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20 05:13

드넓은 건물 안. 벽에는 커다란 빨간 등이 켜져있고 그 밑에는 수많은 해병들이 무장을 갖춘채 널브러져있다. 완전히 무장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대부분은 아무런 긴장감도 없이 떠들거나 심지어는 자고 있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단 한명,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아무 말도 없는 병사가 있다.

, , 뭐 잘못먹었냐? 대체 왜그래?”

, 소대장님...”

그는 자신의 어깨를 툭툭치며 말을 걸었던 상대방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숙인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에게 소대장이 다시 말을 건다.

뭐야, 좀 심각한거냐? 미숙이가 또 헤어지자 그랬어? , 그런거 혼자 꽁해서 뭐하냐. 그냥 나한테 탁 털어놔.”

소대장님 지금은 1급 경계태세입니다. 잡담이나 하고 있을때가...”

하하하하하하학, , .”

소대장이 숨넘어갈 듯이 웃다가 침을 찍 뱉어내고는 다시 능글맞게 웃는다.

그 농담은 진짜 수준급이었다. 야 임마, 지금까지 우리차례가 왔던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냐? 그런 심각한 분위기는 저기 강습항모에 끌려간 불쌍한 것들한테나 어울리는 거야. 위대한 행성방위군에 소속된 해병인 우리들은 그냥 여기서 농담이나 하고 잠이나 자다가 적함대가 갈갈이 찢기고 나면 다시 막사로 복귀하면 되는거라고.”

소대장의 웃음소리를 들은 병사들이 하나 둘씩 모여든다. 이미 대화를 듣고 있던 몇몇 병사들은 땅을 뒹굴며 자지러지게 웃고 있다.

그게... 이번에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병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지만 소대장은 그저 살짝 얼굴을 찡그릴 뿐이다.

, 무슨 소리야. 내가 들은 게 아무 것도 없는데 넌 어디서 뭔 이상한 헛소문을 들은거냐.”

병사는 일그러진 얼굴으로 힘겹게 말을 토해낸다.

그게, 사실... 어제, 제가 새벽에 복귀안하고 술이나 퍼마시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때 우연히 우주항에서 함대가 출격하는 걸 봤습니다.”

소대장은 여전히 살짝 웃고 있다.

탐사정이랑 전투기가 정찰 나가는 걸 본거 아냐? 그걸 가지고 무슨 함대라고...”

아닙니다.” 병사가 소대장의 말을 끊는다. “명백히 함대였습니다. 강습항공모함은 없었지만 대형함선 수백대가 날아오르는 걸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소대장의 얼굴이 굳는다. 몰려든 병사들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싹 가셨다.

술먹고 뭘 잘못 본건 아니고?”

아닙니다. 그땐 이미 술도 거의 깬채로 적당히 복귀할 시간만 재고있었기 때문에 잘못 봤을 리가 없습니다.”

만약 지금 니가 헛소리를 하는 거면 나중에 징계위원회를 열수도 있어.”

확실하게 봤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김이현 상병에게 보고받은 내용입니다.”

소대장은 등에 총을 멘채로 꼿꼿이 서있다. 상대가 소대장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뗀다.

자네도 잘 알겠지만, 이게 잘못된 보고일 경우 해당 병사는 물론 자네까지도 책임을 물을 수도 있네.”

알고있습니다.” 소대장은 긴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간다. “저로서는 어젯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만약 김이현 상병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당장 모든 행성방위군 병사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철저한 전투태세를 갖춰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의 강습부대가 내려오지 못할 거라는 믿음에 헤이해진 지금 상태로 전투에 나갔다가는 큰 일이 날겁니다.”

만에 하나 자네의 보고가 사실이라면, 말이지.”

고요한 정적 속에 소대장의 목젖만이 크게 위아래로 움직인다. 그리고 잠시 후 상대가 한숨을 내쉬고는 말한다.

좋아. 알겠네. 대대장님께 보고해서 사실 확인을 해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아직도 답변이 없나?”

. 그저 확인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중대장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지금 보고를 올린지 한 시간이 넘었는데 아직도 확인중이라니! 그게 말이나 돼!”

, 하지만, 상부에서 그 말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후우우우우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다.

설마 양원식 중위의 보고가 사실인건가? 이미 밖에서는 함대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아직도 답이 없다니 대체 위에서는 무슨 생각을..."

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 귀를 찢을 듯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방송이 울려퍼진다.

비상, 비상, 적의 강습부대가 강하를 시작. 모든 해병부대는 작전지역을 사수하라. 비상, 비상, 적의 강습부대가 강하를 시작. 모든 해병부대는 작전지역을...”

 

 

, , 면목 없습니다. ...그래도 그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 행성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 .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 -

전화가 끊겼다. 지난 전투에서 결국 이현이는 애인인 미숙이에게 사랑한다고 전해달라는 부탁만을 내게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말이 애인이지 이미 10년을 사귄 사이라서 다들 결혼은 언제 하냐고 묻던 사이였다. 정말이지, 우는 목소리를 듣는 건 이제 질린다. 하지만 찾아가서 직접 말하지 못하는 게 더더욱 끔찍하다. 

