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28 06:48

자유의지. 이 한개의 단어만큼 인간의 갈망을 매섭게 관통하는 것이 있을까. 우리는 모두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확신하고, 동시에 자유의지를 못 가지지 않았을까하는 의심과 두려움에 시달리며, 동시에 완벽한 자유의지를 갈망한다. 근본적으로 따지자면 우리가 스스로에게 영혼이나, 최소한 스스로를 살아있는 독립적인 주체라고 믿는 확신의 가장 기본적인 뿌리는 바로 자유의지이다. 결국 살아있다는 것은 행동한다는 것이고, 행동이 행동이기 위해서는 자유의지로서 비롯 된 행동이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대 여기 술주정뱅이 김씨가 있다. 술주정뱅이 김씨는 알코홀 중독자이며 돈이 생기는 족족 소주를 사서 깡으로 마시는대 쓴다. 배가 고플 때나 뭐 간단한 요깃거리 사서 먹는다. 이 술주정뱅이 김씨에게 밥을 배부르게 먹여준 다음에 손에 만원을 쥐여줘보자. 이 돈을 어떻게 쓰는지는 온전히 술주정뱅이 김씨의 선택이다. 술주정뱅이 김씨에게는 가족이 단 한명도 없고 술을 사러가는 그를 막을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없다. 술주정뱅이 김씨는 그렇다면 어떠한 선택을 내릴까?


정답은 뻔하다. '술을 사러간다'이다. 이 선택은 이미 김씨가 손에 돈을 쥔 순간부터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김씨가 어떠한 고뇌나 갈등을 겪는다해도 그 후에 결국 어떤 선택이 나올지는 이미 정해져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진정 자유의지일까? 이 김씨에게 병든 아들이 있고 이 병든 아들은 약을 사야하지만 김씨는 병든 아들을 정말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다면, 김씨가 돈으로 약을 살지 아니면 술을 살지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이 김씨에게 병든 아들이 있고 이 병든 아들은 약을 사야하고 김씨는 병든 아들을 정말 조금도 신경쓰지 않지만 이 병든 아들이 살아있다면 매달 100만원을 벌 수 있다면 김씨가 돈으로 약을 살지 아니면 술을 살지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선택을 내리기 전부터.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진정 자유의지일까? 이씨란 남자가 아침에 출근하며 아내와 된통 말다툼을 했다. 이씨는 화를 참는 성격의 사람이 아니기에 직장에서 부하직원에게 화를 된통 냈다. 그런대 부하직원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결국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사표를 냈다. 그 누구도 부하직원에게 사표를 내도록 강요하거나 요구하지 않았다. 부하직원의 팔을 들고 사표를 내도록 움직이지도 않았다. 또한 그 누구도 이씨에게 된통 화를 내라고 하지 않았다. 그들이 그러한 행동을 한 이유는, '그들이 그럴 상황에서 그럴 행동을 할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월이 흐른 후에도 성격자체가 바뀌지 않는다면 똑같은 상황에서는 극도로 흡사한 행동들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진정 자유의지일까?


결국 김씨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지는 이미 정해져있고, 김씨가 처한 상황을 다양한 행동으로서 만드는(감금이든 갈굼이든 등등) 이씨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지는 이미 정해져있고, 그 이씨에게 또한 박씨가 있고, 그 박씨에게또한 정씨가 있는 것이 사회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은 사회를 살아가며 만들어진 성격이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가장 '나다운 방식'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런 나의 행동이 모여서 다시 사회를 만든다. 그리고 나의 성격을 만든 사회또한 나 이전에 살았던 자들의 성격과 행동들이 모여서 만들어졌고, 계속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결국 그렇다면 이미 태초에 우주가 만들어진 이후부터 삼라만상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살아갈지는 이미 쿼크들의 극미한 떨림 몇번을 통해 이미 정해져있던 것이 아닐까.