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12 02:03

강화 유리 안쪽에서 보는 우주는 언제나 고요했다.

사실 우주란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공기가 없는 그곳에선 그 어떤 소리도 전해지지 않는다. 어릴 땐 그게 그렇게 신기할 수 없었다.

 " 사실 우주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가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란다. "

어린 코시모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버지는 그런 코시모스의 뚱한 얼굴을 보고 수염을 쓸으시며 웃었다.

 " 전파나 파동, 인간은 감지할 수 없는 여러가지 소리들이 우주로부터 우리에게 오고 있지. 하지만 어떠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지? "

들리지 않는 소리.

어린시절 우주에 관심이 많던 코시모스에게 그것은 정말로 신기한 현상이었다. 코시모스는 지금도 생생히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어린시절. 아버지와 함께 우주를 여행하는 꿈을 꾸던 어린 코시모스.

 " 음, 이 아빠가 비밀을 하나 알고 있는데...... "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으시며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피는 아버지의 모습에 코시모스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아버지는 그런 코시모스를 보고 한층 더 진지한 눈빛으로 좌우를 둘러보고 낮게 깐 목소리로 말했다.

 " 이건 비밀 중의 비밀이란다. 만약 코시모스가 이 비밀을 절대로 남에게 말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들려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

 " 비, 비밀이요? "

 " 그래, 엄청난 비밀이란다. 아빠도 우주군에서 30년 넘게 일하고 나서야 알게 된 비밀이지. 이건 절대로 남에게 알리면 안되는 거란다. "

 " 아, 알려주세요! "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낸 코시모스는 곧바로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물론 부녀가 함께 있는 행성 '하울링A'의 위성 플래닛의 테라스에는 늦은 저녁인 탓에 인적이 아예 없었지만 어린아이의 상상력은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끼게 만들기도 하고, 둘만의 비밀 이야기를 엿들으려는 스파이를 만들기도 한다.

허둥지둥 주변을 살피는 아이의 모습에 터져나오는 웃음보를 참으려고 온갖 인상을 쓰고 있는 탓에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빠를 깨닫지 못한 채, 어린 코시모스가 한참동안 주변을 살피고서야 한숨을 내쉰다.

겨우 웃음을 삼킨 아빠는 그런 딸의 귀를 가리키고, 어린 딸은 아빠의 비밀 이야기에 매혹되어 그 어느때보다 눈을 빛내며 두 손을 귀에 모아 우주의 신비를 들을 준비를 했다.

 " 코시모스, 사실 우주에선 말이다 ㅡ "



 " 사실 우주에선 정말로 소리가 들려온단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신비한 소리가 말이지 ㅡ "

 " 예?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함장."

 " ......아무것도 아니야. "

부관에게 손사래를 친 코시모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습관이다. 우주를 보며 생각에 잠기면 항상 예전 일이 생각나곤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저도 모르게 입으로 중얼중얼 혼잣말을 한다. 한 척의 전함을 책임지는 함장의 이미지에 결코 좋은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주의하고는 있지만 그게 항상 성공하는건 아니다.

특히 지금처럼 어마어마한 장관이 눈 앞에 펼쳐질 때는.

 " 지금까지 모인 인류연합함대는 어느 정도지? "

 " 예, 예정된 함대의 87%가 모인 현재 모함 클래스의 함선은 약 2만여 척, 전열함 클래스의 함선은 15만 척, 순양함 클래스의 함선이 49만 척, 구축함 외 동급 함선들이 100만 척을 넘은 걸로 보입니다. 기타 함선들은 95% 이상의 소집률을 보이고 있으며 약 200만 척 이상으로 추측됩니다. "

 " ...... 백만 단위의 함선들인가. "

 " 어마어마하군요. "

부관의 말대로 기가 질리게 만드는 숫자였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많은 함선들이 모인 것은 처음이겠지. 코시모스는 브릿지의 상층부에서 눈 앞에 펼쳐진 구형 스크린에 표시된 파란 점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것은 거의 수천만 KM의 범위를 커버하는 스크린이었는데 몇 년간의 함장 생활에서 그 구가 가득 찬 모습을 보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정보가 갱신될 때 마다 늘어나는 파란 점들의 점멸. 그것은 무서운 속도로 빈 공간을 채우며 주변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 하나 하나가 모두 우주를 노다니는 함선들이다.

스크린 그  너머 정면에는 영상으로 구현된 바깥 우주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것은 정말 말로 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수 만 척의 전함들이 갖고 있는 수백만 개의 추진기에서 나오는 불꽃. 멀리 보이지만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그 질량감. 한 척 한 척이 수 백, 수 천 명의 사람들을 태운 거대한 함선이라는 생각을 하자 살짝 멀미가 날 정도다. 도대체 지금 이 우주 공간에 모인 이들은 몇 명일까. 몇 십, 몇 백개의 국가에서 주력 함대를 쪼개 보낸 연합군의 규모란 상식으로 잴 수 없는 규모를 자랑했다.

지금까지 이십 몇 년을 살면서 우주라는 곳이 좁다고 느낀 적이 없는 코시모스지만 지금 이때만은 아니었다. 마치 숨막힐 듯 한 압박감이 이곳에 있었다.