비록 지난 전투는 가까스로 막아냈지만 모든 것이 파괴됐다. 행성요새라 불리던 웅대한 방어시설들은 거의 대부분이 파괴됐고, 그리도 많았던 해병들은 대부분이 전사했다. 내 소대원도 나를 포함해 4명만이 살아남았고, 부대재편에 의해 난 이미 분대장이 되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도록 지켜냈다고 말하긴 했지만, 다음번 공격이 오는 순간 우리는 전멸하고 이 행성은 적에게 넘어갈 것이다. 우리에겐 함대가 없다. 

그래, 분명히 지난번 전투에서 함대는 없었다. 전투기 수백대가 날아올랐을 뿐 대형함선은커녕 구축함이나 초계함조차 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적의 전함의 무자비한 포격과 전략 폭격기의 융단폭격 앞에 우리의 방어시설은 차례차례 무너지고 결국 우리는 난생처음으로 강습항공모함에서 적의 해병이 벌떼처럼 쏟아져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아야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전투는 지옥과도 같았다. 

이미 함대가 없다는 게 사실로 밝혀졌으니 별 의미는 없지만, 중대본부 통신병으로부터 결국 끝끝내 상부로부터의 답변은 없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었다. 통행금지 시간인 야간에 몰래 행성을 빠져나간 함대와 그 사실에 침묵한 상부... 어쩌면 우린 제국으로부터 버려진 걸지도 모르겠다. 이제 곧 일어날 다음 전투가 아마 내 마지막이 되겠지.

 

 
























 

 

보고서 No. 8738233 [우주의 미아 작전]

 

작전개요

 

이후의 공세를 위해 최대한 함대를 보존하면서 적의 함대를 제거하기 위해 행성방위를 포기하고 적의 행성을 점령해 적의 관제센터를 제압, 적 함대를 우주 미아로 만드는 역 강습 작전.

  

작전진행

 

우주력 32821421시 적의 대규모 함대 출진을 정찰대가 확인

우주력 32821803시 적의 Tactical Cube-01 행성을 향해 작전 함대가 출진

우주력 32821804시 잔존 함대중 전투기 일부만을 남기고 모든 함대가 다른 행성으로 이동시작

우주력 32821815시 적의 함대가 아군의 Sphere-004 행성을 공격개시

우주력 32822013Sphere-004 행성방위군이 가까스로 적의 해병을 격퇴, 적 함대 회군

우주력 32822118시 적의 Tactical Cube-01 행성에 아군 함대가 공격을 개시

우주력 32822204Tactical Cube-01 행성의 점령완료. 관제센터에서 잘못된 위치정보를 적 함대에 송신

우주력 32822412시 적 함대는 해적행성에서 우주해적들과 교전 끝에 괴멸

  

작전결과

 

아군의 함대피해 

작전참가함대

전투기 1800, 탐사정 1214, 전략 폭격기 723, 초계함 616, 구축함 604, 순양함 215, 전함 84, 강습항공모함 6대 중

전투기 89, 탐사정 78, 전략 폭격기 26, 초계함 18, 구축함 12, 순양함 2, 전함 1대 격침 

행성잔존함대

전투기 325대 중 289대 격침

 

적의 함대피해 

전투기 1215, 탐사정 876, 전략 폭격기 2158, 초계함 402, 구축함 508, 순양함 125, 전함 124, 행성파괴함 24대 중 80% 이상이 우주해적에게 격침된 것을 확인. 남은 함대도 제국을 찾아가지 못하고 우주를 떠돌다가 불시착하거나 아군이나 다른 해적에게 격파될 것으로 예상됨. 

 

Sphere-004 행성의 피해상황 

방어시설의 대부분이 파괴되고, 현재 가까스로 25% 정도 복구에 성공했음.

해병은 대부분이 전사해 현재 3만명 규모에 불과함.

다행히 민간인 피해는 없었으나 행성파괴함에 의해 많은 생산시설이 파괴되어 복구에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됨.

 

최종결론 

비록 Sphere-004 행성이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으나, 적의 주력함대가 붕괴되었으므로 앞으로 한동안은 이 지역 전선에서 일방적인 공세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됨. 이 작전을 제안한 김이식 소장을 포함해 이 작전과 관계된 모두에게 훈장과 적절한 치하가 필요함. 

 

특이사항 

적의 함대가 Sphere-004 행성을 공격하기 약 1시간쯤 전에 그 전날 새벽 막사에서 무단으로 이탈해 있다가 새벽에 작전 함대가 출진하는 걸 본 병사가 있었다는 보고가 들어왔음. 최초목격자와 해당 중대장은 전사했으나, 해당 소대장은 생존해 있으므로 특별한 감시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됨.

또한 이후 비슷한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야간 통제를 철저히 하도록 각급 부대에 전파하고 매우 강조해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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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야간에 안자고 이게 무슨 뻘짓...

실은 해병전투신을 넣어서 강습함에서 인간탄환이 발사되어 행성방위군을 1:1의 교환비로 사살하는 장면을 묘사하고자 하였으나 여백이 부족하여 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