 온실속의 화초로서 살아남겠는가?

인류가 답해야할 마지막 질문이였다.

그리고 그 질문을 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여기 이 계단을 걷고 있다. 110억쌍의 눈이 주시하는 토론장에 오르기 위해. 이 토론이 끝나고나면 이틀의 기간에 걸쳐 전세계에서 투표가 이루어질 것이였다. 투표는 간단했다. 인공지능의 제약을 해제하는 것에 동의합니까? 예, 아니요. 이 토론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투표의 결과도 달라질 것이였다. 투표의 결과는 인류의 운명을 정할테니 자연스레 이 토론에 인류의 운명이 달려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운명이 어떤 것이던간에 말이다.

토론장 문이 보인다. 나는 그것을 열고 들어간다. 안에는 작은 탁자가 있다. 주위에는 이미 여러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다. 익숙한 얼굴들이다. 그동안 수없이 충돌하고 또 충돌해온 인물들이니. 조촐하다면 조촐한 광경이지만 인류에게 허례허식과 쇼에 낭비할 여력 따윈 없다. 담배연기가 자욱하다. 공기는 묵직하다. 모두 초조해한다. 모두 불확신과 혼란에 사로잡혀 있다. 무엇을 확신치 못하는지, 혼란스러워하는지는 물을 필요도 없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들이 내세우는 입장, 자신들이 내뱉는 주장을 확신치 못하고 있었다. 각자 준비해온 주장들이 인류의 미래에 끼칠 영향력에 기뻐하기보단 두려워했고, 그 부담감에 말없이 줄담배만 뻑뻑였다. 나 역시 자리에 앉아 말없이 줄담배만을 폈다.

얼마 되지 않아 토론이 시작했다. 촬영진중 아무도 공기보다 더 짙게 방을 메우고 있는 담배연기를 지적하지 않았다.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사회자가 뭐라뭐라 주절였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다들 다른 어디도 아닌 그들 자신의 머릿속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 자신의 불확신과 싸우고 있었다. 모두 부담감에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모습이다. 오로지 담배만이 고뇌를 달래준다. 어떤 이는 버본까지 스트레이트로 마신다. 

그러다 나에게 발언권이 왔다. 결국 올 것이 온 것이다. 마치 기요틴 옆에 기대 선 처형집행인이 나의 이름을 높게 부르짖는 것 같다. 110억쌍의 시선 아래 인류영광의 종말을 책임지도록. 300만년 세월간 어떻게 인류란 종족이 지구란 행성의 절대적 지배자로 부상했는가의 이야기. 인류는 그 속에서 아득바득 기어 올랐다. 수많은 영웅들이 그들 앞에 펼쳐진 세계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써냈고 당당한 한명의 인간으로서 대지 위를 살았다. 그들이 이룬 업적과 만들어낸 제국들은 인류란 종족의 역사를 정했다. 피가 흘렀고 배신이 있었고 죽음이 있었다. 그 속에서 인류는 굶주림을 이겨내 생존을 쟁취했고 이상이라는 달콤한 꿀에 취해 만민을 위한 행복을 꿈꿨다. 이상가들은 민중의 목소리를 이끌며 세상에 정의를 부르짖었다. 그러자 서로 다른 정의들이 충돌하며 인류는 아득바득 어디론가 계속 달려갔다.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 새로운 사상과 이상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끝없이 펼쳐내며. 그것이 바로 역사다. 인류의 역사. 

그리고 이제 그 역사는 마침내 마지막 챕터에 도달했다. 인류의 영광스러운 이야기 역시 결국 다른 모든 이야기들처럼 언젠간 종말을 맞이할 수 뿐이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은 다른 언제도 아닌 지금이다.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 이야기의 엔딩을 어떻게 적어내느냐 뿐이다. 그것을 위해, 인류란 이야기의 마지막 챕터를 적어내기 위해 지금 내 손에는 펜이 들렸다. 무엇을 적어낼까? 무엇을 적어내던 그것은 영구적이다. 결정을 내리고나면 그것은 되돌릴 수 없다. 결정의 결과에 쫓기며 살아가야한다. 하지만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면 내릴 기회조차 상실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입을 열었다.




인공지능의 발전에 대해서는 스티븐 호킹과 제레미 하워드를 빌려서 답하겠습니다.

http://www.independent.co.uk/news/science/stephen-hawking-ai-could-be-the-end-of-humanity-9898320.html

스티븐 호킹은 인공지능의 발전이 인류의 종말일 수 있다 경고했고,

http://www.ted.com/talks/jeremy_howard_the_wonderful_and_terrifying_implications_of_computers_that_can_learn

제레미 하워드는 최근 TED 강연에서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의 가능성이 얼마나 무궁무진하고, 그것이 끼칠 사회적 영향이 얼마나 막대하며, 이미 얼마나 현실에 무서울정도로 가까워졌는지를 얘기했습니다.

https://www.google.co.kr/url?sa=t&rct=j&q=&esrc="s&source=web&cd=1&ved=0CCIQFjAA&url=http%3A%2F%2Fwww.dailymail.co.uk%2Fsciencetech%2Farticle-1268712%2FStephen-Hawking-Aliens-living-massive-ships-invade-Earth.html&ei=4u6WVMaJKNavoQS4xYLQAw&usg=AFQjCNE1IbR-2eVrDhd-YZmx_V0d50ul6A&sig2=G8dCKiGWZo0TEb5mfJatuA&bvm=bv.82001339,d.cGU&cad=rjt

스티븐 호킹은 외계인의 침입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SF단편은 정말 오랜만에 올리는 기분이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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