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08 19:28

당신이 지금 읽고 있을 이 작은 수첩은 저 벤슨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저의 똥으로 만들어진 두꺼운 섬유질 덩어리를 말려 겹겹이 쌓은 것을 가지고 수첩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수첩을 처음 발견하셨을 때 묘한 냄새를 맡으셨다면 그것은 착각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갇혀있는 이곳에는 종이조차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제가 어쩌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됬는지는, 잠시만요 글자를 좀 더 작게 써야 더 많이 쓸 수 있을 것 같네요. 됬습니다. 제가 어쩌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됬는지는 우선 저의 직업을 설명해야 설명가능할 것입니다. 저는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개인 탐사원(Government Supported Unofficial Explorer, GSUE)라고 합니다. 아마 여러분 대부분은 자살희망자라는 우스갯소리로 더 잘 아실 직업이지요. 제 직업을 밝힐 때마다 느껴지는 조소와 애도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정말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은하시간으로 매년마다 500만씩 실종자가 나타난다는 3D 직업의 비운일까요.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저희 그수(GSUE)는 정부로부터 저희가 탐사할 지역을 배정받는 식으로 작업합니다. 3차원 좌표를 받고, 받은 좌표로 이동해 전력감지센서를 작동시키고, 센서가 근방으로부터 전력의 사용을 감지한다면 그것을 기록하고, 다음 좌표로 이동. 저희는 기록만 할 뿐 직접 탐사하는 것은 규정으로 금지 되 있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다들 그 규정은 무시하고 다닙니다. 왜냐하면 그수가 된 사람들은 열이면 열 외계문명이나 고대유적을 발견해 벼락부자가 되는 것이 꿈인 사람들이거든요. 물론 그것들보다는 적국의 비밀기지를 더 많이 발견하겠고 그곳으로 향하면 당연히 죽겠지만, 애초에 그런 것에 신경쓸 정도로 저희가 이성적이였다면 애초에 그수가 되지도 않았겠지요.


저는 이런 엿같은 상황에 빠지기 며칠 전에도 평소처럼 지루한 탐사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이 작업은 정말 로봇이 해도 될 것 같을 정도로 간단하고 반복적이기에 매우 지루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이 작업에 로봇대신 인간을 쓰는 유일한 이유는 매년마다 500만명의 인간이 실종되는 것이 500만개의 로봇이 실종되는 것보다 더 싸게 먹혀서일 것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니까요. AI를 써도 되겠지만 AI를 짜는대 투자할 고급인력이 아까워서 인간을 쓴다는 의견이 대세입니다. 정말 다들 인권이란 개념을 뒤닦는 휴지로나 쓰는 것인지. 


여하튼,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센서에서 대규모의 전력을 감지했다는 신호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센서는 가끔 기계오류로 잘못된 것을 감지하기도 하기에 저는 2번 더 감지버튼을 눌러서 확실히 제가 감지한 것이 전력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2번의 추가 감지 후에도 동일한 결과가 나오자 땡잡았다는 생각에 곧장 전력이 감지 된 곳으로 향했습니다. 전력이 감지 된 곳으로부터 약 1광분의 거리까지 도착하니 밝은 주황색의 항성에 가려져 광학센서에는 잡히지 않고 있던 검은 행성이 관측되기 시작하더군요. 저는 국제규정에 의거해 10분간의 텀을 두고 3번에 걸쳐 궤도진입 허가를 요청했고 마지막 3번째에도 아무런 응답이 없자 미친듯이 기뻐했습니다. 그것은 그 행성에 사람이 한명도 없다는 것을 뜻했으니까요. 아마 그 아래에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이였는지를 알았다면 그렇게 기뻐하지는 않았겠지요. 저는 그대로 궤도에 진입한 후 하루동안 행성을 관측했습니다.


행성의 표면은 강한 전자기장 폭풍에 의해 뒤덮여있었습니다. 순간 저는 그것을 제가 감지한 전력이고 그 아래에 버려진 문명같은 것은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감지 된 전력의 규모는 전자기장보다 더 거대했기에 그 의혹을 떨쳐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전자기장 폭풍 때문에 행성 지표면을 관측할 수 없긴 했습니다. 저는 위험을 무릅쓰고 미지의 행성에 착륙하는 것과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저울질했고, 그때의 저는 당연스럽게도 미지의 행성에서의 모험을 택했습니다.


저는 행성의 지표면 상황을 관측할 수 없었기에 나선형 착륙을 시도하기로 했었습니다. 나선형 착륙은 행성의 주위를 위성처럼 빙글빙글 도는 나선형 궤도를 통해 서서히 행성 지표면에 가까워지는 방식의 착륙입니다. 이 방식으로 착륙을 할 시 궤도를 도는 와중에 행성 지표면을 관측하고 가장 적합한 판단을 내릴 수 있기에 그런 상황에서는 가장 안전한 방식의 착륙법이지요. 하지만 상황이 저의 예상처럼 흘러가지는 않았습니다.


나선형 궤도를 통해 착륙을 한다면 행성의 대기권에 장기간 노출되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착륙을 하기 위해서 전자기장 폭풍을 지나가야 했죠. 전자기장 폭풍은 매섭기 그지없었고 그곳을 나선형 궤도로 통과해가던 저의 고물 우주선은 순식간에 이상을 일으켰습니다. 우주선은 그대로 균형을 잃은채 지표면으로 추락했고 저는 그 공포를 이기지 못한채 그대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정신을 잃기 전에는 유서도 썼습니다. 내용은 대충 이러했죠.


'아, 나의 짧은 인생은 이렇게 미지의 행성에서 끝을 맞이하는구나! 고향별은 이곳에서는 보이지조차 않으며, 나의 지인들은 나의 죽음을 파악하지조차 못하겠지! 아, 얼마나 허무한 인생인가! 동정으로 사망하기에 더욱 더 허무하구나!'


네, 그때 좀 감상적이기는 했습니다. 물론 그 추락으로부터 전 사망하지 않았습니다. 유령은 똥도 못싸고 그 똥을 말린 것에다가 글을 쓰지 못하니까요. 여하튼 그렇게 저의 미지의 행성에서의 첫번째 하루가 지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