 " 그런데 정말 이 정도의 전력이 필요한 겁니까? 상대는 그 수가 채 3천이 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요. "

 " 계속해봐. "

 " 정찰위성의 부피 측정 보고에서 그 각각의 크기가 소행성만하다는 것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저희 제국이나 타 국가들이 보유한 행성 파괴함 클래스보다 조금 큰 정도 아닌가요? "

코시모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7천 여 대가 넘는 정찰위성들이 우주 외곽을 향했다. 비록 여러 제국, 공화국, 독립국에서 서둘러 모은 탓에 제각각의 성능과 취급법을 가진 위성들이었고 그 때문에 통제와 연계에 상당히 애를 먹었지만 곧 상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수는 약 3천. 각각의 크기는 소행성 정도. 그 크기와 비슷한 행성 파괴함을 3천 척 보유한 전력이라면 거대 제국의 그것과 비슷하다. 

은하에서 손꼽히는 강대국인 스트라토스 3세가 지배하는 제국이 공식적으로 보유한 행성 파괴함의 숫자가 4천 척이 채 되지 않지만 비공식의 그것을 합한다면 거의 6천에 달할 것이 분명하다.

코시모스가 속한 제국만 해도 그 정도다. 은하 저편에서 갑자기 나타난 이들이 행성 파괴함급으로 추정되는 3천여 척의 전함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사분오열한 채 이합집산을 수세기 동안 계속하던 인류의 국가들이 유사 이래 처음 '인류연합'이라는 범 은하적 통합체를 만들어 대응함대를 꾸밀 정도는 아닐 정도인 것이다.

다만 문제는 3천 대의 정찰 위성 중 명확한 영상의 전송에 성공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

그 어떤 위성도 부피 측정과 저해상도의 사진을 전송한 것 이상의 것을 하지 못했고, 한 대의 위성도 기지로 귀환하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ㅡ

 " 그야말로 우주에서 들려오는 소리...... "

인간의 청각으로도 들을 수 있는 소리.

그것이 마지막 위성이 보내온 단 하나의 특별한 정보였다. 

코시모스가 인연을 맺고 있는 한 정보상인의 귀띔에 의하면 그 소리가 인류 연합체를 만들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미온적인 대응을 하던 열강들의 수뇌들이 그 소리를 듣고 태도를 달리 했다고. 그들은 곧바로 은하 규모의 회담이 열었고 그 결과 인류 연합체의 창설이 결의되고 쉴 틈 없이 정예를 위주로 한 초 대규모 다국적 함대를 소집하여 ㅡ 그리하여 지금에 이른다.

 " 사실 우주에선 정말로 소리가 들려온단다...... "

돌아가신 코시모스의 아버지는 제국 우주군의 수뇌이자 스트라토스 3세의 측근이셨다. 수십 년 전의 일이다. 어린 시절에 들었던 말이고,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코시모스를 놀릴 목적으로 그런 소리를 하셨던게 분명하다. 마치 잠들기 전 아이에게 들려주는 동화와 같이.

코시모스야, 사실 우주에선 정말로 소리가 들려온단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신비한 소리가 ㅡ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초장거리 워프를 통한 외우주 탐사에서 돌아오지 않으신 것이다. 평범한 외우주 탐사라고 들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우주 최연소로 함장이 되고 이어서 최연소 함대 지휘관이 되자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게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함대는 분명 전투를 상정한 거대 규모의 함대였다.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었지만 분명하다. 그리고 그 함대의 8할 이상이 타국의 함선들이었다는 사실도 가까스로 확인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어디를 목적지로 워프를 하신걸까. 왜 돌아오지 못하셨을까.

 " 함장, 연합사령부로부터의 통신입니다. "

 " 읽어. "

 " 총 소집률 90%가 되면 지정된 좌표로 함대를 이동시킨다.  요청대로 귀 함대가 연합 함대의 최전방을 맡을 것이다. 이후의 작전명령을 첨부하는 바이며 이 명령을 받은 직후부터 연합 우주군 함대 1군 제 1 방면 함대의 명령권을 귀 함장에게 이양한다. 무운을. "

코시모스는 함장석 한 층 아래에 앉아있는 오퍼레이터 들에게 손짓으로 했다. 용캐 알아들은 오퍼레이터 치프가 손가락 아홉개를 펼쳐 보인다. 90퍼센트.

 " 부관, 명령대로 함대를 이동시키도록. "

 " 예! "

모자를 푹 눌러쓰고, 코시모스는 푹신한 함장의 자리에 몸을 깊이 묻었다. 별다른 명령을 내릴 필요는 없다. 코시모스의 함대는 타 함대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정예 중의 정예이다. 젊은 천재의 비상이 있기까지 코시모스의 함대는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승무원 모두 자신감이 넘쳤고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코시모스 역시 마찬가지, 아니 가장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고 할 정도여서 언제나 간단히 명령을 내리고 난 후에는 나태에 가까운 자세를 취하고 만다. 

지금도 마찬가지였지만, 심정은 전과 달랐다.

함대가 움직이기 시작하며 눈 앞에 있던 전함들이 뒤로 물러난다. 제 1선. 코시모스의 함대는 그들과 마주하는 경계에 선다. 그들과의 거리는 아직 멀었다. 스크린에 비치는 것들은 저 멀리 빛나는 수 억개의 별들. 하지만 마치 그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반투명한 백색의 무언가. 우주에서 빛나는 저 모든 별들이 그 무언가인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 ...... 코시모스, 사실 우주에선  정말로 소리가 들려온단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신비한 소리가 말이지 "

중얼 중얼 코시모스의 혼잣말이 혼잡한 브릿지의 어디에도 닿지 못하고 사라진다.

소리가 들려온다.

우주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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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를 끝까지 깬 분이 있길래 그 기념으로 각색해서 한 번 써봤습니다.

SF는 좋은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